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공개사유] 재난피해자의 권리는 어디에

opengirok 2022. 11. 23. 13:54

정진임 소장

 

제가 활동하는 정보공개센터에서는 어지간해서는 성명서나 논평을 내지 않는데 최근에는 한주에 하나 꼴로 논평을 내고 있습니다. 모두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내용들입니다. 특히 용산구청에 대한 것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논평] 용산구는 조직적 정보은폐 중단하라 공개 문건 비공개 전환은 알권리 침해, 진상규명 방해
[논평] 용산구,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자료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용산구청은 참사 당일 안전관리 및 행정지원과 관련해 일차적 역할을 해야 했던 핵심 기관입니다. 하지만 용산구청은 10.29 이태원참사와 관련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충분히 공개할 수 있는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수사 중이라며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2년 전인 2020년 10월에 생산해 그동안 공개했던 ‘할로윈데이 특별방역대책 관련 민·관합동 연석회의 개최 계획’ 문서를 최근에 비공개로 전환시키기도 했습니다. ‘이태원’, ‘핼러윈’ 등 키워드로 검색되는 기존 공개 문서들도 비공개로 바꾼 정황들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경찰은 참사 이전에 ‘핼러윈 기간 안전을 우려하는 내용의 정보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참사 이후 부당하게 삭제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대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멀쩡히 공개하던 문서가 갑자기 비공개로 바뀌고, 어엿하게 작성된 문서가 갑자기 삭제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관련한 모든 정보는 일단 은폐하려는 것입니다. 정보를 확인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 확인이 어려워지니까요.


세월호 참사와 너무 닮은 지자체와 정부의 대응

정부에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던 2014년 당시 해경은 정보 접근을 막기 위해 문서 제목에서 ‘세월호’라는 단어를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었습니다. 감사에 대비해 정보검색이 불가능 하도록 한 조치였던 거죠. 충분히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는 참사의 발생, 기어이 참사로 만들고 만 국가의 무능, 후안무치식의 대응. 10.29이태원참사는 슬프게도 세월호 참사와 닮아도 너무 닮았습니다.

세월호참사 당시해양경찰청문서에서 <세월호> 라는 단어를 삭제했다는 의혹에 대한 KBS 보도 ⓒKBS 화면캡처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 모두에게는 세월호 참사가 마치 DNA처럼 우리에게 새겨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온 사회가 다시는 그런 참사를 만들지 말자, 불가피할 경우가 벌어지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책임감 있게 제 역할을 하자 늘 다짐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그 기억마저 아득히 지워버린 걸까요. 어쩜 이렇게 한 치의 성찰도, 일말의 변화도 찾을 수 없을까요. 어째서 저열한 정보은폐 시도만 여전한 걸까요. 이런 상황에서 재난피해자의 권리는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까요.

지난 9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 조사가 종료되었습니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활동을 종료하며 “진실 규명, 온전한 치유, 안전한 나라”를 위해 국가에 80가지의 내용을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참사 정보의 공개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회의장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재난참사와 그에 따른 중대한 인권침해행위 발생 시, 피해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피해자 및 그 조력자가 ‘재난 참사와 그로 인한 인권침해행위가 발생한 원인 및 상황에 관한 정보를 열람하고 획득하며, 일련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음의 사항을 실행하기 바랍니다.

-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 등에 피해자 및 그 조력자가 ‘재난참사의 발생부터 사후수습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그리고 ‘재난참사 발생원인규명부터 후속 대책 수립의 전 과정에서 정확한 정보를 열람하고 적시에 획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규정하기 바랍니다.
- 「재난안전법」 등에 피해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국가가 적절하고 실효성 있는 법적·행정적 수단을 마련하고 시행하기 위해 노력할 책무’가 있고, ‘재난참사의 발생부터 사후수습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그리고 ‘재난참사 발생원인규명부터 후속 대책 수립의 전 과정에서 피해자가 참여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할 책무’가 있음을 규정하기 바랍니다.

아울러, 행정안전부 장관은 관련 매뉴얼에 재난피해자에 대한 정보제공 전담 책임자 지정 및 임무, 전담체계 구성 등을 추가하고, 「재난수습 홍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관련 교육・훈련을 강화하는 등 현장 중심·피해자 중심의 재난수습홍보체계를 구축하기 바랍니다.

-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권고 중 일부-
- 전문 살펴보기 (클릭)

 

사실 저는 사참위가 내놓은 저 권고를 보며 ‘쌀로 밥 짓는 소리’라는 농담 같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재난피해자의 알권리를 보장하라’는 건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말이 수 년여 간의 참사조사의 결과물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니. 최소한의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는 정보의 공개가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인데도 이 상식조차 기록하고, 외치고, 요구해야 하는구나. 국민이 국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이 농담 같은 상황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구나 하며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권고가 나온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우리는 정부가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또 다른 참사로 마주하고야 말았습니다. 절망 뒤에 또 다른 새로운 절망이 줄을 지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다시 묻는 재난피해자 권리

2022년 11월 22일 10.29 이태원 참사의 재난피해자들은 처음 공식 석상에 섰습니다. 그들은 “10.29 이태원 참사 유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참사 당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어디에서 무얼 했는지’를 물으며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투명한 조사, 책임자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유가족은 ‘유족 피해자들에게 사고 발생 경과와 내용, 수습 진행 상황, 피해자의 기본적인 권리 안내 등 기본적인 조치도 없었다’고 성토했습니다. 국가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위한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한지 9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9년이 지났는데도 왜 재난피해자들은 똑같은 성토를 해야 하는 걸까요. 피해자의 절규에 국가는 대체 언제 응답을 할 작정인 걸까요.

UN 피해자 권리장전에 따르면 피해자는 진실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합니다. 인권침해가 발생한 원인 및 조건에 대한 정보 접근과 알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확인할 수 있을 때야 그 진실을 딛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정보은폐 속에서 피해자와 우리사회는 이 참사의 진실에 까치발조차 디딜 수가 없습니다.

이번 참사에 책임지는 국가는 없었습니다. 단지 무능하고 비겁하며 비열한 국가가 있었을 뿐입니다. 국가가 공백인 이 상황을 시민들이 스스로 메우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결연한 목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사려 깊고 신중한 연대의 움직임들도 보입니다. 정보공개센터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이태원 참사 정보공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0.29.이태원 참사 전후에 국가기관에서 생산되고 전파된 모든 문서와 정보를 찾아내고, 정보공개청구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알아야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구 등을 통해 확보한 정보는 모두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태원참사 정보공개 링크) 또한 이 참사가 제대로 기억될 수 있도록 정보와 기록을 모으고 공유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참사를 보고 들은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는 말을 보았습니다. 경중은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이번 참사도 또다시 DNA처럼 몸과 마음에 새겨지겠지요. 우리 모두는 함께 아파하고 연대하는 시민만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피해자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묻습니다. 왜 이런 참사가 벌어졌나요. 왜 이 죽음을 막지 못했나요.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겠다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진실에 대해 알 권리가 있습니다. 

사진: John R. Eperjes

 

* 이 글은 민중의소리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