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신지영 자원활동가
(신지영 자원활동가는 현재 네덜란드 에라스뮈스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네덜란드로 건너가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난 후로는 방학 때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듣는 단골 질문 레퍼토리가 있다. 1번 풍차, 2번 튤립, 3번 히딩크로 진행하다가 “주위에 잘생긴 네덜란드인 없니?”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대게 1번에서 3번까지의 대화는 한 두 마디 하다가 쉽게 끝나버린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에 “학과의 특성상 남자의 비율이 낮은 데에다가 그 중에는 게이가 많아서 아쉽게도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라고 답하면 모두들 네덜란드에서의 동성애에 관해 궁금해 하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나도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동성애에 개방적이고 관대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인의 사고방식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한 일화로 우리 과에 성실하고 똑부러지기로 유명한 여학생이 있는데 우연히 그녀의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가 깜짝 놀라며 ‘왜 나만 1년 넘게 정보에 뒤쳐져 있었던 것이냐’ 원망 섞인 듯 한 눈빛으로 그녀가 동성애자였냐고 묻자 그녀는 동성애자가 아니고 양성애자란다. 후에 깨달았다. 마치 내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굳이 시간을 내어 사람들이 토론하지 않는 것처럼 동성애자이든 양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네덜란드인에게는 그것이 특별하지 않는 일인 듯 했다. 몰래 뒤에서 주고받는 “너만 알고 있어야 돼” 식의 비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동성애자 권익단체 ‘GLAD’에 실린 한 동성커플의 가족 사진
위와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 한 나라로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개선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1980년대부터 사회 전반에 성적 소수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정부는 1990년대 후반에 동성 커플을 사실혼 부부관계로 인정하고 입양을 제외하고는 이성 커플들과 동일한 권리를 확보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1년 “결혼은 다르거나 혹은 같은 성의 두 사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라는 내용을 법에 명시하여 결혼이란 개념에서 동성과 이성의 구분을 폐지하였다.
한 번은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각자 어떻게 네덜란드에 공부하러 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게 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우리 과의 한 미국인 교수가 네덜란드로 건너 온 이유는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비교적 편견과 차별이 적은 이 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교수가 수업시간에 자기의 딸 이야기를 했었던 것이 기억나 내가 그가 동성애자일리가 없다고 하자 친구는 나를 바라보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빠만 둘 일수도 있지. 나 고등학교 때도 그런 친구 있었는데?”
물론 네덜란드에 이들에 대한 차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캠페인과 공익 광고 등을 통해서 동성애 차별 금지와 이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힘쓰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동성애자임을 숨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수도인 암스테르담에서는 매년 여름 게이 프라이드가 열려 성적소수자들이 당당히 거리로 나와 축제를 즐긴다. 유명인과 정치인들 중에도 커밍아웃한 사람들이 꽤 된다. 물론 숨기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그들이 아주 잘 숨기고 있어서 내가 눈치를 못 챈 것 일수도 있다는 가정을 아예 배제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차별과 편견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스스로 창피하게 여기고 숨기는 분위기이다.
이렇게 네덜란드인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게 된 데에는 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한 몫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동성애, 타민족 또는 타종교 등의 주제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아이 돈 케어.” 이처럼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간섭받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선택 할 자유가 있다고 믿는 ‘나는 나, 너는 너’의 문화가 깊게 뿌리박혀 있다. 정 많은 한국 정서로는 이것이 서로에게 관심 없어 보여 야속해 보이기도 한다지만 때로는 차이를 차별하지 않게 하는 이러한 네덜란드인들의 ‘무관심’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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