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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프로 못질러'

opengirok 2023. 5. 30. 11:09

[인터뷰]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소장
“권력의 속성은 비밀주의..정보공개는 비밀주의에 균열을 내는 활동”
올해 15주년..판례와 활용 단체↑, 협업 사례 보며 정보공개의 소셜임팩트 확인
센터 소장으로서 거둔 성과? 조직문화 꼽고 싶어..활동가들의 효능감 중요

정보공개는 권력의 속성인 비밀주의에 균열을 내는 활동입니다.


지난달 13일, 현직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특활비 등을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2017년 1월 1일부터 2019년 9월 30일까지,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의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의 세부 집행내역(집행 건별 일자, 금액 등)과 지출 증빙서류(지출결의서, 내부 결재서류, 현금수령증 등) 중 개인정보를 제외한 모든 자료 일체를 공개하라.

고 판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2017년 5월22일 ~ 2019년 7월24일)과 검찰총장(2019년 7월25일 ~ 2021년 3월4일)으로 재직한 바로 그 기간이다.

정보공개센터·뉴스타파·세금도둑잡아라·함께하는시민행동 등이 정보공개청구에 나선 게 2019년 10월이니 대법원 판결까지 약 3년 하고도 반 년 정도 더 걸렸다. 정보공개센터의 정진임 소장에게 그렇게까지 오랜 기간 싸울 만큼, 시민들이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거 다 우리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오히려 ‘그걸 왜 몰라야 돼?’라고 되묻고 싶어요.”

(기자 : 시민들의 돈이 들어갔다고 해서 모든 내역을 다 들여다봐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안보상의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수사상의 필요도 있을 수 있잖아요.)

정진임 소장/사진=정재훈 기자 출처 : 소셜임팩트뉴스(https://www.socialimpactnews.net)


“모든 공공기관의 예산은 공개되고 시민들이 확인하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기본원칙입니다. 특수활동비요? 정말 이름처럼 특수한 목적을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집행돼야죠. 하지만 권력기관은 반대로 움직여요. 권력의 속성이 바로 비밀주의니까요. 정보공개는 바로 그 비밀주의에 균열을 내는 활동입니다. 당연한 비밀과 영원한 비밀은 없어요.”

정보공개센터는 그런 조직이다. 권력이 비밀주의로 ‘콘크리트’친 벽에 기꺼이 못이 돼 균열을 내겠다고 나선 그런 조직.

견고하게 올린 콘트리트라 깨기도 어렵고 깰 때면 시끄럽기까지 하지만 정보공개센터는 개의치 않는다. 그 안에, 원래 시민의 것이었던 자리를 드러내기 위해 언제든 못이 되겠다는 입장이다.

15년째 권력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는 프로 못질러, 정진임 소장을 만났다.

누구나 정보공개 청구할 수 있는 시대에도 정보공개센터가 필요한 이유

정보공개센터(이하 센터)는 2008년 10월 9일 창립됐다. 지난 15년간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을 상대로 정보공개운동을 전개하고 ▲정보공개 활성화를 위한 교육 및 출판 ▲정보공개 제도개선 ▲시민단체 활동 및 언론사 탐사보도 지원 등에 나섰다.

센터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당장 정보공개만 해도 ‘공공기관의 행정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1998년 1월 1일 이래로 누구든지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청구한다고 다 ‘공개’ 처분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심지어 정보공개법은 처벌조항이 없어서, ‘정보가 없다’고 공무원이 거짓말을 해도 달리 처벌할 방도가 없다. 참여연대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어느 정도 규모가 있고 경험이 있는 단체들은 그나마 대응할 여력이 있다지만 규모가 작은 단체들이나 언론사는 여전히 ‘정보공개’라는 도구를 무기화하기 어려워한다.

정진임 소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시민단체의 정보공개와 차별화되는 센터만의 역할이 있다고 강조한다.

“정보공개센터만의 차별성 내지 역할은 (작은 단체나 언론사 등이) 정보공개를 자기 운동의 도구, 더 나아가서는 단체의 무기로 삼을 수 있도록 했다는 데 있다고 봐요. 일단 홈페이지 가면 자료 다 볼 수 있어요. 또, 우리는 공개된 자료를 가지고 ‘이런 저런 문제점 있습니다’라고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이 자료를 받아 내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했어요. 그 로데이터(원자료)는 이겁니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진임 소장은 “제도 개선 목소리를 낼 때에도 정보공개운동 조직으로서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단체들마다 각자의 의제가 있어요. 환경이면 환경, 노동이면 노동 등. 해당 분야와 관련해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등의 활동을 하죠. 하지만 정보공개제도 개선 자체에 집중하는 건 또 다르거든요. 공무원들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들도 알아야 하고, 그것에 대응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저희가 꾸준히 활동을 해 왔죠.”

