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
얼마 전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어느 기자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강원도내 골프장 숫자가 100개에 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많은 숫자의 골프장들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설 중인 골프장을 합치면 제주도의 골프장도 이미 40개를 넘어섰다’고 필자가 말했더니, 이제는 그 기자분이 놀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참으로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골프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전국의 골프장 숫자는 440개에 달했다.
200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181개였던 골프장 숫자가 불과 5년 사이에 2.5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수도권인 경기도뿐만 아니라 강원도, 충청도, 영ㆍ호남 할 것없이 전국적으로 골프장수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골프장 건설붐은 잠잠해질 기미가 없다. 강원도는 올해에만 골프장 19개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고, 전라북도 새만금 간척지에도 골프장이 대거 들어선다고 한다.
이렇게 골프장이 계속 늘어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경기활성화를 명분으로 골프장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등 골프장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때에 노골화되었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규제가 완화됨에 따라 땅값이 싼 산지가 집중적으로 파헤쳐지고 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골프장을 경쟁적으로 유치해 왔다.
법제도상으로도 큰 문제가 있다. 심지어 민간사업자가 영리목적으로 골프장을 건설할 때에 토지수용권까지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리사업에 토지수용권을 허용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골프장이 이렇게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미 경영이 어려워지는 골프장들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매년 50개 이상의 골프장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과거 일본처럼 골프장 중 상당수는 부도가 나거나 경영난을 겪을 것이다.
골프장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골프장은 지하수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다. 지하수 고갈은 인근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이다. 골프장에서 사용되는 농약 등으로 인한 수질오염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골프장 건설과정에서 삼림이나 녹지는 당연히 훼손된다.
한편 골프장 인ㆍ허가 과정은 부패의 온상이다. 공무원들만 관련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는 재해영향평가 심의과정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대학교수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골프장 건설과정 자체가 복마전인 것이다.
이처럼 골프장 문제는 단지 골프장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지상주의에 빠져있고, 말로는 투명성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부패불감증에 빠져 있는 사회. 단기적 이익에 몰두해서 경제적 타당성조차 합리적으로 따지지 못하는 사회. 장기적 미래비전이나 환경보존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골프장이 과연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인지?부터 검토해야 한다. 무리하게 건설된 골프장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골프장이 건설되고 있다. 워낙 골프장들이 무리하게 건설되다 보니 강원도에서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골프장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는 농촌지역에서는 골프장 건설의 시시비비를 가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안타까운 경우도 본다.
다행히 아직 완전히 절망할 때는 아니다. 그래도 미래를 생각하는 작은 움직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골프장이 추진되고 있는 지리산 자락의 마을 주민들을 위해 네티즌 11,029명이 600만원의 소송비용을 모아 주는 일도 있었다. 인터넷 기부사이트를 통해 일어난 일이다. 작지만 의미있는 움직임이다. 이런 움직임, 이런 의식들이 확산되었으면 한다. 더 이상 골프장이 전국을 뒤덮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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