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
공무원들은 자신이 생산한 기록을 공개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 및 기록을 ‘권한’이라 여기고, 공개해봐야 민원인들에게 시달린다는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보공개청구를 해보면 ‘의사결정과정’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비공개처분을 남발하고, 청구자가 어떤 사람인지 매우 궁금해 한다.
청구인이 혹시나 자신을 괴롭힐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이런 공무원들의 잘못된 습관을 개혁하고 시민의 알권리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다. 그게 민주적 통제다. 다행스럽게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정부 3.0을 주장하면서 정보공개 대상기관을 파격적으로 늘리는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준비 중에 있다.
지난 3월 28일 인천시 지방법원 앞에서 인천녹색연합이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한 인천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_ 인천녹색연합 제공
얼마 전 정보공개센터에서는 전국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재미있는 정보공개청구를 한 적이 있다. 공무원들이 문서를 생산할 때 시스템에 공개 및 비공개 여부를 설정하게 되어 있는데, 이때 공개로 설정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청구한 것이다. 공개로 설정한 비율이 높을수록 그 기관의 투명성을 체크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우선 광주시는 2012년 한 해 동안 26만4942건의 기록 생산 건수 중 24만3057건을 공개로 분류해 92% 공개율로 전국 1등을 차지하였다. 반면 같은 기간 경기도는 200만5079건의 생산 기록 중 33만262건만을 공개로 분류해(공개율 16%)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정도 수치면 경기도는 비밀기록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국가정보원급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문서 생산 당시 습관적으로 비공개 설정을 하는 오랜 전통(?)의 결과로 판단된다.
인천시도 심각한데, 생산 문서 33만9078건 중 공개문서가 10만3862건(공개율 31%)을 기록했다. 서울시도 생산 문서 62만4712건 중 공개문서가 42만5007건(공개율 68%)에 불과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투명행정 의지와 줄기찬 개혁의지에도 전체 지방자치단체 중 12위에 머물렀다. 서울·경기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전국에서 공개 최하위를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문서를 생산할 때부터 비공개가 많으면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까? 지난 3월 28일 인천녹색연합은 인천시와 담당 공무원을 상대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5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월 인천녹색연합은 인천 문학산 토양 오염과 관련한 정보 공개를 인천시에 청구했다. 그런데 인천시는 결정 여부를 미루다가 관련 문건의 공개 판단을 연수구로 이관해버렸다. 본인들이 생산한 기록 공개 여부 판단을 기초자치단체에 미룬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인천시의 행태는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악의적인 행태다.
이런 결과는 2012년 인천시의 기록 공개율만 봐도 예상 가능하다. 아마도 경기도에는 더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무원들이 비공개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공개하는 것이 본인 업무의 편의나 이해관계를 봐서는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이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이번 결과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해 투명행정, 책임행정의 시초가 되길 바란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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