지날 4월 3일. ‘공직자 재산공개 30년, 제도개선 촉구’ 시민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소장(맨 오른쪽)/출처=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


그래서일까. 협업을 요청하는 기관들이 꽤 많다. 환경·노동·인권 등 다양한 의제를 가진 시민단체와 결합해 이들의 의제가 세상 밖에 드러나도록 센터도 함께 돕는다. 

“정보공개운동은 알 권리와 연결돼요. 근데 이 알 권리라는 말이 사실 여기저기 잘 붙어요. 대표적으로 ‘알 권리가 살 권리’ 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노동건강운동하시는 분들이 주로 쓰셨던 말씀인데, 이태원 참사 때도 등장했어요. 근데 과거사 진상규명 하시는 분들도 쓰시더라고요. 왜 그런가하고 보니, 정보가 있어야만 그 다음 논의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우리 센터가 창출한 사회적 성과나 가치가 여러 단체 그리고 의제와 결합해 일종의 집합적 성격, 즉 콜렉티브 임팩트라는 분석에 동의해요.”

“정보공개의 사회적 성과는 '측정'이 매우 어려워..조직문화 통해 활동가 자기 성취 확인시켜주고파”

“기본적으로 공직사회 투명성에는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요구하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물론) 누군가는 이제 버티기도 하겠지만,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공개됐을 때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안 할 수밖에 없는 게 공무원의 특성이고요. 언제든지 공개될 수 있는 정보는 공개돼야 한다는 점이 정부의 투명성이나 부패 방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김정동 활동가는 지난 2월, 이후연구소에서 작성한 센터의 소셜임팩트 보고서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정보공개가 공공기관의 투명성 및 부패방지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현장 출신 활동가의 설명이었다. 이 밖에도, 이번 검찰총장 특활비 공개 판례나 정보공개를 운동의 도구로 사용하는 단체 현황, 그리고 협업 사례 등을 종합해보면 정보공개가 시민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정보공개운동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그 가치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비슷한 문제를 겪지만, 말 그대로 "공기 같은 알 권리" 운동을 전개하는 센터 입장에서는 그 활동이 뚜렷하게 구별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냥 '꾸준히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봐야 될 것 같아요. 정보공개센터가 만들어지기 전보다는 훨씬 더 언론사나 시민단체들이 정보공개 제도를 많이 활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다만) 그게 이제 측정하기는 참 어려운 (문제라)..."

정보공개센터 초대 소장을 맡았던 하승수 변호사도 소셜임팩트 보고서 인터뷰에서 이 부분을 아쉬워 했다.

정진임 소장/사진=정재훈 기자 출처 : 소셜임팩트뉴스(https://www.socialimpactnews.net)


정진임 소장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다만 그것이 단체의 자랑거리를 놓쳐서가 아니라 활동가들의 자기 성취를 확인할 길이 부족하다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다.

“일반적인 회사는 매출이나 순이익, 영업실적 등 지표를 보면 바로 나오잖아요. 근데 여긴 정량적으로 사회적가치를 측정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활동가들이 자기 활동에 효능감 내지는 자기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은 필요하거든요. 그래야  활동이 오래갈 수 있으니까요. 아무런 동기부여도 없이 어떻게 버틸 수 있겠어요.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이룩한 성취를 확인한다고 생각해요.”

정진임 소장이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이 같은 맥락이다. 정 소장은 단체의 미션과 비전에 활동가 개인이 얼마나 밀접하게 개입(관여)하고 있는지 확인시켜주기 위해 조직문화에 각별히 신경 쓴다.

