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명예가 아닌 부를 택하려면, 공직을 떠나라

opengirok 2023. 4. 26. 10:43

올해는 고위공직자의 재산정보를 공개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1993227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자신과 직계가족이 가진 재산내역을 밝혔다. 그는 본인뿐만 아니라 장관 등 정부 공직자들에게도 재산을 공개할 것을 지시하며 명예가 아닌 부를 택하려면, 공직을 떠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30년이 지났다. 20233월 말 기준 재산공개 대상자는 대통령과 장차관 등 중앙부처 814,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1,223, 국회의원 등 국회 고위공직자 333, 대법관 등 대법원 법관 143명에 달한다.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관위 등을 합하면 전체 재산공개 공직자 수는 더 많아진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중앙정부와 지자체 고위공직자 2,037명의 1인당 평균 재산은 194625만원이다. 국회의원의 경우를 살펴보면 296명 의원의 평균 재산은 348000만원이다. 이는 20223월 말 기준 국민 1가구당 평균 재산 4.5억과 비교할 때 8배 이상에 달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공개된 재산액으로는 공직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실제 재산액을 가늠하는 게 불가능하기도 하다. 재산액이 축소신고하거나 누락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부동산재산을 등록할 때 공시지가와 실거래가 중 선택해 신고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공직자는 실거래가에 한참 못 미치는 공시지가로 신고한다. 공직자 입장에서는 가시적으로는 재산이 축소되는 효과(?)를 보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의 재산공개내역을 보면 사저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26의 대지 지분과 164의 건물)18억원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간단히 인터넷만 검색해봐도 이곳의 사저보다 크기가 작은 집의 최근 실거래가만 해도 24억이 넘는다.

취득한 이후 해당 부동산을 실제 거래하지 않아 실거래가를 알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파트 실거래가격은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보다.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얘기고, 지금 공개하는 결과를 보면 공직자들이 재산을 명명백백히 공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부동산이 재산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재산증식의 주요 수단으로 인식되는 현 상황에서 시세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현행의 재산공개로는 국민의 외면만 초래할 뿐이다.

아크로비스타 네이버부동산 검색결과(검색일 : 2023.04.19.) ⓒ네이버 화면 캡처

 

실거래가 24억 넘는 아크로비스타 공시지가로 신고한 윤 대통령

재산 누락한 대통령비서실장, 늘어나는 고지거부 사례

공개하기 싫으면 자리에 앉지 마라

 

재산을 누락해 신고하거나 재산신고에서 제외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전년 대비 올해 재산이 25억이나 늘어난 것으로 신고했다. 재산이 단기간에 너무 많이 늘어 논란이 되자 그는 전년도에 신고를 누락 했다고 해명했다. 2백만원이나 2천만원도 아닌 25억원을 누락시키고도 실수라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렵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공직자의 재산 등록 사항 및 재산 형성과정을 심사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징계 등을 통해 조치해야 한다. 하지만 김대기 비서실장이 이와 관련해서 어떠한 징계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재산신고를 누락한 공직자가 김대기 실장뿐일 거라고 신뢰하기 어렵다. 이는 제도 운영의 실효성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문제다.

 

독립생계 등을 이유로 가족의 재산액을 고지 거부하는 것도 문제다. 만약 가족들의 재산도 모두 공개 대상이었다면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퇴직금을 명목으로 50억원을 선뜻 받을 수 있었을까. 참고로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은 독립생계를 이유로 재산 고지를 거부했었다. 국회의원 중 올해 재산신고에서 부모, 자녀, 손자 등 직계존비속의 재산 고지를 거부한 의원은 127명이다. 이는 직계존비속이 있다고 등록한 의원 279명 중 무려 46%에 달하는 수치다. 이 중에서 자녀의 재산고지거부만 추려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21대 국회의원의 취임 초기인 20213월 재산공개에서 자녀의 재산을 고지 거부한 의원은 46(18%)이었다. 그러나 올해 재산신고에서는 71(29%)으로 크게 증가했다. 고지거부 조항을 이용하면 재산을 은닉하거나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세습하는 것이 쉬워진다. 독립생계를 하더라도 공직자의 직계가족의 재산도 함께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재로써는 법을 바꾸고 제도를 운영하는 공직자가 자기 목에 방울을 달아놓을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쉬움이 많긴 하지만 공개된 공직자의 재산 내역으로나마 시민사회에서 공직윤리를 감시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기는 하나 이마저 쉽지 않다. 불편한 식으로 공개하기 때문이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헌법기관, 지자체의 경우 모두 제각각의 방법과 양식으로 공직자재산을 공개한다. 그마저도 PDF처럼 분석이 불가능한 형태로 공개하는 탓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공직윤리감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형태로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30년 전 공직자 재산의 공개를 강행한 이유는 단순하다. 권력을 가진 공직자가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부도덕한 방법이 동원되었는지를 살펴 공직윤리를 지키고 국민들의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서다. 공직자의 재산이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부정부패를 통해 이득을 편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개를 통한 감시와 자정 효과를 노린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도를 운영해 온 지난 시간을 살펴보면 어떤가. 재산공개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지켜졌다고 보기 어렵다. 제도적 허점도 많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공직자 재산이 공개되고 나면 누가 얼마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의 정보에 대해서만 회자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공직자 재산 관련 기사들을 읽고 나면 씁쓸함만 남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직자 제멋대로 하라고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다. 권력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명예가 아닌 부를 택하려면, 공직을 떠나라고 말이다. “공개하기 싫으면, 공개해야 하는 자리에 앉지 말라고 말이다.

 

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소장

이 글은 민중의소리 [공개사유] 칼럼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