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이 민중의소리에 연재하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1343일. 검찰 특수활동비 등 예산 자료의 정보공개를 청구한 2019년 10월 18일부터, 대법원까지 가는 행정소송 끝에 마침내 자료를 받아낸 2023년 6월 23일까지 걸린 시간이다. 2023년 4월 13일, 법원은 검찰이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등의 예산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지만, 검찰은 바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전자파일 형태로 자료를 요구했지만, 굳이 종이 사본으로 공개할 것을 고집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복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계속 공개를 미뤘다. 결국 판결 이후 자료를 받아내기까지 70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자료를 받고 보니 검찰이 왜 종이사본 공개를 고집했는지 알 수 있었다. 복사 과정에서 업무추진비 영수증 전체의 절반 이상이 하얗게 날아가, 도저히 알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사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항의하자 영수증의 잉크가 휘발되어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그렇다면 원본과 비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마저도 거부했다. 어떻게든 최대한 정보를 숨기려는 속셈이 드러난 것이다.
검찰은 심지어 공개해야 할 자료를 모두 제공하지도 않았다. 2017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2년 9개월 동안의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에 대한 자료를 공개해야 했지만, 아직 복사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정업무경비 자료는 겨우 5개월치만 공개했다. 그리고 한 달이 훌쩍 지난 아직까지도 나머지 자료를 언제 제공할지 아무런 말이 없는 상황이다.
시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검찰의 행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판결이 확정된 직후인 2023년 5월 2일, 2019년 10월 이후의 자료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고, 검찰은 7월 28일에 공개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막상 기한이 다가오자 7월 31일로 공개일을 미루더니, 이번에는 3년 반 동안의 자료 중에서 3개월 분량만 주겠다며 말을 바꿨다. 그럼 나머지 자료는 언제쯤 공개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바빠서 복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답변을 회피하기도 했다.
전자문서 공개가 빠르고 편한데
굳이 종이 사본 공개 고집한 검찰
영수증 잉크가 날아갔다는 황당한 꼼수
검찰 조직에 컴맹들만 모인 것도 아닐 것이고, 전자문서를 편집해서 공개하면 벌써 빨리 끝났을 것을, 최대한 정보를 숨기려고 종이사본을 고집하면서 그마저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검찰. 언제 자료를 공개할 것인지 알려주지도 않으니 아무래도 고의적으로 공개를 미룬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검찰이 이렇게 한없이 공개를 늦추더라도, 이를 처벌하거나 공개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보공개법은 정보공개 담당자가 악의적인 비공개나 고의적 처리 지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어 이러한 의무를 위반해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 검찰을 비롯한 공공기관이 정보공개제도를 악용해 고의적으로 시간을 질질 끌어도,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정부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목적에 맞게 집행되었는지, 그 내역과 증빙을 살펴보는 것은 민주 사회를 살고 있는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당연한 알 권리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기밀과 관련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검찰총장이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식당의 상호조차 공개하지 않아왔다. 같은 수사기관의 장인 경찰청장이 매달 어느 식당에서 얼마를 썼는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자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번 판결로 그동안 숨겨온 예산 정보를 공개해야 할 상황에 처하자, 이번에는 정보공개제도의 허점을 악용하여 시민의 알 권리를 훼손하고 있다. 과거 피의사실공표가 논란이 되자 ‘일개 장관이 국민의 알 권리를 포샵질’하지 말라던, 어떤 검사의 말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이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검찰 특수활동비 자료 무단 폐기 의혹, 업무추진비 정보 은폐, 고의적인 정보공개 지연 등 검찰이 숨기려 드는 진실을 국회가 밝혀내야 한다.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에 5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국회는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검찰 특수활동비 등 자료의 원본을 입수하고, 자료 폐기와 예산 오남용의 문제를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그뿐 아니라 근본적인 제도 개선도 이뤄내야 한다. 악의적인 비공개와 고의적인 지연을 방지하기 위한 정보공개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원의 공개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 취지를 어기면서 정보를 비공개하거나, 고의적으로 처리를 지연하는 행위, 악의적으로 거짓 정보를 공개하는 행위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 감추고, 숨기고, 시간을 끄는 권력기관의 ‘꼼수’가 반복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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