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반미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반대다

opengirok 2012. 3. 6. 11:25

"반미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반대다"

<한겨레> 2월29일치 31면 아침햇발 ‘불편한 진실① 한-미 FTA’를 읽고

한-미 FTA에 대한 반대의 본질을
반미라고 하는 것은 FTA의 본질과
그 반대진영에 대한 오해를 부른다



한국 사회는 이제 곧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하나의 ‘체제’가 시작되든지, 판을 뒤집어 거부하든지 최종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정국에 한-미 에프티에이를 반대하는 진영의 본질이 반미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눈길을 끈다. 이 주장의 주인공은 <한겨레>의 오태규 논설위원이다. 이는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이 한창이었던 2006년에서 2007년 사이 <조선일보> <동아일보>나 한-미 에프티에이를 찬양했던 논객들이 펼치곤 했던 지루한 논리인데, 그것을 2012년에 <한겨레> 지면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니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이야기가 퍽 참신하다.

오태규 논설위원의 논리를 압축하면 대략 이렇다. 민주당이 한-미 에프티에이를 폐기하자는 주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 미래전략으로 채택한 ‘동시다발 에프티에이 전략’의 폐기로 이어지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유럽연합·중국 등 거대 경제권과 에프티에이를 상정한 속에서 유독 한-미 에프티에이에만 반대 목소리가 강력한 것은 결국 반미 문제라는 것이다. 덧붙여 오 논설위원은 이 반미 문제는 80년 광주의 상처 탓이라고 말하며 이는 가슴으로는 용인하지만 머리로는 수용할 수 없는 문제라며 빨리 반미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를 종용하고 있다.

오 논설위원의 칼럼은 다분히 성찰적이다. 하지만 이런 성찰이 개인의 경험에 한정되어 한-미 에프티에이, 더 정확히 미국이 벌이고 있는 에프티에이들의 본질과 이것을 반대하는 진영에 대해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저개발국가 또는 개발도상국 간 체결되고 있는 에프티에이들과 미국이 체결하고 있는 에프티에이들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전자는 상호 우위에 있는 상품 분야에 한정되며 각자 국가의 특수성에 따라 지적 재산권이나 서비스산업에 관한 내용은 아예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에프티에이에서 제외된 부분은 변함없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적용된다. 하지만 미국이 체결하는 에프티에이는 전방위 에프티에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특히 지적 재산권과 서비스산업 부분의 개방, 역설적으로는 자본 보호가 강력해진 에프티에이들이다. 그리고 오 논설위원도 언급한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자본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즉 미국의 에프티에이 모델은 현재 존재하는 가장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통상모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려는 90년대 중반부터 논의되었고 이내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효과가 드러나면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진영은 저항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이제 비정규직과 실업 문제, 이로 인한 양극화, 경제의 금융집중화 문제 등 일반적인 신자유주의 증상과 재벌경제의 문제, 부동산 문제, 등록금 문제 등 한국 사회 특유의 문제들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중 증상들이 만들어내는 고통의 신음은 온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국제적 차원에서 생존전략으로, 국내적 차원에서 경제적 체질 개선으로 한-미 에프티에이를 꺼내들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으로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꼴이다. 그런 모순성 때문에 당시에도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의 목소리가 거셌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4년간 국민들은 위에 언급한 이중증상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거기에 충격적인 재협상 결과가 덧씌워졌다. 결국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그 본질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감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필연적인 사회적 역할임은 물론 생존의 문제이다.

오 논설위원은 아무래도 한-미 에프티에이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거나 공부하지는 않은 듯하다. 이런 그의 주장은 ‘불편한 진실’이기보다 80년 광주를 통해 한-미 에프티에이를 바라보고 있는 ‘불편한 자기고백’이다. 그에게 한-미 에프티에이가 그렇듯, 나도 그의 논리를 심정적으로 이해하나 머리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이 적지는 않을 것 같다.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간사

*이 글은 2011년 3월 6일 <한겨레> [왜냐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