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가 은평시민신문에 연재하는 정보공개 칼럼입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 하다보면 공공기관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 받는 일들이 종종 생깁니다. 저는 정보공개 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일하다보니, 정보공개심의회에 위원으로 참석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정보공개심의회란,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위원회로, 주로 정보공개 이의신청에 대해 심의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느 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을 때, 1차적으로는 공공기관 담당자의 판단에 의해 공개 여부가 갈립니다. 만약 청구인이 그 결과에 납득하지 못해 이의신청을 할 경우, 정보공개심의회가 열려 해당 안건에 대해 심의해 공개 여부를 논의한다고 보면 됩니다.
정보공개심의회의 위원은 기관 소속 공무원이나 임직원, 그리고 외부 전문가로 구성하게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전체 위원의 2/3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해야 합니다. 정보공개에 대한 판단을 공무원들에게만 맡겨둔다면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기 쉬우니, 외부 전문가들도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다시 한번 판단을 내리도록 제도화 해놓은 것입니다.
정보비공개에 대한 이의신청이 접수되어 정보공개심의회가 열리면, 보통 다음과 같은 순서로 회의가 진행됩니다.
먼저, 정보공개 담당자가 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회의 날짜를 잡습니다. 회의 날짜가 잡히면, 논의할 안건의 내용을 메일로 전달합니다. 회의가 열리면, 해당 정보를 관리하는 담당부서의 공무원이 어떤 정보를 청구한 것인지, 비공개 통지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위원들에게 설명합니다. 이후 위원들 간의 논의를 통해 이의신청에 대해 어떻게 답변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공개・비공개 여부가 명확하여 길게 논의할 필요가 없는 정보도 있지만, 회의를 하다보면 공개할 수 있는 정보와 비공개 해야 하는 정보가 혼재 되어 있어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해 위원들끼리도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무래도 내부자의 입장인 공무원 위원들이 공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반대로 외부 위원들은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위원마다 입장이 다르고 서로 전문 분야도 다르다 보면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매뉴얼이나 판례 등 명백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지에 대해 위원끼리 합의를 이루기도 쉬워집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심의 의견서를 작성하면, 이에 따라 기관에서 청구인에게 이의신청에 대한 답변을 보내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정보공개심의회의 핵심은 ‘회의’ 그 자체에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경험과 입장을 가진 위원들이, 안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두어 시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려 한 것입니다. 만약 정보공개심의회에 회의라는 과정이 없다면, 구태여 위원회라는 구조로 이의신청을 심의하도록 법으로 정해둔 의미가 무색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무려 1년 반 동안 제대로 된 회의를 열지 않고 이의신청을 심의하고 있는 공공기관이 있습니다. 바로 은평구입니다. 은평구에서는 2021년 1월 12일 부터 2022년 6월 30일의 심의까지 1년 반 동안 서른 두번의 정보공개심의회를 열었는데, 서른 두번 모두 '서면심의'로만 진행했습니다. 위원들이 서로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것이죠.
보통 ‘서면 심의’는 위원 간 일정이 도저히 맞지 않거나, 재난이나 질병 등의 이유로 대면회의가 어려운 경우에 진행하는 심의 방식입니다. 서면심의는 위원들이 이메일로 안건지를 전달 받고, 해당 안건에 대한 의견을 적어 답장을 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경우 위원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출석 회의와는 전혀 다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반적인 회의에서는 위원들끼리 정보를 주고 받고, 설명과 설득을 통해 의사를 형성하는데, 서면심의에서는 그러한 과정이 생략됩니다. ‘합의’가 존재하지 않으니, 위원들이 각자 제출한 의견만 남는데요, 이 경우 동일한 의견이 과반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결국 제대로 된 심의가 이루어지지 못해 행정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지난 6월 2일 열린 2022년 제11회 은평구 정보공개심의회 회의 결과를 볼까요?
여섯 명의 위원이 각각 의견을 냈습니다. 위원들의 의견을 찬찬히 따져보면 협약서와 위원 명단을 모두 공개하자는 의견이 3명, 협약서는 공개하되 위원 명단은 비공개하자는 의견이 2명, 협약서와 위원 명단 모두 비공개하자는 의견이 1명입니다.
위원들이 이런 의견을 가진 상태에서 회의가 진행된다면, 결과는 협약서는 공개, 명단에 대해서는 공개 여부에 대해 좀 더 논의해보는 분위기로 흘러가겠죠. 그런데, 서면심의 결과는 '의결사항 없음'으로 정해졌습니다. 과반 이상의 다수 의견이 없다는게 그 이유인듯 한데, 상식적으로 좀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입니다.
이처럼 서면심의는 제대로 된 심의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정보공개 운영 안내서]에서는 ‘불가피한 경우에’만 서면심의를 실시하고, 가능한 한 출석 심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대면 회의가 어려운 만큼 여러 공공기관에서 서면심의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금방 비대면 회의가 일반화 되면서, 서면심의가 아니라 줌 등을 활용한 비대면 영상회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처럼 비대면 회의라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평구 정보공개심의회는 오랜 기간 동안 ‘회의’ 없이 서면심의 만을 고집하는 상황입니다.
심의위원끼리 서로 논의하고, 설득하는 회의 과정이 없다면 제대로 된 심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심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의신청을 제기한 청구인의 알 권리가 훼손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은평구가 어떤 생각으로 계속 서면심의만을 고집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출석 회의나 영상회의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정보공개심의회 절차를 요식행위로 전락시키는 ‘꼼수 심의’, 이제는 중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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