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공개사유]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독일 임금공개법의 교훈

opengirok 2023. 2. 9. 15:00

정보공개센터가 민중의소리에 연재 중인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등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01.26. ⓒ뉴시스

 

최근 여성가족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했습니다. 이 계획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 완화를 위한 '성별 근로공시제'의 도입입니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채용, 승진, 해고, 퇴직 시 항목별로 성별 비율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제도입니다. 그뿐 아니라 매년 상장법인, 공공기관의 근로자 성별임금격차 현황을 조사하고, 또 성별임금격차 관련 통계를 세분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성별근로공시를 통해 노동시장의 성차별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성별 임금 격차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채용 및 승진, 해고 등의 인적 성비를 공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성평등임금공시라는 이름으로 성별 임금 공시를 국정과제로 추진했지만, 임금 정보는 기업의 비밀에 해당한다는 반대에 부딪혀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서울시를 시작으로 성평등임금공시제도를 시행하고, 공공 부문에서 임직원의 성별 임금 현황을 공시하도록 하는 등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음 단계는 임금 공시 내용을 구체화 하고, 이를 민간으로 확대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임금에 대해서는 '조사'와 '통계 세분화'에 그치고, 인적 성비를 공개하는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죠. 그것도 '기업의 자율'을 강조하면서요.


여성운동계는 그동안 성평등공시제의 법제화를 주장해왔습니다. 이는 지원자 대비 채용 합격자 성비, 승진 소요 연한, 고용 형태별 성비 등 성별근로공시제에서 정하고 있는 항목들 뿐만 아니라 성별·고용 형태별 임금과 근로시간 등의 정보를 공개하라는 내용입니다. 오랜 기간 성별 임금 격차가 높은 국가로 악명 높았던 독일이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임금공개법을 시행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론 독일보다 일본이, 일본 보다 한국이 성별 임금 격차가 더 심각합니다.)


독일 임금공개법은 동일 임금집단 내의 성별 임금격차를 줄여,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업무를 하는, 같은 연차의 노동자들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사업장 내의 노동자 임금을 공개하고, 기업의 임금 체계에 내재한 차별을 시정하는 제도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자 임금을 어떻게 공개하고 있을까요? 상시 200인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임금 정보의 청구권을 가지게 됩니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비슷한 연차의, 다른 성별 노동자에 대한 임금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임금 정보를 확인했을 때, 합리적인 근거 없이 임금에 차이가 있을 경우, 성차별이 있다고 보아 동등한 임금 지급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만약 사업장에서 제대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허위 정보를 제공할 경우 마찬가지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봅니다. 또, 500인 이상 사업장은 자신의 임금체계를 감사하여 동일임금 원칙이 제대로 준수되고 있는지 확인하여야 하며, 이에 대한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하도록 해 자율적인 개선을 유도합니다.



2021년 상장법인 노동자 평균 임금 기준
무려 38.1%의 성별 임금 격차
2019년 36.7%, 2020년 35.9%에 비해 확대



독일에서는 임금공개법이 시행된 이후 매년 성별임금격차가 1%p 씩 줄어들고 있어, 감소 추세가 확연해지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실제로 노동자들이 임금 정보공개를 청구한 경우는 전체 사업장의 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감사 절차를 통해 임금체계를 확인한 기업은 전체 대상 기업의 40%가 넘었습니다. 동일임금 원칙을 지키기 위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임금 체계를 점검하고, 개선하게 된 것이 성별 임금 격차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막상 독일 임금공개법이 입법 과정을 거칠 때는 기업이 임금체계를 감사하지 않더라도 처벌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기업들이 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인데, 독일 기업들이 유달리 성평등에 대한 신념이 강해서 그런 것은 아니겠죠. 그렇다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개선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임금공개와 청구를 노동자의 권리로 보장했기 때문입니다. 임금공개법의 핵심은 노동자가 임금 차별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평등한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렇게 노동자의 권리가 확대 되고, 임금 투명성이 사회적 의제가 되자 기업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지키기 위한 개선에 나선 것이죠.



OECD DATA, 2021년 기준 세계 각국의 성별 임금 격차 차트 ⓒOECD


지난해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상장법인 노동자 1인당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무려 38.1%의 성별 임금 격차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9년 36.7%, 2020년 35.9%에 비해 확대된 셈입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더 이상 미뤄선 안 되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인적 성비를 공개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성별 임금공시를 강화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공시를 기업 자율로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개별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직접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권리를 확대하고, 이를 토대로 개선을 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차별의 당사자에게 힘을 실어야, 실질적인 변화의 길이 열릴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