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정보공개, ‘국민’ 아닌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

opengirok 2023. 6. 19. 13:25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가 은평시민신문에 연재하는 정보공개 칼럼입니다.


 


최근 탐사보도매체 뉴스타파는 정부가 '이태원 참사' 외국인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참사와 관련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고, 의료비 등 지원도 부족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오스트리아 국적자 재외동포 고 김인홍씨의 누나 김나리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났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피해자도 한국 국민에 준해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장례비와 구호금을 지원한 것에 그쳤다. 한국에서 오스트리아로 시신을 이송하는 과정에 여러 복잡하고 어려운 행정 절차가 있었음에도 이를 처리해주지도 않았고, 유가족에 대한 심리상담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외국인 유가족들은 희생자의 마지막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구급일지 발급 정책 역시 안내받지 못했다. 뒤늦게 구급일지를 발급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된 김나리씨는 구급일지를 발급 받고자 했으나, 소방서는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은 정보공개 청구 대상자가 아니라며 이를 거부했다. 김나리씨는 관련 기관에 항의한 끝에야, 겨우 구급일지를 받아 볼 수 있었다. 김나리씨는 그나마 한국어가 가능하고, 한국에 친척도 있기 때문에 상황이 좀 나았다. 14개 국적, 26명에 달하는 이태원 참사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 대다수는 한국어를 모를 것이고, 한국에 아는 사람도 없으니 제대로 지원을 받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CIA의 정보공개 메뉴


미국의 정보공개법인 '정보자유법'은 정보공개 청구권자를 '누구나(any person)'로 표현하고 있어, 미국 국민이 아니더라도 정부 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 이웃 국가인 일본 역시 시민권에 국한하지 않고 '누구든지(何人も)' 행정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 독일, 스웨덴, 덴마크, 우루과이, 루마니아, 스위스, 멕시코, 아르헨티나,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브라질 등 수많은 나라들이 정보공개 청구권자를 '국민'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정해두고 있다. 따라서 한국인이 미국이나 일본 정부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는 미국 CIA에 어떻게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지 설명한 글도 있다.)

하지만 한국 정보공개법은 청구권자를 '모든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고, 예외적으로 국내에 주소지를 두고 있거나, 연구 목적인 경우에만 외국인에게 정보공개제도를 열어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김나리씨처럼 국내에 주소지가 없는 외국인은 한국에서 가족이 사고를 당해도 어떤 경위로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한국 정보공개제도의 폐쇄성이 가지는 문제를 드러낸 사례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간섭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으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시민권 여부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공개를 열어놓은 것은 이렇듯 알권리는 '국경과 관계없이' 형성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인권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개헌 논의가 있을 당시 마련된 문재인 정부의 10차 개헌안에는 그동안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두었던 것을 '사람'으로 바꾸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행복추구권, 평등권, 생명권, 종교와 사상의 자유 등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국민'에 한정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개헌안에서도 유독 '알권리'의 주체는 '국민'으로 제한되었다. 이미 수없이 많은 나라가 '누구에게나' 정보접근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외국인에게 정보공개 청구를 허용하면 국가 기밀이 외국에 유출된다거나, 안보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러한 정보는 정보공개법의 비공개 조항에 따라 공개하지 않는 정보에 해당한다. 굳이 외국인에게 정보공개를 제한할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재외동포청 출범을 축하하면서 "750만 한인 네트워크가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필요한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이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750만 재외동포 중 500만 명은 김나리씨와 마찬가지로 정보공개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외국 국적자들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려면, 무엇보다 동포들에게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