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MB, 기록에서 노무현을 넘어섰다?

opengirok 2013. 3. 13. 10:33


전진한 소장


'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


‘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 아무리 곱씹어도 대단한 말이다. 이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관리정책 회의를 하다가 청와대 비서진들에게 던진 말이다. 실제 말만 던진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관리에 대한 집념은 엄청났다. 임기 중에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법률”(이하 기록물관리법)을 전면 개정했고,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기록물법) 제정했으며, 기록관리전문요원을 중앙행정기관에 전면 배치하는 등 우리나라 기록관리정책을 10년 이상 발전시켰다.


또한 매우 민감한 기록조차도 대부분 기록화 해 보존하는 등 ‘기록대통령’ 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심지어 ‘e-지원’ 이라는 업무관리 프로그램을 현직 대통령시절 개발해 특허를 받는 등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 결과 825만 건의 대통령기록을 남겼고, 36만 건의 대통령지정기록물, 9700건의 비밀기록을 생산했다. 다른 정책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나뉘지만 기록관리정책 만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을 공식 마감하던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국민행복제안센터 직원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옮길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이명박 대통령 역시 재임 중 기록을 대통령 기록관으로 가져가 향후 원칙적으로 15년간 본인만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뉴스1


새로운 기록 대통령의 탄생? 그러나...


5년 지난 현재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했다. 기록관리, 정보공개 정책은 안중에도 없던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하자 많은 전문가들이 그는 얼마나 기록을 남겼을지 궁금해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기록을 1,000만 건 이상 생산했다는 발표로 기염을 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넘어 선 것이다. 기록관리전문가들이 활동하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문제가 하루 종일 화제가 되었다. 새로운 기록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필자는 저 소식을 접하는 순간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불과 1년 전 청와대는 대통령실과 대통령 자문위원회 등에서 4년간 생산한 대통령 기록물 생산건수가 총 82만5,701건, 연평균 20만6,425건의 자료를 생산했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1년 만에 그 10배가 넘게 생산된 것이다. 그동안 없던 대통령기록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참여정부에서 800만 건의 기록을 생산했다는 것에 비교해 숫자를 끼워 맞췄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불경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정보공개’ ‘알권리’로 대변되는 알권리 정책은 ‘정책’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엉망이었던 '알권리 정책'


이런 의심을 하고 있는데 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언론에 의해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한 대통령 기록 중 ‘비밀기록’이 단 한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 고위관계자는 비밀기록을 생산했지만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묶어서 이관했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저런 답변조차도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기록관리 정책이 엉망이었는지 보여준다.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 캡쳐.


우선 쉽게 설명해보자. 비밀기록은 무엇인가? 보안업무규정에 따라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필수적으로 관리해야 할 ‘중요문서’이며, 정권과 관계없이 비밀을 다룰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참고해야 할 기록들이다. 요즘 같이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으면 분초를 다투며 비밀기록을 참고해야 하며, 전 정권의 준비과정은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 기록들을 모두 ‘대통령지정기록’으로 묶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지정기록은 설정 범위에 따라 15년 동안 원칙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만 열람할 수 있고, 예외적으로 열람하려면 국회의원 200명의 동의를 받거나 고등법원장의 영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면 향후 박근혜 정부에서 전 정권 청와대에서 생산한 비밀기록을 열람하려면 저런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국가안전보장을 무시한 발상이다.


15년 동안 원칙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만 열람할 수 있게 된 기록


실제 비밀기록을 온전히 생산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을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 우선 대통령지정기록물 특성상 15년 동안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나마 비밀기록 무단폐기 확인여부도 15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통령기록물법을 교묘히 이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대해 여당인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조차도 “노무현 대통령 때보다 전체 남긴 자료는 훨씬 많아졌는데 지정기록으로 되어 있는 건수는 30% 이상 줄었고 비밀기록으로 남겨두어야 될 부분들이 지정기록으로 넘어갔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정확한 내부사정은 알 수 없지만 비밀기록 자체를 관리하지 않았거나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의심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대통령기록 문제는 계속해서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사실 이런 사례는 매우 경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는 효율적인 정부를 강조하면서 기록관리정책을 의도적으로 방기해왔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설립하도록 되어 있었던 ‘대통령기록관리위원회’를 설립조차 하지 않고,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소속의 전문위원회로 위상을 격하시켰다. 또한 정보공개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 산하 정보공개위원회도 행정안전부 산하로 격하시키기도 했다. 기록관리 정책을 총괄하던 국가기록원 주요 간부보직에는 관련 전문가들이 다 밀려나고 행정직 공무원들로 채워졌다. 쉽게 말해 기록관리, 정보공개관련 기관들은 모두 격하 또는 폐지시킨 것이다.



기록관리, 정보공개 관련 기관 모두 격하, 폐지시켰던 지난 5년


이런 이유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온갖 문제가 발생했다. 온 국민을 경악시켰던 국무총리실은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사찰 관련 자료 ‘A4 용지 4만5000장’ 분량을 2010년 컴퓨터 데이터 삭제 장비인 ‘디가우저(degausser)’로 삭제해버렸다. 기록물관리법이 제정 된 후 최대 기록무단파기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건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2009년에는 보존기간 1-3년 기록은 외부위원회 심의 없이 폐기할 수 있도록 추진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기록물관리법에 따라 공공기관에 배치하도록 되어 있는 기록전문요원의 자격을 대폭 완화해 전국의 기록관리 관련 종사자, 연구자, 학생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정책에 대해서 평가를 달리 할 수 있겠지만 기록관리 정책만큼은 실현하지도 실현할 의지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 생산 기록숫자에 대해서 욕심을 부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워낙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어 다시 입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5년내내 관심도 보이지도 않다가 1000만 건의 기록을 생산했다고 자랑하는 대목에서는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불편하다. 향후 기록관리 문제가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이명박 정부의 실체에 대해서 불편한 경험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미디어스에 공동으로 게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