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대한문 앞에 뜬금없는 꽃밭이 생겼습니다.
지난 4월 4일. 식목일을 기념이라도 하려는 듯 서울시 중구청은 새벽부터 대한문 옆 거리에서 1년 넘는 시간을 농성중이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꽃밭을 만들었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이뤄진 기습철거였고,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강제철거였습니다.
새벽 5시 30분. 허술한 텐트에서 쪽잠을 자던 노동자는 갑자기 들이닥친 철거반에 의해 신발 한짝도 챙기지 못해, 꽃샘추위에 맨발로 거리에 서야 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대한문 앞에 있던 쌍용차 노조의 천막은 단순한 농성장이 아니었습니다.
부당해고, 비정규직노동으로 인해 죽어간 노동자들의 넋을 달래는 분향소이고, 정리해고, 재개발, 원전, 전쟁 등 평화를 해치는 정부에 저항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순식간에 깡그리 치워버리고, 흙을 붓고, 꽃과 나무를 심어 인도 한복판에 생뚱맞은 화단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 소식을 들으니 화단을 더욱 넓히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 마저 위태로울 판입니다.
이미지 출처 : 하승수 facebook
대한문 화단 조성 소식을 접하고는 가보지도 못하고, 책상에 앉아있는 것이 답답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보공개청구니까요.
중구청에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범대위 천막 철거 및 화단 조성 내용을 담은 문서와 화단 조성 비용에 대해 정보공개청구 했습니다.
자료를 받았는데요. 작은 내용이나마 공유하고자 합니다.
공개된 자료를 보니 <대한문 앞 불법시설물 정비계획> 이라는 공문이 4월 2일에 등록되었고, 4월 4일 자로 최창식 구청장의 결재를 받았네요.
그런데 최창식 구청장, 업무를 도대체 몇시 부터 시작하는걸까요!!
대한문 농성촌 철거가 4월 4일 새벽 5시반에 시작되었는데, 구청장 결재가 4월 4일이네요. 설마 구청장 승인도 받지 않은 채 일을 시행한 건 아닐테고 구청장이 철거 진행하려고 잠도 안자가며 결재 했나봅니다.
정비계획 내용을 보면, 보안의 이유 때문인지, 정확한 정비일시와 시간을 정하지 않았는데요. 결과를 보니, 그냥 결재 끝나자마자 시행했네요. 농성천막 철거와 화단 조성에는 가로환경과와 총무과에서 총 38명의 직원들이 동원되었습니다. 화물차 3대, 승합차 3대, 캠코더와 카메라 각 두 대씩도 동원 되었네요.
당시 현장 총괄 지휘는 백기운 가로환경과장이 했구요, 가로환경개선 1,2팀장이 정비반장을 맡았습니다.
각 인력의 임무를 보면, 일부는 농성자를 저지하고, 일부는 농성자를 진압 및 천막을 철거하고, 일부는 현장을 채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정비조 편성 및 임무에 보면 설득 등을 통해 가능한 농성자들을 천막 밖으로 유도해 진압조가 외곽으로 격리하고, 농성자들이 천막안에서 나오지 않을 경우 진압조가 기습 투입하여 외곽으로 격리하도록 하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럼 4월 4일 화단을 조성하는 데는 얼마나 들었을까요?
대한문 앞 화단 조성은 공원녹지과에서 담당했는데요. 여기에는 총 15명의 인원이 동원되었습니다. 이 분들 새벽부터 일하셨는데. 시간 외 업무수당은 다 챙겨 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공개내용을 보면 흙, 나무, 기타비용으로 총 87만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이 모든 예산은 꽃 모종을 사는 데 들어간 것이고 나머지 흙이나 나무, 등은 모두 재활용입니다.
흙은 중구청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흙과 종로구 재개발 공사장에서 반출한 흙을 사용해 비용이 들지 않았고, 4월 4일 당시 화단경계를 나누던 로프(지금은 펜스로 바뀌었습니다) 역시 재활용해서 비용이 들지 않았습니다. 꽃고 함께 심었던 회양목도 기존 가로화분 및 녹지대 수목을 재활용해 비용이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 그런데 나무도 재활용 하나요? 심어두면 그 자리에서 뿌리내리고 잘 사는 게 식물인데, 재활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생경하네요. 설마 대한문 화단 만들기 위해 다른데 멀쩡히 심어져있던 나무 뽑아 오신 건 아니겠죠?
쌍용차 24명 노동자들의 분향소가 있던 곳에, 꽃밭이 들어섰습니다.
노동자들의 죽음을 철거하고, 평화에 대한 염원을 짓밟고, 지은 꽃밭입니다.
때문에 꽃은 피었으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슬프고도 잔인한 꽃밭이 되어 버렸습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던데, 중구청장은 수많은 노동자, 시민들의 마음을 꽃으로 난도질 했습니다.
중구청장의 마음에, 노동자들의 마음에, 대한문 앞에 연대와 평화, 화해의 꽃이 피는 날이 오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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