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2일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프로젝트(이하 일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종의 산업재해기업 DB 홈페이지인데 간단하게 기업명을 검색하면 그 기업에서 발생했던 산업재해 사망사고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내역에는 단순히 사망여부 뿐만 아니라 산업재해의 형태, 행정조치와 송치여부까지 공개되는 국내 유일한 DB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사망사고가 일어났던 사업장이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취업정보사이트인 워크넷에 구인광고를 올리면 산업재해 사고 현황을 SNS를 통해 포스팅하는 나름 신박한 기능도 탑재했다.
이런 특징들 때문인지 일죽 프로젝트가 공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일죽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유독 많이 받는다. 사실 정보공개센터가 일죽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와 목적은 너무 단순하다. 정부가 산업재해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2003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분기별 산업재해 현황과 연간 산업재해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이 자료들에서는 산재 다발 사업장 명단과 사고발생 건수를 공개하고 있는데 이 정보로는 사고의 유형이나 사업주의 법적 의무 위반 내용 확인이 전혀 불가능하다. 이마저도 산재사고 관련 모든 조사와 행정처분, 심지어 재판 최종심까지 종료된 후에 공개되어 정보의 시의성이 극히 떨어진다. 심지어는 산업재해 사고가 발생한 뒤 3년, 4년 된 사고 정보가 뒤늦게 공개되는 경우있다. 결국 정부의 정보공개라는 것이 뒤늦은 통계적 정보를 공개하는데 그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홈페이지 상단에 ‘사망사고속보’를 통해 산업재해 사망사고정보를 공개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사업장명은 비공개하고 있다. 둘 중 어디가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산업재해 현황 공개가 재해발생 기업의 명예·신용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통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의무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인데, 매년 수천 곳의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 명단이 활용하기 어려운 PDF 파일 형태로 한꺼번에 공개되어 정보로서 가치가 떨어지고 활용도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산업재해 정보를 공개해 기업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자는 본래 취지는 이미 무색해진지 오래이고 기업 입장에서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관련 정보공개가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산업재해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되려 몇년째 큰 폭으로 늘었다. e-나라지표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021년 2,080명이다. 이는 2015년 사망자가 1,810명 이었던 것에 비해 약 15%나 증가한 수치다. 업무상 질병자 수 역시 2021년 한 해 20,435명으로 2017년 이래 한 해도 쉬지 않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 김용균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등 노동자들이 부당한 위험한 업무조건 속에서 안타깝게 희생당하면서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음에도 산업재해는 되려 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2021년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며 산업재해 사업장 명단 공개제도가 일부 개선되는 성과가 있었다. 단 한 사람이 사망하더라도 중대재해로 분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명칭, 발생일시와 장소, 재해의 내용과 원인 등을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공표하도록 해 이전보다 사망사고에 대한 공개 정보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사망사고가 발생한 모든 사업장이 아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사업장’만 공표 대상으로 제한하며, 그나마도 ‘형이 확정된 경우’에 공개하거나 홈페이지 공표기간을 1년으로 제한해 실효성을 되려 깎아먹었다.
산업재해는 되려 몇년째 큰 폭으로 늘었다
그러나 산업재해 사업장 명단 공개제도는 실효성이 부족하다
반면 미국과 영국은 산업재해 기록을 자세히 공개한다
한국이 자주 언급하는 주요국가들의 산업재해 관련 정보공개 수준은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은 방대하고 체계적인 산업재해 집행 DB를 만들어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정보와 관련 법률 위반 사항, 그로 인해 받은 처벌 또는 벌금 등의 정보를 자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영국 보건안전청(HSE)도 보건안전법을 위반한 기업 주소지와 업종, 법률 위반 사항, 발생했던 사고 이력 등 산업재해 사건의 기록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두 기관 모두 누구나 쉽게 재해 조사 내용을 검색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관련 법률을 위반한 기업이 어디인지 국민과 노동자들에 알권리와 정보공개를 기본에 두고 산업재해 관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과 산업재해 사고 내용을 공개하는 일죽 프로젝트는 단순히 산재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망신주기 위해서 시작된 게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보장하지 않았던 산업재해에 대한 국민과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알권리를 지키기 위해 시작되었다. 정부가 국민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앞서서 보호하는데 이번 일죽 프로젝트가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어 보다 신속하고 투명한 산업재해 관련 정보공개가 이뤄진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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