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좌-우와 같은 구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지만, 나는 합리적이기만 하다면 보수든 진보든 좌든 우든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의견들이 서로 존중되면서 경쟁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혼란에 빠진 자칭 ‘보수’
그런데 합리적이지 못한 진보도 문제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합리적이지 못한 보수가 너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 목소리들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갉아 먹고 있다. ‘합리적 보수’라면 사회의 공동체성을 중시하고 시민들이 법과 정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자칭 ‘보수’들은 사회를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한다. ‘경제살리기’를 한다면서 경제적 타당성을 조작해서 무리한 사업(경인운하 같은)을 밀어붙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제살리기’와는 별 관련이 없는 미디어 관련 법을 밀어붙이려 한다. 이런 일들이 비생산적인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작년의 촛불 관련해서 복수(?)에 집착하는 것도 안쓰럽다. 아직도 촛불집회에 관련된 사람들을 괴롭히고 PD수첩을 수사하는 것을 보면 국가공동체의 미래보다는 자신들의 복수심에 더 집착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또한 보수가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특권층이 생겨나는 것을 견제하는 게 당연하다. 싱가포르같은 국가가 그나마 유지되는 것은 부패가 없고 엘리트들이 솔선수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수를 자칭하는 정당이 재벌이나 부동산투기세력을 옹호하고, 관료나 정치인들이 부동산투기에 앞장서며,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이 끊임없이 부패사건들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일들을 보면, 이들이 자칭하는 ‘보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도 그렇다. 보수를 자칭하는 일부 언론이나 단체들은 신영철 대법관 살리기에 나선 듯하다. 21일자 동아일보 사설은 신영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신영철 대법관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법치주의를 버린 보수주의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이는 곧 법원의 재판에 대한 불신과 법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가 원하는 사회가 법을 불신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당연히 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재판간섭행위를 지탄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법관의 신분보장을 들먹이면서 신영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을 매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법관의 신분보장은 ‘사법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단이다. ‘사법의 독립’을 해친 사람을 법관의 신분보장이라는 방패로 보호하려는 시도는 자가당착일 수밖에 없다.
자기 욕망과 이해에 충실한 수구는 보수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자칭 ‘보수’들을 가장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자기들의 욕망과 이해에 충실한 모습들을 볼 때이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권력에서 소외된 게 억울해서 청와대나 정부부처에 들어가려는 것은 그나마 낫다. 심지어 지방 구석구석까지 낙하산 인사를 하려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얼마전 제주공항에 있는 면세점을 운영하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은 국무총리실의 특별감사를 받고 임기를 7개월 남긴 채 사퇴를 해야 했다. 그렇게 생긴 빈자리에 낙하산으로 사람을 내리꽂고, 전문성도 없는 사람들이 줄만 잘 잡으면 억대 연봉을 보장받는 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사기업 사외이사까지도 자기 사람들로 채운다고 하니, 단군 이래 최대의 논공행상을 하는 정권이라 할 만하다.
보수는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키려 할 때에 ‘보수’일 수 있다. 낙하산 인사와 같은 잘못된 관행은 지키면서, 자신들에 비판적인 목소리에는 칼을 들이대고, 국가권력을 복수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은 보수를 자처할 자격이 없다. 이들은 욕망에 영혼을 넘긴 ‘영혼이 없는 수구’에 불과하다. 정말 ‘합리적 보수’가 아쉬운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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