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유명무실 산재 정보 공개… 제때 구체적으로 해야 예방 효과
더 이상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 속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흘렀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의 재해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644명. 직전 해인 2021년보다 20% 가량 줄어들긴 했지만, 사고 유형을 살펴보면 여전히 재래형 사고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기초적인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벌어지는 사고들이다.
유사한 내용의 사고가 여러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고, 이로 인해 해마다 수백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과거에 일어난 사고들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위해 요인을 파악하여, 안전을 위한 예방 조치를 실행하는 프로세스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안전보건공단이 홈페이지를 통해 사망사고 속보를 올리고 있지만, 사고 내용을 요약하여 공개할 뿐 그 원인과 미비점을 밝히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사고 다발 업종을 중심으로 기업끼리 사고 사례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생겼지만,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언론이 나서서 다양한 산업재해 사례를 취재하고 그 구조적 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절대 다수의 사망 사고에 대해서는 단신 기사에 그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자료는 구체적인 사고 사례보다 산업재해 지표와 통계에 집중되어 있고, 기업들 역시 사고에 대한 소식을 숨기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그 원인은 무엇이고 누가 어떻게 책임을 졌는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사고 목록도, 정보도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편적으로 요약된 사고 사례만 남기 때문에, 분석하고 참고할 만한 산업재해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안전관리 담당자도, 산업안전 분야 연구자도, 정책 생산자들도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
최근 ESG 기반 투자가 세계적인 추세지만, 한국 기업은 산업안전 영역에서 참고 자료가 없어서 제대로 된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정부에서 공개하는 데이터도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기업 역시 하청회사의 산재 정보를 숨기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법 위반” 언론보도 후 73% 감소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살펴볼 수 있는 ‘사망 및 재난조사 요약’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한다. 지난 40년 동안 벌어진 산업안전 사고들의 사고 발생일, 사업장 명칭, 사고 장소, 사고의 원인과 상세 내용, 부상 정도 등의 정보는 물론이고, 사업체가 무슨 법을 위반했고 그로 인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등의 내용을 키워드 검색을 통해 쉽게 살펴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사망사고나 이에 준하는 심각한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체를 조사한 후 조사 결과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한다. 이런 보도자료에는 사업체에 대한 기본정보와 함께 사고의 경위, 법 위반 사항, 범칙금, 유사 사고 예방을 위한 교훈 등이 담겨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에서 참고 사례로 자주 언급되었던 영국 역시 미국과 유사한 중대재해 정보공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 보건안전청(HSE)은 보건안전법을 위반해 유죄가 결정된 사건들에 대해 사업체의 정보, 법 위반 사항, 구형 내용, 사고 기록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그뿐 아니라 중대재해가 일어난 경우 사고의 내용과 원인, 조사 결과, 예방을 위한 필요 조치 등을 정리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한다.
OSHA나 HSE가 이렇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중대재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공개하고, 사고 내용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이유는 기업에서 어떤 산업재해가 일어나고 있는지 더 많이 알릴수록 사고를 더 예방하고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 8년 간 OSHA를 이끌었던 데이비스 마이클스 전 청장 역시 중대재해에 대한 정보를 널리 알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심각한 법 위반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는 보도자료 하나가 210번의 안전 감독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미국의 노동경제학자 매튜 존슨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어떤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법을 위반했는지 알리는 언론보도가 나올 때 마다 반경 5km 내에 위치한 같은 업종 사업장의 법 위반 사항이 73%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감소 효과는 특히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이웃 사업장의 사고 소식이 알려지면 같은 문제가 우리 사업장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노동조합의 안전 개선 요구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사고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지역의 시민사회와 소비자들 역시 기업에 안전보건 의무 준수를 요구하게 되어,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환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안전보건 선진국들은 중대재해에 대한 정보공개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제도는 있으나 쓸모가 없다
사실 한국에서도 중대재해 정보를 공개할 제도적 근거는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 제10조에 따라 2003년부터 매년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의 명단이나 사고 발생 건수 등을 공개하고 있으며, 중대재해처벌법 제13조에서도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공표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어떤 사업장에서 무슨 사고가 발생했는지 공개하여 “사업주의 명예·신용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통한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의무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한다는 것이 이러한 제도를 마련하게 된 취지다. 문제는 현재 시행하는 공개 제도의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고, 고용노동부 역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공표 제도는 ‘통합 산재 현황 조사표’ 양식에 따라 작성한 내용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이 한 장짜리 조사표 양식에 담겨 있는 정보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무엇인지, 사업주가 어떤 의무 위반을 했는지 알 수 없어 단순히 사망 사고가 얼마나 벌어졌는지 통계적으로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게 된다.
