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국회는 자선사업가다

opengirok 2008. 12. 15. 18:14
정광모이사

정광모이사







 
나라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어 모두 어렵다. 1997년의 외환위기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매일같이 언론에 쏟아진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모아둔 돈도 없는 서민만 힘든 게 아니라 여유 있어 보이는 대통령실과 행정부도 쪼들리는 모양이다. 국회 상임위원회가 2009년도 예산을 심사하면서 이들이 호소하는 어려운 사정을 받아들였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정부가 제출한 대통령실 예산에서 3건 77억 원을 증액하였다. 대통령 비서실은 6년째 특수활동비가 동결되어 국민과 소통이 힘들다고 호소했고 운영위원회는 흔쾌히 특수활동비를 117억 원에서 137억 원으로 17% 증액하였다. 특수활동비는 국민 세금으로 만든 돈이지만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다. 감사원도 ‘업무추진비, 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증명지침’에서 집행 사정에 따라 집행내용 확인서가 필요 없다고 밝히고 있다. 국회는 영수증이 필요 없는 돈이 늘어야 국민과의 소통이 잘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운영위원회는 국회 살림살이가 어려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 국회 예산을 10건 81억을 증액하였다. 상임위 운영지원비와 입법활동지원비도 올렸다. 국회의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가슴에 와 닿는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가 내년도 예산을 증액한 내역을 보자.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넘어 호방한 국회 기상이 압도한다.
국토해양위원회는 정부가 제출한 세부사업 142건에 대해 1조 5780억 원을 증액하였다. 위원회가 스스로 신규 편성한 사업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쳐 72건에 2890억인데 ‘포항-안동’ 국도 건설을 비롯한 교통시설 특별회계(도로계정)의 도로신설 사업비중이 높다. 국토해양위원회가 감액한 사업은 21건 311억에 불과한데 그것도 대부분 전년도 집행률이 낮은 사업이다. 내년 예산을 배정해놓아도 다 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감액한 사업이다.
정부가 제출한 2009년도 수정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은 10.4%인데 SOC예산 증가율은 26.7%로 월등히 높다. 정부가 높게 잡은 SOC 예산을 국회 상임위원회가 깍기는커녕 더 늘리는 형편이다. 민주당은 서민생활이 위급하니 투자생산성이 떨어지는 SOC 예산 3조 원 이상을 삭감하고 삭감한 돈으로 ‘중산층과 서민 지원’ 예산을 증액한다는 예산 심사 방향을 세워놓았지만 이렇게 국토해양위원회에서 대폭 증액을 하는 형편이니 빈 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토해양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16개 상임위원회의 예산심사 내역을 모아보면 비공개 대상인 정보위원회를 제외한 15개 상임위원회의 세출 증가액은 10조 원에 달한다. 그 중에는 행정안전위원회가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줄어드는 지방교부금을 보전하기 위해 새로 배정한 4조 8000억과 보건복지가족위원회가 복지예산을 증액한 부분도 들어 있다. 그러나 국회 예산정책처가 문제 사업이라고 두툼한 책자로 만들어 지적한 사업을 비롯하여 감사원과 국회 결산, 그리고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많은 문제 사업예산이 삭감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증액사업을 넣는 국회도 할 말이 없지는 않다. 정부가 예산편성권을 쥐고 있고 사전에 행정부 예산 편성에 국회와 시민의 관심 사업을 반영할 길은 막혀 있으니 국회에서라도 빗발치는 지역구와 이익단체의 증액요구를 넣을 수밖에 없는 고충이 크다. 그런 예산은 매년 초에 행정부와 국회가 함께 범국민적이고 범지역적인 예산 배정 토론회를 열어 공정하고 투명하게 예산을 반영하는 방법을 찾고 예산정보를 공개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국회 상임위원회가 무작정 예산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예산 효율성을 높이기 어려울 것이다.

<국토해양위원회 국토해양부 소관 내년 예산 증액 내역> (단위 : 백만 원)

국회가 이렇게 상임위원회에서부터 예산을 증액하고 지역구도 생각하는 자애로운 ‘범국민 자선사업가’로 등장한 것은 ‘남의 돈’을 퍼내 사회 공공 구제사업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들, 낙하산을 타고 공기업에 내려간 수많은 사람들 중 자신의 돈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자선사업’을 벌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회 상임위원회가 이렇게 예산을 증액하거나 신규사업을 편성해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대부분 깍는다. 실세와 유력자가 관여한 예산만이 살아남는다는 ‘대한민국 운용 매뉴얼’이 떠돌고 나중에 사실로 확인된다. 결국 국회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은 의정보고서에 실을 제목만 뽑아내고 책임지지 못할 ‘약속어음’만 남발하면서 부실한 예산심사만 하는 꼴이다.
지금 모든 지역과 모든 사회부문이 자신이 가장 어렵다고 국회에 ‘구제사업 요청 경쟁’을 벌이는 형편이니 이왕 벌이는 자선사업 제대로 해보자. 정말 막아야 할 사업 막고, 정말 늘려야 할 사업 늘리자. 그런데 무엇이 정말 늘려야 할 예산인가? 국회가 ‘남의 돈’으로 벌이는 어설픈 자선사업가 행세를 그만둬야 정말 늘려야 할 예산을 찾을 수 있다.
국회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어렵다면 모든 지역과 모든 이익단체와 모든 사회부문이 내 몫을 찾는 ‘예산전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실세보다 머리수 많은 쪽이 이기고 ‘공정절차와 균형감각’이란 화력이 불을 뿜도록 전선을 새로 편성하자. 크게는 SOC예산에서 덕 보지 못하는 모든 세력은 내 몫 찾기 전쟁에 떨쳐 일어나기 바란다. ‘남의 돈’은 결국 ‘국민의 돈’이다. ‘국민의 돈’은 땅에서 캐내거나 나무에서 열리지 않는 한정된 재원이다. ‘국민의 돈’이라고 하니 왠지 나와 거리가 먼 것 같다. ‘국민의 돈’은 바로 ‘내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