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한미 FTA 발효시기 발표를 바라보며: 왜곡, 무시, 정보은폐 그리고 민주주의

opengirok 2012. 2. 24. 12:25



 

 

강성국 간사


  지난 2월 21일 밤 8시에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 발효시기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별 다른 이변이 없으면 한미 FTA는 3월 15일 0시를 기해 발효된다. 이행점검과 발효시기에 대한 미국과의 협의는 당일 오후 6시경에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통상교섭본부는 발효시기 발표 전까지 미국과의 협의과정 경과에 대한 어떠한 보고도 국민에게 하지 않았다. 발효시기 발표 기자회견에 대한 공지도 기자회견 1시간 전에나 부랴부랴 뿌려졌다. 비준이 날치기로 이루어진 만큼, 이행점검과 발효시기 발표도 날치기로 숨 가쁘게 준비한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의 섬세한 배려가 돋보이는 밤이었다.

  한 밤중의 발표로 한미 FTA에 대해 우려했던 많은 국민들이 혼란과 충격에 빠졌다. 그간 한미 FTA에 대해 비판을 제기해 왔던 야당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국민들의 이런 충격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가 이미 지난해 11월에 비준되었기 때문에 한미 FTA에 대한 발효시기 발표는 법 절차, 행정 절차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돌이켜보면 한미 FTA는 협상개시부터 늘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왔다. 협상이 출발하던 노무현 정부 때부터 사회적인 합의는 안중에 없었고 형식적인 절차만을 충족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이명박 정권의 마지막 해가 되어 발효직전에 이르렀다. 성격이 대비되는 두 정권에 걸친 명백하게 동일한 행정독재였다.

  앞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한미 FTA가 오늘 날 한국을 살아가며 느끼는 위험과 불안보다 좀 더 끔찍하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한미 FTA가 행정독재를 통해 우리 삶의 구조 위에 홀출되기 때문이다. 이미 한미 FTA의 독소조항, (긍정적 또는 부정적)경제적 사회적 효과들은 전문가들에 의해 여러 차례 치밀하게 분석되었다. 나는 이제 발효가 1달이 채 남지 못한 시간에 그것들을 반복해서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별로 없다고 느껴진다. 오히려 한미 FTA라는 결과물을 내놓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비민주주적이고 폭력적이었는지 이야기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협상 개시부터 발효시기가 나온 오늘까지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 시기까지 통상교섭본부는 한미 FTA에 대해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연구를 얼마나 진지하게 참고했는가. 정부와 국회가 주최한 제대로 된 토론은 몇 번이나 있었는가. 그 많은 정보공개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한미 FTA와 협상, 진행에 관한 정보를 얼마나 공개했는가. 정부와 통상교섭본부는 한미 FTA에 대해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연구를 ‘괴담’이라고 불렀다. 정부는 토론보다는 ‘광고와 선전’을 좋아했다. 국민들은 한미 FTA 협상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그것을 증명할 기록들이 외교통상부에 존재하기는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런 일방성은 폭력이고, 탄압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고 친숙한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사실은 학자들 간에도 논쟁이 될 정도로 무척 복잡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단순히 다수결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 다수결’이라는 논리는 민주주의라는 풍요로운 이상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 논리인가.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그 초라함에 눈물을 훔치거나 분노에 몸을 떨어야 했다. 이후 국회는 한미 FTA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총·대선 정국과 맞물려 한미 FTA 폐기론 까지 등장하는 와중에 통상교섭본부는 또다시 독단적으로 한미 FTA 발효시기를 발표했다. 2월 6일까지만 해도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한미 FTA 이행점검 상황에 대해 체계적인 보고 하나 없었는데 말이다. 정부는 당장 이번 주말부터 또 다시 대규모 집회를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저항은 사뭇 정당해 보인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배우고 자라는데, 이 나라 헌법이나 정부부처 내규, 지자체조례를 다 뒤져봐도 행정독재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