“저희는 공식적으로 결재가 없어요. 조금 큰 기관들 같은 경우에는 단계 단계별로 컨펌을 다 받아야 하는데 저희는 활동가가 뭔가 하고 싶다고 얘기를 하면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구조예요.” - 강성국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결재라는 단계에 가기 전에 이미 대화를 많이 하니까요. 그게 저희 조직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에요. 센터의 미션이나 비전에 대해서 대화를 꽤 많이 하는 편이에요. 평상시에도 하고 날을 잡고 하기도 하고. 상시적으로 대화 채널을 구축해 놓다보니까 그런 형식적인 컨펌이 필요가 없죠. 활동가가 ‘저 이거 할래요’ 하는 게 거의 다 단체의 미션이나 비전에 대부분 들어와요.”


[에필로그] 정진임 소장과의 일문일답.

정진임 소장/사진=정재훈 기자 출처 : 소셜임팩트뉴스(https://www.socialimpactnews.net)


기자: 2008년 창립 초기 멤버다.

정진임 소장(이하 정진임): 맞다. 대학원 졸업하고 ‘뭘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선배(당시 전진한 사무국장)가 제안을 했다.

기자: 아무리 선배가 제안을 한다고 해도, 이제 막 출범한 시민단체에 들어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정진임: 나는 학교 다닐 때도 이른바 운동권 전사는 아니었다. 그냥 집회나가는 정도지. 그래서 일단 활동가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다(웃음). ‘한번 해봐도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어렸다. 그 당시 만으로 25살이었다. 그 때 속으로 “내가 5년을 여기서 일해보고, 힘들어서 나와도 30살이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조금 진지하게 얘기하자면, 센터가 끌리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내가 당시 대학원에서 기록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앞둘 때였다. 기록은 공개되고 활용될 때 의미가 있는 것 아니었나 하고 생각할 때 였으니, 센터는 분명히 매력이 있었다.

기자: 학부에서도 기록학을 공부했나?

정진임: 학부에서는 역사학, 대학원에서는 기록학을 공부했다.

기자: 이게 자연스러운 흐름인가?

정진임: (웃음) 대학원을 기록학으로 결정한 건, 나는 당대의 기록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네가 공부가 일천하여 그런 것’이라고 얘기할 수 도 있겠는데, 나는 (학부 전공인) 역사의 현재성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

기자: 기록학 대학원의 졸업 후 진로는 보통 어떻게 됐나?

정진임: 나 때는 거의 90% 이상이 기록연구직이라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곤 했다. 내가 활동가를 택한 이유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공무원 재미없을 것 같았다.

기자: 혹시 공무원 할 생각은 전혀 없나?

정진임: 전혀 없진 않다. 만약에 하게 된다면 6급 공무원 하고 싶다. (왜 6급인가?) 기안과 결재의 중간에서, 행정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결정돼서 집행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록으로 남는지 확인하고 싶다.

기자: 만약에 본인이 기자라면 부처출입 vs 정보공개센터 출입, 어떤 걸 하겠나?

정진임: 부처출입. 왜냐하면 정보공개센터는 어느 누구에게나 오픈이 돼 있기 때문이다.

기자: 원하는 센터 인재상은?

정진임: 정확한 문제의식을 가진 활동가. 자기 문제의식이 뚜렷한 활동가를 원한다.

기자: 센터 올해 계획은?

정진임: 오픈와치라는 권력 감시 데이터 사이트를 연다. 권력을 감시하는 데이터를 만들어서 해마다 정리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 중으로 계획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뉴스타파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사이트와 유사하고 미국에서는 오픈시크릿츠(opensecrets.org)를 생각하면 된다.

기자: 지난달에 행사를 열고 15주년 기념으로 소셜임팩트 보고서를 공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쯤 공개될 예정인가?

정진임: 5월에서 6월 즈음에 공개될 예정이다. 디자인 부분​​​​​에 대한 것만 결정하면 되는 상황이다.

기자: 센터 소장은 언제까지 할 예정인가? 소장을 마치면 무슨 일을 하고 싶나.

정진임: 다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내려오겠다. 그리고 나는 활동가가 더 좋다. 만약에 활동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회의공개법을 꼭 만들고 싶다. 지금은 소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아 온전히 집중을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중위소득 등 우리 생활을 결정하는 정책들이 지금도 회의를 통해 결정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즉시 공개해야 의미가 있다.

기자: 창립 멤버이자 현 소장으로서 단체의 15년 성과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

정진임: “모든 시민이 알 권리를 누리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사회를 만듭니다”가 우리 센터 미션이다. 이걸로 갈음하고 싶다.

 

※ 해당글은 소셜임팩트뉴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