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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승 이사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민간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울시의 ‘민간일자리 징검다리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는 각종 언론의 기사가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데 그 첫머리에 ‘마을북카페 사서’라는 알쏭달쏭한 직종이 눈에 띄었다. 서울시 강서구청의 ‘구민 사서’ 명칭 문제로 도서관계가 들썩였던 게 불과 한달 전의 일이라, 설마하면서도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이미지 : 서울시 보도자료 일부 캡쳐
궁금했던 건 나 혼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트위터에서 어느 사서가 시장에게 ‘마을북카페 사서’의 의미를 물었다. 시장 대신 서울시(@seoul_smc)가 “북카페에 사서를 채용토록 추진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의미”라고 친절히 답해주신다. 과연 그럴까? ‘서울시 마을북카페 조성·운영지원 보조금 집행지침’을 들춰보았다. ‘사서’라는 말은 없고, 월 120만원을 최대 8개월간 지급한다는 ‘공간관리자’라는 말만 있다. 언제부터 ‘사서’가 시설관리자였던가?
사서란 도서관법에 따라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는 등의 교육 과정을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자격을 인정받는 전문 직종이다. 그런데 없다. ‘마을북카페’와 관련된 어떤 자료에도 ‘사서’라는 두 글자는 어디에도 없다. 4월7일치 서울시 경제진흥실 창업취업과 보도자료에는 ‘마을북카페 사서’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일자리” 중 하나라고 귀띔해준다. 당혹스럽다. 명색이 도서관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인데 이런 일자리를 모르고 있었다니. 이 사서와 저 사서는 어찌 다른 것인지 점점 미궁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3월28일치 서울시 행정지원과 보도자료는 “3명이면 마을 북카페 만들 수 있어요”라는 제목 아래 그 대상을 “마을공동체 거점공간으로서의 공공(작은)도서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언제부터 북카페와 도서관이 한 몸이 된 것인지. 점입가경이다. 작은도서관은 도서관법이 그 시설과 장서 기준까지를 정하여 지자체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는 공공도서관의 하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공립 및 사립 작은도서관은 2012년 말 기준으로 3400여개에 이른다.
하지만 만들어만 놓고 후속 지원이 없어 속수무책인 곳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원이 없으니 시설은 낡아만 가고 신간 구입 역시 원활하지 못하니 도서관은 온통 헌책으로 가득하다. 낡은 북카페의 책들이 책이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가듯, 지원 끊긴 작은도서관은 헌책방이 되어간다. 이런 형편이니 도서관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전문 인력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자원봉사자들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고, 사서는 설 자리가 없다.
책, 시설, 사서, 이용자를 도서관의 4대 요소라고 한다.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데 물과 공기가 필요하듯, 도서관이 살아가는 데 이 4가지가 모두 절실하다. 하지만 우리는 책과 시설이 무너져 내리고 사서가 설 곳 없는 이곳을, 이용자들만 덩그러니 남은 이곳을 도서관이라 부르고 있다. 도서관이 마을공동체의 중심에서 문턱 없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다. 하지만 이 또한 불편부당한 지식 정보의 차별 없는 제공이라는 도서관 본연의 기능과 함께했을 때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이 공간을 굳이 도서관이라 불러야 할 이유가 없다.
김유승 교수
이 마당에 작은도서관을 대상으로 마을북카페를 조성·운영하는 데 25억원을 지원한다고 하니 앞뒤가 바뀌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 한 해 25억을 투자해준다 치자. 그럼 내년, 내후년은 어찌할 것인가. 또 한번 허망한 이벤트에 끌려다니기에는 우리의 상처가 너무 깊다. 사서와 공간관리자, 북카페와 도서관을 그게 그것인 양 뒤죽박죽 던져놓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시성,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장기적 전망과 지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 왜냐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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