공개 시점이 너무 늦다는 문제도 있다. 고용노동부가 매년 한 차례 자료를 공개하는데, 2022년 12월에 공개한 ‘2022년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 공표’ 자료를 보면 정작 2021년의 사고 내용을 알리고 있다. 심지어 2017년 사고가 뒤늦게 실리기도 했다. 재판이 확정된 후에야 명단을 공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2~3년 전에 일어났던 사고를 사후에 공개하는 셈이라 시의성 있는 자료로 쓰기 어렵다. 게다가 단순히 표의 내용을 PDF 파일로 공개하고 있어, 바로 데이터로 활용할 수도 없다.
다행히 중대재해처벌법에 포함된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실 공표 제도는 내용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보다는 한발짝 나아갔다. 1년에 두 명 이상 사망한 사업장에 한해 공개했던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단 한 사람이 사망하더라도 해당 사업장의 명칭과 발생일시, 장소, 재해의 내용과 원인 등을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역시도 모든 사고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그마저도 ‘형이 확정된 경우’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어 공표 시점이 매우 늦어지는 문제가 남는다. 게다가 시행령에서 홈페이지를 통한 공표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꾸준히 자료를 누적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제로 적용되어 확정되는 사례가 여러 이유로 한없이 늦어지고 있어 안전보건공단이 정보를 어떻게 공개할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사고 내용, 원인, 처벌 결과 공표해야
1년에 한 번, 사고 이후 수년이 지나 뒤늦게, 게시기간을 1년에 한정하여 공개하도록 하는 지금의 방식은 실효성도 떨어질 뿐더러 정보공개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공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어느 사업장에서 어떤 사고가 벌어지고 있는지, 사고의 내용과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처벌 받았는지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바꿔나가야 한다.
먼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유사한 공표 제도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상 공표 제도는 실질적으로 산업재해를 분석하고, 예방할 때 참고하기 위한 사고 전수 데이터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공표 대상을 ‘산재 다발 사업장’으로 한정하지 않고 모든 산업재해로 바꿔야 한다. 또한 플랫폼 노동, 농업, 어업 등 그동안 공표 대상에서 빠졌던 업종들을 모두 포괄해야 한다. 그리고 사고의 원인과 내용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공표 항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상 공표 제도는 기업의 의무 위반에 대해 보안처분의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 어느 기업에서 얼마나 법을 어겼는지, 그로 인해서 어떤 사고가 벌어졌고 무슨 처벌이 내려졌는지 공개하여 기업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중대재해 사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멀어지기 전에 사고 사실을 알려야 한다. ‘형이 확정되면’ 공개하도록 한 시행령을 개정하여, 적어도 1심 결과가 나온 직후에는 중대재해 사실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넘어서, 제도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의 구인공고에 중대재해 현황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안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난 사업장에 대해 구직자들이 충분히 정보를 제공받고, 일자리를 찾을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미 사람인, 잡코리아 등 구인구직 사이트들은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의 정보를 공개하고, 최저임금 미준수 사업장의 구인공고를 막고 있다. 직업안정법에서 직업정보 제공 사업자의 의무를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인공고를 낸 기업이 중대재해로 인한 명단 공표 사업장일 경우, 이 사실을 표기하도록 직업안정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구직자들은 보다 안전한 일터를 찾을 수 있고, 기업들 역시 구인을 위해서라도 산업재해 예방에 더욱 힘쓸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알 권리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분명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만든 법인데, 어디에도 안전보건에 대한 노동자의 알 권리를 명시한 조항을 찾아볼 수 없다. 근로자 대표의 자료 요청 권한만 존재할 뿐, 노동자 개개인이 위험에 대해서 알 수 있어야 하고, 알아야 한다는 내용은 빠져 있다.
과거 어떤 사고가 벌어졌는지, 위해 요인 측정 검사 결과는 어떠한지 등 사업장의 안전보건 정보에 대해 노동자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개별 사업장의 특성에 맞는 안전교육을 받을 권리, 안전보건 감독과 사고 조사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권리 등도 필요하다. 현장에서부터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요구할 수 있어야 반복되는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예찬 /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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