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한덕수의 햇빛, 브랜다이스의 햇빛

opengirok 2022. 12. 29. 14:21

은평시민신문에 실린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의 정보공개 칼럼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언이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18일, 한 총리는 고위당정협의회가 열린 자리에서 “노조 활동에 햇빛을 제대로 비춰야 한다”, “노동조합 재정운영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을 정부가 과단성 있게 요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노조의 재정운영이 투명하지 않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앞으로 회계 자료 공개를 압박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미 노동조합의 재정 상황은 회계 감사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정부가 끼어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대통령실 집무실 수의계약 관련 정보이태원 참사 관련 자료를 국회의원들에게도 꽁꽁 감추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가 ‘햇빛’과 ‘투명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입니다. 세무관서에서 최근 현장점검을 통해 시민사회단체들의 회계 자료를 요구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윤석열 정부가 지지율 반등을 위해 ‘노동조합 때리기’, ‘시민단체 때리기’로 프레임을 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정보공개 활동가인 저로서는 “햇빛을 제대로 비춰야 한다”는 발언에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정보공개 운동의 금언인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다”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다”라는 문구는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말로 유명합니다. 브랜다이스는 기업과 조직이 대중과 소통하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투명한 정보공개와 홍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유명한 비유가 반부패와 투명성을 상징하는 문구로 떠올랐습니다. 

한덕수 총리가 하버드 유학파라서, 하버드 출신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브랜다이스의 말을 가져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원조’격인 브랜다이스의 생애와 활동을 생각해보면 “노조 활동에 햇빛을 제대로 비춰야 한다”는 한덕수 총리의 발언에 더욱 실소를 짓게 됩니다. 브랜다이스는 법학자이자 변호사, 그리고 연방대법관으로서 시민의 알권리를 강조하고,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를 이론적으로 정초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실 예산 뿐 아니라 직원 명단까지 비공개하고, 고위공직자 신원조회를 통해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 기능을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를 함께 떠올리는 것이 실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여 미국 노동운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브랜다이스는 1908년, 뮬러 대 오리건 주 사건(Muller v. Oregon)에서 오리건 주를 대표하여 여성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이후 미국의 노동자 권리와 사회복지 제도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역시 오히려 노동시간 규제를 완화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됩니다.

잘 알려진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말을 몇가지 더 인용하겠습니다.

루이스 뎀비츠 브랜다이스(Louis Dembitz Brandeis)

 “강력하고 책임 있는 노동조합은 공정한 산업 발전의 핵심이다. 이러한 노동조합이 없는 협상은 일방적일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은 시민이라는 직책이다.”
“피해에 대한 두려움 만으로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 할 수 없다.”

 

 

모두 노동조합을 공격하고, 시민단체를 매도하고, 언론을 억압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가 깊이 새겨야 할 금언들입니다. 진짜 ‘햇빛’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거울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