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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표 '통비법'은 국정원을 위한 <통신비밀남용법>

opengirok 2009. 3. 11. 15:02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장정욱 회원


한나라당은 지난 2008년 10월 30일 이한성의원의 대표발의로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정원의 권한을 지나치게 강화하고 감청을 무차별적으로 확대 시키는 법이라며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였습니다. 신중해야 한다지만 내용을 보면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가 큰 이번 개정안에 대한 반대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통비법에는 도대체 어떤 내용들이 있어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국가인권위원회도 반대하고 있을까요?

한나라당의 개정안이 통비법의 본래 목적에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통비법의 취지는 현행 통비법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통신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신장함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물론 "그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 절차"를 통해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에 대해 제한할 수 있으나 범위는 최소로 하는 것이 원칙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통신비밀보호법보다는 통신비밀사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통신제한조치 집행의 협조에 필요한 전기통신사업 장비 등 구비의무"를 신설하는 것입니다. 또, 통신자료를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의 보호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범위내에서 수집하고 수집목적이 다한 경우에는 즉시 폐기하는 것이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기본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나서서 민간사업자에게 불필요한 개인정보의 수집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입니다.


국민모두를 예비적 범죄자로 상정한 상시감시체계

굳이 이번 개정안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국가정보원이 직접 운용하던 감청장비를 민간사업자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국가정보원을 통해 드러난 불법 도감청 사례등을 볼 때 긍정적인 제도개선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사생활정보를 상시적으로 기록하고, 언제든지 정보수사기관에 넘겨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허용될 수 없는 기본권의 제약이며, 국민 모두를 예비적 범죄자로 보고 상시감시체계를 꾸리겠다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또한, 민간사업자가 장비 등의 구비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10억원 이하의 범위 안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최근 민간기업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보를 의무적으로 보관하게 한다면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범죄악용 가능성도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프라이버시 침해를 확대하는 이상한 보호법

감청과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보관‧제공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상당히 침해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수단이 없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에 위치정보를 추가하고, 대상범죄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을 추가확대함으로써, 통신비밀 및 개인정보에 국가의 개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의 심각한 문제는 외국인의 경우에 국정원이 직접 감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정원에 의한 감청의 남용과 불법감청의 소지를 막겠다는 취지로 민간업자에게 부담을 지우면서도 국정원에 대한 직접감청을 예외로 두는 것은 왜 그런 걸까요? 지난 정부에서 국정원은 이동식휴대전화 감청장비(카스, CAS)와 유중계망을 이용한 감청장비(R-2) 운용과 관련하여 큰 물의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대공수사나 안보 목적과 관계없는 도청을 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른 사안을 가지고 감청영장을 받거나 대통령 승인을 받은 뒤 일부 인사들의 전화번호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도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불법도감청을 자행해오던 국가정보원이 합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무차별적인 감청을 하려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명분은 감청장비 간접운용, 실제는 국정원 마음대로?

이번 개정안에서도 외국인 통신과 군사 목적의 통신은 각각 국정원과 기무사가 통신업체에 위탁하지 않고 직접 감청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국정원이 직접 감청을 하기 위해서는 이동통신과 인터넷을 포함한 통신서비스를 감청할 수 있는 장비를 따로 갖춰야 할 것입니다. 외국인의 경우 대통령의 승인만으로 감청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감청의 대상이 누구이고 어떤 목적인지 국정원만이 알 수 있게 됩니다. 통신사업자 등에게 부담을 지워가며 감청설비를 의무화하고 국정원이 직접 감청을 하려는 이유는 간접방식으로 통제력을 높이는 것처럼 선전하여 반발을 최소화하고 한편으로는 예외조항을 통해 직접감청을 하려는 것입니다.

이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국정원 개혁을 표방했지만 실제로 국정원을 개혁하지는 못했습니다. 수사권폐지나 정보전담기구로의 개편등의 개혁방안은 제대로된 논의조차 되지 못했고 테러방지나 산업정보보호를 명분삼아 국정원의 권한만 강화되었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된 사과나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은 없었고 최근에도 국정원의 정치개입사례는 수없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이후 정치정보 수집이 노골화 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임명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현행 국가정보원법에서 정치정보수집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정치정보수집이 불가피하다며 정보정치, 공안정치가 노골화 될 것임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국정원에 감청장비를 직접 운영하게 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입니다.


한나라당 개정안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

통신비밀보호법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또 한나라당의 개정안 중 제15조의 2에서는 기존 전기통신사업자를 전기통신사업자 '등'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 범위는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으므로 감청설비의 설치 및 활용범위가 무제한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동안 감청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조차 논란이 되었던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전자우편, 인터넷 쪽지 등에 대해서도 합법적인 감청이 가능해지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용카드·지하철·버스카드 사업자 등 개인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가진 모든 곳이 정보·수사기관의 감청 및 통화내역 제공 요청 대상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국민의 개인 사생활은 낱낱이 노출되고 기록될 것입니다. 합법적인 절차를 따른다고는 하나, 법원의 통제없이 정보기관‧수사기관이 감청에 착수할 수 있는 예외를 폭 넓게 두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럼 통신비밀보호법을 현행대로 놔두면 되는 걸까요? 현재 감청을 허용하는 범죄는 280여개입니다. 특히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이에 관한 정보수집이 특히 필요한 때에는 매우 완화된 요건으로 감청 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정보원의 감청이 남발되고 있습니다. 감청 대상 범죄를 축소해야 합니다.


통신비밀남용법이 아닌 보호법이 되도록 개정해야

현재 피의자가 아닌 피내사자에 대해서도 감청을 허용하고 있고 감청기간도 2개월에 2개월 연장이 가능하도록 해 최대 4개월간 감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피내사자에 대한 감청을 중지하고 감청허가 청구서에 다른 방법으로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현저히 어려운 이유를 상세히 기재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감청기간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현행 법원의 허가없이 36시간까지 감청 할 수 있도록 한 긴급제한조치도 폐지해야 합니다. 감청이후 감청 대상자에게 예외없이 상세히 통지하도록 하는 것도 프라이버시권의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이미 18대 국회에는 감청의 범위를 제한하고 법원과 의회의 통제력을 높일 수 있는 개정안들이 발의되어 있습니다. 통신비밀보호가 아닌 통신비밀남용을 불러올 한나라당의 통비법 개정안이 아니라, 헌법 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정신에 가깝도록 보호를 위한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 이 글은 "민중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