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에 연재 중인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지난 대선, 윤석열 후보가 내세운 공약 중에서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공약이 있었다. 바로 ‘공직자 재산공개 DB 일원화’ 공약이었다.
공직 감시의 창구, 재산공개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부터 시행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기본적으로 4급 이상의 공직자들은 재산등록을 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1급 이상의 공직자, 선출직 공직자, 부장판사, 검사장 등 고위공직자들은 새로 직에 오를 때, 그리고 매년 3월 정기적으로 재산을 공개해야만 한다.
재산공개 제도는 지난 30년 동안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를 감시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해왔다.
2019년 한겨레는 국회의원의 재산공개 내역을 뒤져 농지를 보유한 99명 의원들을 취재, 자신이 소유한 농지 근처로 도로를 깔거나 개발 사업을 추진해 부당 이득을 취한 사례들을 밝혀냈다. (탐사기획 -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2021년 한국일보는 한 발 더 나아가 전체 고위공직자들의 농지 보유 현황을 뒤져 '농지에 빠진 공복들'이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를 내놓았다. 고위공직자들이 소유한 농지가 여의도 면적의 1.4배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보도에서 다뤄진 지방의원 몇몇은 이후 농지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 벌금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포커스 취재 - 농지에 빠진 공복들)
재산공개 제도는 언론 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에게도 유용한 공직 감시의 도구가 된다. 경실련은 최근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4개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보유 현황을 분석하고, 다주택자나 상가 보유자, 농지를 보유한 의원들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충돌 심사가 필요하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 부동산정책 관련 4개 상임위 배정 국회의원의 부동산 보유 현황 분석발표) 부동산 정책에 관여하는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던 것 역시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재산공개 방식
그런데, 재산공개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벽이 존재한다. 먼저, 재산공개 대상인 고위공직자의 수가 6천여 명에 달하는데, 이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관할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중앙 정부,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 별로 260여개 기관에 각각 쪼개져서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공직자의 재산이 공개되더라도 그 정보를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 따로, 국회 따로, 지방의회 따로 웹사이트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의 경우 국회 홈페이지에, 광역의원의 경우 대한민국 전자관보 사이트에, 기초의원의 경우 광역시도 홈페이지에 접속해야 재산 내역을 살펴볼 수 있는데, 이렇게 정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일반적인 시민들이 정보들을 모두 찾아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었다.
그뿐 아니라, 재산공개를 ‘관보’의 형태로만 공개한다는 것 역시 큰 문제다. 현재 공직자의 재산공개는 공직자윤리법 제10조제1항에 따라 재산 내역을 ‘관보 또는 공보’에 게재하도록 되어 있고, 시행규칙 별지 제 10호 서식에 따른 표 형태로 공개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관보’는 PDF 포맷의 전자문서이고, 시행규칙에 따른 표는 재산 내역을 손으로 적어내던 시절의 서식을 거의 그대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렇게 공개된 파일만으로는 공직자들의 재산을 서로 비교하거나,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정렬하거나 필터링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PDF라는 파일 형식과 표 서식이 결합되어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데이터로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따라서 언론사나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직자들의 재산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 수십 개 정부 기관 사이트를 하나 하나 찾아다니면서 각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관보 파일을 하나 하나 다운로드 받고, 이걸 파일들을 변환하여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의 데이터로 가공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이러한 작업에는 매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데이터로 변환하는 기술 역시 개발자들이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직자들의 재산이 공개되더라도, 언론사들은 시간과 인력의 부족으로 주로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 관할의 공직자들이나 국회의원들에 초점을 맞춰 자료를 살펴보고 분석하는데 그쳐왔고, 지방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의 기관장들까지 살펴보고 감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재산공개 방식의 문제 때문에 ‘감시의 사각지대’가 생겨버린 것이다.
이런 구시대적인 재산공개 방식을 비판하면서, 공직자 재산을 데이터화 하여 공개하라는 목소리들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정보공개센터는 지난해 코드포코리아와 함께 공직자 재산 공개 내역을 국민이 손쉽게 활용하도록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로 제공해달라는 정책 혁신 제안에 나섰다. (링크) 올해 정기 재산공개 이후에는 동아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파이낸셜뉴스 등 여러 언론매체가 재산공개 방식 개선을 요구하는 기사를 일제히 쏟아내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재산공개 방식을 데이터(기계 판독 가능한 형태)로 공개하라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후보가 내세운 ‘공직자 재산공개 DB 일원화’ 공약에 기대를 걸었지만, 취임 이후 몇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반쪽짜리 공약에 그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가지게 되었다.
‘DB 일원화’에서 ‘통합공개’로 슬쩍 바뀌다
처음부터 살짝 불안하긴 했다. ‘공직자 재산공개 DB 일원화’ 공약은 유튜브 쇼츠 영상으로만 발표되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공직자 재산공개’를 ‘데이터베이스(DB)’로 ‘일원화’ 하여 공개하겠다는 것이니, 그동안 재산공개 방식의 개선을 요구해 온 시민사회단체나 언론의 요구가 반영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백서와, 정부 출범 이후 발표한 120대 국정과제를 살펴보면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분명 공약의 내용은 ‘공직자 재산공개 DB 일원화’였는데, 어느새 ‘DB’라는 단어가 빠져버리고 ‘재산공개 창구를 일원화’한다거나 ‘통합공개’한다는 표현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재산공개 방식의 문제로 1) 공개 창구가 개별 사이트로 흩어져 있다, 2) PDF 형태의 표 형식으로 공개 된다는 두 가지가 지적 되어 왔다. ‘공직자 재산공개 DB 일원화’라는 공약은 더 이상 전자문서의 표 형식으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DB)로 공개하고, 창구를 ‘일원화’ 한다는 점에서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정작 정부 출범 이후 국정과제로는 ‘창구 일원화’만 언급되기 시작했고, PDF 포맷이나 표 서식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져 버렸다.
반쪽짜리에 그친 재산공개 제도 개선
8월에 들어서자 인사혁신처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인 공직윤리시스템에 재산등록상황 공개목록이라는 새로운 페이지가 생겼고, 2022년 8월 이후의 재산공개 자료를 제공한다는 설명이 붙었다. 그동안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 별로 쪼개져서 공개하던 재산공개 자료를 앞으로 해당 페이지에서 통합하여 공개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창구 일원화’가 이뤄졌다는 것은 분명 이전보다 개선된 것이지만, DB에 대한 내용은 결국 찾아볼 수 없었다. ‘반쪽짜리’ 공약에 그쳐버린 셈이다.
공직자 재산공개의 주무 부처인 인사혁신처는 공직자윤리법에서 ‘관보 또는 공보’에 게재하여 공개하도록 되어 있는 이상, 국회에서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데이터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아마 ‘재산공개 DB 일원화’라는 공약이 인수위를 거쳐 국정과제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창구 일원화’라는 표현으로 정리된 것에도 주무 부처인 인사혁신처의 이러한 입장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짐작한다.
그러나 공직자윤리법에서 ‘관보’를 명시하고 있더라도, 결국 관보의 내용을 이루는 표 서식은 법이 아니라 시행규칙으로 정해진 것이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시행규칙 별지 제10호를 개정하여, 시민들이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서식으로 공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직자윤리법을 핑계 삼아 구시대적인 공개 방식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내걸었던 공약이 이렇게 반토막 났다는 사실을 윤석열 대통령은 제대로 인지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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