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이화동 칼럼

산업재해, 당사자와 유가족의 알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opengirok 2022. 12. 5. 10:52

은평시민신문에 실린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의 정보공개 칼럼입니다.

 


 

최근 정보공개센터에서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기업의 이름을 검색하면 해당 기업과 하청업체에서 일어났던 산업재해 사망 사고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또 사망 사고가 일어났던 사업장에서 구인공고를 내면 산업재해 사망 사고 현황을 알리는 알람 메시지를 띄워주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웹사이트를 개발하면서 한편으로는 노동안전 분야의 여러 전문가와 활동가들을 만나 ‘산업재해와 알권리’라는 주제로 인터뷰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보공개센터가 개발한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찾기' 웹사이트 소개


처음에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가 일어난 기업들의 이름이 제대로 공표되지 않아 어느 사업체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는지 구직자와 시민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산업재해 피해 당사자나 피해자 유가족들 역시 산업재해에 대해 제대로 알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피해자나 유가족이 산업재해 사고의 경위가 어떤지, 원인은 무엇인지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먼저 경찰이 유가족을 찾아 신원 확인 과정을 거칩니다. 사망자가 가족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후 자살인지, 타살인지, 과실에 의해 벌어진 사건인지 등을 분류합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유가족의 입장에서 정신없이 신원 확인 과정을 거친 다음 회사 측을 만나게 됩니다. 재해자의 작업 환경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는 유가족 입장에서는 사고 상황이나 경위에 대한 회사 측의 설명을 통해 어떤 상황이었는지 처음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많은 회사가 형사처벌이나 행정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해 사고를 빨리 수습하려고 합니다. 정확한 사고 경위를 밝히지 않고 사고의 책임을 재해자에게 돌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4년 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협착되어 숨진 고 김용균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은 사고 직후 회사 측 사람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해서’ 김용균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작업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경찰조사 이후에는 노동청과 안전보건공단이 현장조사를 진행하여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이때 현장조사를 통해 작성된 재해조사의견서가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따지는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현장조사가 끝나면 보통 작업을 재개하기 위해 청소나 정리를 진행하기에, 현장의 상황이 어떠한지 전문가가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조사 과정에 유가족이나 유족을 대리한 전문가가 사고 조사에 참여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큰 소수의 사건의 경우 유족의 현장 입회를 허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제도적 근거가 없다보니 수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유족 측의 참여를 차단하기 마련입니다. 사실 유가족들이 조사 절차를 제대로 안내 받지 못해, 현장조사 참여 요구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작성된 재해조사의견서를 살펴보면, CCTV가 없어 회사 측의 진술이 조사 내용의 결정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조사관들이 현장 상황을 제대로 살펴 철저히 조사에 나선다면 다행이지만 기본적으로 조사가 하루 이틀에 불과한 단기간에 이뤄지고, 조사 인력 역시 충분하지 않은데다가 근로감독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사고원인이 규정되기 쉽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특히 회사의 관리 감독 문제를 철저하게 따져야 하는데 CCTV나 현장 목격자가 없는 경우 회사 측의 일방적인 진술에 의존해 사고 조사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고 김용균씨 관련 재판에서도 회사 측은 CCTV가 없고 목격자도 없어서 사고 경위를 알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 조사 과정이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인 만큼 유가족 측의 주장을 반드시 반영하여 조사의견서를 작성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고 현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이 원인이 되었는지 유가족이 직접 확인하고 회사 측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조사 방향이 왜곡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재해조사 의견서 작성이 마무리 된 이후 유가족이 의견서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후 산업재해 인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해 당사자나 유족조차 재해조사의견서의 내용을 살펴 볼 수 없어 사고의 원인과 안전 의무 위반 사항을 살펴 볼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막막한 것은 재해자나 유가족이 사고 이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공식적으로 알려주거나 지원을 해주는 체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직접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영국의 경우 산업재해 사망자의 유족에게 전담관을 배치하여, 수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수사 진행은 상황이 어떠한지 재활 치료를 위해 어떤 지원이 갖춰져 있는지 알려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산업재해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법률구조공단의 중대재해피해법률지원단 등이 운영되기 시작했지만, 재해자나 유족이 이러한 제도를 알고 신청하는 경우에만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김용균재단은 2년 전 산재 사망사고 유가족을 위한 안내서 수많은 우리들이 함께 찾는 길을 펴냈습니다. 산재 사망사고 피해 유가족이 꼭 알아 두어야 할 절차, 권리와 한계 등을 안내하는 책자입니다. 세심하고, 자세하게 산재 유가족을 위한 정보들을 모아 놓은 안내서의 내용을 살펴보다가, 한편으로는 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에서 이러한 매뉴얼을 먼저 만들었다는 사실이 산재 유가족의 알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