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김조은 활동가
2023년 4월 27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는 ‘2023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 열렸다.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은 매일 5-6명의 노동자가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현실을 알리고, 기업의 산업재해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민주노총과 노동건강연대 등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2006년부터 매년 진행해온 캠페인이다. 하지만 올해 선정식에는 17년 만에 처음으로 어떠한 기업의 이름도 등장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산재사고 기업에 대한 정보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난 17년간 어느 정부, 어느 대통령 하에서도 국회의원의 자료제출 요구에 대해 산재 사망이 일어난 기업명단을 비공개한 적은 없었다.
고용노동부는 2023년 4월 22일, 이수진 의원이 요구한 산재사고사망 자료에 대해 중대재해 기업명 및 기타 기본적인 정보 모두를 가린 자료를 제출했다. 정보공개센터에서도 앞선 3월 2022년 중대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청구한 바 있었으나 원청 및 하청 업체명, 행정조치 내역, 송치 의견을 비공개했다.
고용노동부는 기업명단 제출을 거부하는 사유로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사업장명과 사업체 주소를 공개할 경우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 둘째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이에 대한 기소와 재판이 이어지기 때문에 재해조사 정보는 수사 활동 정보이고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제9조1항 4호), 셋째 중대재해 발생 사업주는 중대재해법에 따라 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확정판결 전 사업장명을 포함한 현황을 공개할 경우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주장은 황당하다. 먼저 개인사업자이든 법인이든 기업의 대표자명과 업체 주소는 기업활동에 관한 정보이지 개인 사생활에 대한 정보가 아니다. 아무리 영세한 쇼핑몰에도 상호명과 대표자, 업체 주소가 공개되고 있을 정도로 기업 활동을 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공개해야하는 정보에 대해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정보공개법을 살펴볼 때 수사활동으로 볼 수 있는 정보라고 해서 무조건 비공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4호에서 비공개로 규정하고 있는 정보는 진행 중인 재판이나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에 관한 사항 중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에 한정된다. 그런데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명과 주소, 사망자 수, 사고유형을 공개했을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00기업에서 사고가 발생해 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것일 뿐 법 위반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내용이나 증거 등 재판의 유/불리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가 아니다. 이는 사건 발생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일 뿐이며, 사실상 사망속보 및 사건브리핑과 언론보도를 통해 발생 시점에 대중들에게 공개된다. 품을 많이 들인다면 자체적으로 모을수도 있는 종류의 정보이지만 오류나 한계가 있는 정보가 유통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고용노동부가 공식적으로 기준에 따라 집계하고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재 자료 요구에 기업명과 정보 가리고 제출한 고용노동부
개인정보 침해에 피의사실공표죄 핑계까지
누구를 위한 비공개이며, 공익은 누가 대변하는가
셋째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은 꽤나 창의적이다. 산업재해사고로 사망이 발생한 경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따라 CEO는 피의자가 될 수 있는데, 중대재해 개요를 공개하면 사업주의 범죄사실이 알려지는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무죄추정의 원칙 하에서 보호받아야 할 사업주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정치인, 기업가 등의 범죄 수사에 있어서 피의사실공표죄는 그 자체로 논란이 많은 조항이다. 수사 브리핑 등의 공표 사안과 내용이 검경 당국의 의중에 따라 자의적으로 진행된다는 측면에서 공표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사회에서 발생하는 제반 범죄와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할 필요도 있어 실질적으로 죄를 적용하기 어렵고, 실제로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이 이루어진 적은 역사상 단 한건도 없었다. 대법원에서도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행위가 위법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공표 목적의 공익성과 공표 내용의 공공성, 공표의 필요성, 공표된 피의사실의 객관성 및 정확성, 공표의 절차와 형식, 그 표현 방법, 피의사실의 공표로 인하여 생기는 피침해이익의 성질,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야 한다’고 판시한바 있다. ([대법원 1999. 1. 26. 선고 97다10215, 97다10222 판결])
중대산업재해처럼 공표의 목적이 공익적이고 공공성이 큰 정보라면, 그에 비해 피의자가 침해당하는 권리가 경영 책임자로서의 명예 훼손 수준이라면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술 더 떠 고용노동부는 피의사실공표죄를 주장하면서 확정판결로 위반여부가 확정된 사업장들의 명단만을 공개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가장 황당한 대목이다. 검찰 기소 이전의 수사내용을 대상으로 하는 피의사실 공표와 확정판결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확정판결은 항소가 모두 진행 된 후의 최종 판결이기 때문에 대법원까지 쟁송이 이어질 경우 5년이 넘게 정보가 은폐될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가 무리하게 피의사실공표죄를 들어가면서 검찰 기소 이후도 아닌 확정판결 이후에나 중대재해 사업장을 공개하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검토를 했다기보다 기업의 압력에 과도하게 눈치를 보고 있거나 적극적으로 기업의 편을 들고 있다는 확신만 키울 뿐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2021년부터 중대재해 발생현황에 대한 일부 언론사의 보도 및 홈페이지 게시로 기업 등이 명예훼손 문제를 제기했다’고 비공개의 배경을 밝혔고, 지난 2년간 중대재해 현황에서 사업장 정보의 공개를 계속해서 축소하려고 시도해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 감독과 관리의 권한을 가진, 공공 부처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고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책임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이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 제10조 제1항에서는 ‘고용노동부장관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장의 근로자 산업재해 발생건수, 재해율 또는 그 순위 등을 공표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이 ‘사업장’에 대한 기준은 정부입법 사안이므로 산재예방이라는 법령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 주무부처가 주도해 충분히 공개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는 확정판결을 내세우며 때가 다 지나서야 최소한의 범위만 공표하는 기준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 때문에 시민과 국회의원이 나서서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자료제출요구를 해왔던 것인데, 이마저 사회적 관심이 커지자 기업의 편의에 맞게 돌연 비공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산업재해 기업의 정보를 요구하는 이유는 일터에서 죽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시민, 노동자들에게 기업들의 산재내역을 공개함으로서 기업 스스로 산업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 의무에 더 만전을 기하고, 안전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시민들이 정보를 요청할 때 공공기관은 사회적인 관점에서 공개로 인한 공익과 비공개의 실익을 비교하여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한다. 고용노동부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익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공이 복무해야 할 공익에 부합하는가? 비공개 결정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산업 재해에 대해 어떠한 입장과 논리를 대변하는가?
이 글은 민중의소리 [공개사유] 칼럼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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