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이명박만 볼 수 있는 비밀기록, 냄새가 난다

opengirok 2013. 3. 26. 10:52

[주장] 원세훈 댓글 지시와 이란 콘트라 사건의 유사성

 

 "원세훈 출국 못해!" 24일 오후 인천공항 탑승장앞에서 '국내정치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출국을 저지하기 위해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과 시민들이 원 전 원장의 사진을 들고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 권우성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도피성 미국 출국을 기획하다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출국금지명령으로 좌절됐다. 이른바 '국정원녀 댓글 사건'을 비롯해 최근 불거진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문건 등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과 관련해 민변, 참여연대 등 각종 단체로부터 선거법 위반, 국정원법, 직권남용 등의 죄로 고발당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그는 개인적 비리에 대해서도 경찰, 검찰로부터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이 사건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권력기관이 각종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반드시 그 실체가 밝혀져야 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은 1986년에 드러난 미국의 '이란 콘트라' 스캔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미국이 헤즈볼라에 의해 납치된 인질의 석방 대가로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면서 그 대금의 일부가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에 지원됐다는 사실이 레바논 언론에 보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은 미국 볼랜드 수정법안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 사실은 당시 미 해병대 장교였던 올리버노스가 당시 미국 국가 안전 자문위원이었던 존 포인덱스터에게 이메일을 보낸 내용이 확인되면서 정치 스캔들이 되었다. 당시 이 사건의 조사와 폭로과정에서 사건에 연루된 주요 인사들이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전자메일의 삭제와 증거인멸을 기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란 콘트라 사건은 위키백과 인용)

 

이란 콘트라 사건이 떠오르는 이유

 

그 결과 이전까지는 기록이 아닌 단순한 정보적 자료로만 취급되던 이메일이 그 자체가 하나의 기록으로 간주되어 기록성, 획득과 편철, 보안 등의 관리적 측면을 고려하게 되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1993년 미국 공공기관에서는 이메일이 기록관리의 대상으로 포함하기 시작했다.

 

이란 콘트라 사건을 떠올리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과 더불어 청와대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직기간 동안 단 한 건의 비밀기록도 남기지 않았다고 하는 보도가 연상 되는 것은 왜일까?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사건이 어딘가 많이 닮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두 사건이 어떻게 닮아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첫 번째 공통점으로 두 사건 모두 대통령 관련성 여부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이란 콘트라 사건이 폭로된 이후 레이건 대통령 관련성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이후 특별검사에 의해 사임 직전까지 몰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의 경우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담당자만 해임되었고 레이건 대통령은 책임을 면할 수 있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관련성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민주통합당은 "MB정권 내내 대통령 독대 보고를 부활한 원세훈 전 원장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기를 문란케 한 불법적인 정치공작을 단독으로 벌였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원세훈 전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 정황이 분명하듯 국정원의 정치공작 역시 대통령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 라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의 주장을 입증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업무의 특성상 국정원장은 각종 정보나 추진하고 있는 일을 대통령에게 단독으로 보고한다. 만약 위 사건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고 받았다면 그 보고문건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정상적이라면 청와대와 국정원에 각 한부씩 비밀기록으로 보관된다. 또한 대통령은 보고 기록을 검토한 후 각 수석비서관실에 추후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와 관련된 기록들이 대통령실 비밀기록으로 생산관리 되는 것이다. 만약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사건을 인지했고, 청와대에서도 관련 부분에 대한 대책을 지시했다면 이 사건의 파장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 입증 여부도 이 문건들에 의해서 확인이 가능하다 

 

 

이명박 시장과 원세훈 부시장 시절 지난 200410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자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원세훈 행정1부시장. 권우성

  

 

두 번째로 사건 기록의 은폐다. 이란 콘트라 사건의 경우 당시 미 의회는 특별검사로 로런스 월시를 임명하여 사건을 수사 하였으며, 1988년 존 포인덱스터, 올리버 노스 등 핵심 인물을 기소했다. 그러나 포인덱스터와 올리버 노스의 묵비권 행사와 미 행정부의 정보 공개 거부 및 문서 파기 등 조직적인 은폐에 의해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는 데 실패했다.

 

한국의 경우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JTBC에 의해서 이명박 전 대통령시절 청와대에서 생산한 비밀기록이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에서 비밀기록 '무단 폐기'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의혹에 대해서 전 청와대 관계자들은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김영수 전 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 <중앙일보> 반론 기고를 통해 "첫째, 이관 기록물 중 '비밀'기록이 한 건도 없다는 보도는 자칫 이명박 정부가 비밀기록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여전히 왜 일반기록 중에 비밀기록이 없느냐는 질문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여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077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시행 이전에는 대통령기록물이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워 파기하거나 과도하게 비밀로 지정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확실한 법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꼭 보호해야 할 기록만 지정기록으로 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보다 공개성이 높은 일반기록으로 넘긴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기록물이 전 정부보다 30% 늘었으면서도 공개성이 낮은 지정기록은 오히려 30% 감소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상한 이명박 정부의 기록관리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기록관리를 담당했던 한신대학교 국사학과 이영남 교수는 "대통령실에서 생산한 비밀기록을 모두 대통령기록관으로 넘겼다는 것은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며, 대통령지정기록물 숫자가 줄어든 것이 마치 이명박 정부의 투명성을 입증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비밀기록은 업무의 연속성 측면에서 후임 대통령을 위해 기록을 남겨두어야 하고, 비밀기록 중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비밀기록을 전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했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종합하면 이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사건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성 여부는 각종 청와대 보고 기록으로 입증될 가능성이 높다. 위와 같은 기록들이 비밀기록으로 남았다면 현 정권의 고위직들이 각 기록들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핵심관계자들은 이 기록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만 볼 수 있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묶어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법을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이란 콘트라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특별검사 활동에 대해 미 행정부의 정보 공개 거부 및 문서 파기 등 조직적인 은폐의 정황들. 한국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불법행위와 이명박 정부의 비밀기록 '0'건 생산 그리고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된 주요 기록들. 미국과 한국에서 30년 시차를 두고 일어난 사건이 어딘가 묘하게 닮아 있다.

 

 

 

전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