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의회의 자료제출 요구, 정보공개법 근거로 거부할 수 없어

opengirok 2022. 11. 9. 15:23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가 은평시민신문에 연재 중인 정보공개 칼럼입니다.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론스타 관련인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열렸던 10월 6일, 정무위 소속인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론스타 관련해서 금융위원회에 자료제출을 요구했으나, 론스타분쟁 대응 담당 사무관이 정보공개법에 따라 외교 관계 사항에 해당한다며 자료제출을 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했습니다.

당장 오후에 론스타 관련 증인 신문을 해야 하는데,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가 요청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국감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오 의원은 "정보공개법은 국민이 자료를 요구할 때 적용되는 것이고, 국회 국정감사를 하는 상황에서 정보공개법을 이유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국민대의 국회 요구자료 미제출 사유

 

김건희 여사의 논문표절 의혹이 쟁점이 된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논문표절 의혹을 밝히기 위해 국민대 총장에게 증인 출석을 요구했지만 총장은 해외 출장을 사유로 불출석하겠다는 통보를 보내왔습니다. 이에 증인 출석을 회피하기 위한 해외 출장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 되었고, 교육부를 통해 해외출장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가 이어졌지만 국민대는 관련 자료가 정보공개법 상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은 최근 대통령실 청사 및 관저 공사 특혜 의혹을 밝히기 위해 조달청에 수의계약 관련 입찰제안서 자료 등을 요구했으나, 이번에도 조달청이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6호 및 7호’를 들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번 국감에서 국회의원의 자료제출 요구에 대해 각 부처들이 ‘정보공개법’을 내세워 공개를 거부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게 등장했는데,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여덟 가지 비공개 조항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비공개 근거입니다.

정보공개법 제1조에서부터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공개 청구 및 공공기관의 공개 의무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따라서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각 호의 사유들은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비공개 근거로 쓰일 수는 있어도 국회의원의 자료제출 요구에 대한 비공개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정보공개 청구와 국회의 자료 제출요구는 법적 근거와 제도의 성격 등 그 개념 자체가 아예 다르기 때문입니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는 헌법도 나타나 있는 권한입니다. 헌법 제61조 제1항은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하여 조사 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헌법에도 나와 있는 자료 제출요구에 대한 권한은 국회법, 국정감사및조사에 관한 법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증언감정법 제4조 제1항에서는 ‘ 군사·외교·대북 관계의 국가기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발표로 말미암아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에는 주무부처의 소명을 통해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거부의 근거가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는 만큼 정보공개법 등 타법의 비공개 조항을 들어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은평구의회


이런 아전인수식 비공개는 중앙부처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해 경기도에서는 언론홍보비 내역 자료를 제출해달라는 도의원의 요구에, 담당 부서가 ‘정보공개법에 따라 제출할 수 없다’고 버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은평구에서도 지난 8대 의회 당시 구청이 정보공개법을 핑계삼아 구의원의 자료제출 요구를 묵살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절차를 규정한 법률입니다. 그리고 지방의회의 자료제출 요구는 지방의회가 주민의 대표로서 집행기관을 감시하기 위해 법으로 규정된 권한입니다. 따라서 정보공개법의 비공개 조항을 근거 삼아 지방의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 된 일입니다.

국회 국정감사가 끝났고 이제 전국 곳곳에서 지방의회의 행정사무감사가 이어질 시즌입니다. 분명히 정보공개법을 방패삼아 의원들의 자료 제출 요구를 회피하는 지자체가 또 다시 등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잘못된 행태를 분명히 바로 잡아야 지방자치단체를 제대로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