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시사저널] 우리 아이들이 방사능에 노출돼 있다

opengirok 2013. 12. 17. 11:18

어린이집·유치원, 먹거리 관리·감독 사각지대…서울시 대부분 구청 원산지 자료조차 없어



“세슘이나 요오드 같은 단어도 몰랐죠. Bq/㎏ 같은 단위도 처음 들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알 수밖에 없어요.”


요즘 학부모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가져다주는 공포에 잔뜩 불안해한다. 먹거리에서 검출되는 방사성 물질이 그렇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연일 방사능 오염수 유출이 문제가 되면서 이제는 내 아이들이 먹는 수산물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일각에서는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농림수산검역본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 받은 자료를 보면 2012년 한 해 동안 일본에서 수입된 냉장 명태에서 34회, 냉동 고등어에서 37회, 냉동 대구에서 9회가량 세슘이 검출됐다. 이런 방사성 물질은 어른보다 아이들의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에서도 그게 사회 문제가 됐다. 



ⓒ 시사저널 포토 


일본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조사에 따르면 일본 전역에서 아이들을 5~10명씩 총 200명 선별해 조사했더니 후쿠시마 인근 지역인 미야기·이와테·도치기·지바 지역 아이들의 소변에서 세슘이 검출됐다. 원인은 자가 재배한 채소와 쌀을 먹어서다. 아이들의 몸이 방사성 물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수산물은 급식에서 차라리 다 빼버리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먹이든 안 먹이든 선택은 엄마들 몫이니까요. 어린이집에서는 먹고 싶지 않은 아이들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데….”


취재에 응한 한 학부모는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 이곳 어린이집 원장은 고향이 경남 통영이라 아이들의 반찬에 수산물을 자주 올렸다. 특히 요즘 성인들도 꺼린다는 생선 반찬이 많다. “저희 애들도 생선을 참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좀 꺼려지는 게 사실이잖아요. 생선이 여기까지는 한국산, 저기까지는 일본산, 이런 게 없으니까. 국산이라고 해도 불안한 점이 있는 게 사실이죠.”


유치원도 비슷하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강진숙씨(35)는 평소 한 번 훑어만 보고 지나쳤던 아이의 식단표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코다리나 동태탕이 인쇄돼 있었다. 직장 동료들과 “이제 못 먹는 거 아니야?”라고 웃으며 말했던 음식들을 내 아이가 먹고 있다는 생각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어른들이 피하는 걸 아이들이 먹고 있더라고요.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뭘 먹는지 꼼꼼히 체크하지 못했거든요. 제도적으로 뭔가 조치가 취해지고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원장의 선택만을 믿어야 되는 게 현실이었어요.”


다행히 같은 유치원 엄마들 중 몇몇이 강씨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원장에게 건의를 하면서 꺼려지는 수산물의 상당수가 급식에서 사라졌다.



 

ⓒ 시사저널 구윤성 


서울 22개 구청 “어린이집 급식 원산지 정보 없다”


우리나라는 아이들의 먹거리에 무관심한 국가일까. “아니다”고 말하려면 먹거리를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행정 당국의 대처는 미덥지 못하다. 수산물이 위험하다고 믿는 부모의 불신이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불신을 잠재워줄 시스템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일본 8개 지역에 대해 수산물 수입 전면 금지조치를 내렸지만, 그 외 지역의 수산물이 들어오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미비한 조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이들의 먹거리를 엄마가 통제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이다. 그래서 우선 어린이집부터 들여다봤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어린이집에 관한 필요한 보고를 받거나 조사 또는 그 밖의 서류를 검사할 수 있는 관리·감독의 주체는 구청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서울의 25개 자치구에 ‘어린이집별 수산물 납품업체 현황’ 자료를 요구했다. 25개 자치구 중 “원산지 자료가 있다”며 정보를 제공한 곳은 마포구·서대문구·종로구 등 3곳에 불과했다. 원산지 관리를 하고 있는 서대문구 관계자는 “어린이집의 급식 구매 내역을 매달 받아 거기에 기재된 원산지를 관리하고 시설물 점검을 나갈 때 원산지를 표시하고 있는지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나머지 22개 구는 어린이집 급식에 제공되는 수산물 식재료의 원산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수산물 납품업체 현황 자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보공개 청구를 요구한 어린이집별 수산물 원산지, 납품 품목, 납품 수량, 급식 학생 수 등 주요 자료를 공개하지 못했다. 정보가 ‘부존재’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린이집의 운영 주체에 따라 국공립뿐 아니라 서울형 어린이집, 민간 어린이집 등 모든 형태의 어린이집에 제공되는 식재료의 원산지 표시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산 수산물에 관한 이야기가 시끄러운 이때, 구청은 왜 자료를 갖고 있지 않을까. 구청에서는 대부분 1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정기 점검에 의존하고 있다. 원산지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시스템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어린이집에 (원산지 정보를) 따로 요구한 적은 없다”고 답했고, 강서구청 관계자는 “세세하게 감독을 하려고 하지만 그걸 모을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없다. 문서 같은 걸로 따로 모아서 구청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권고를 하고 점검을 나가서 체크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구청 쪽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가장 큰 부분은 인력난. 인력난은 양과 질에서 모두 문제를 일으킨다. 당장 어린이집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강동구에 위치한 어린이집은 모두 332곳. 반면 강동구 가정복지과에서 어린이집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고작 3명이다. 한 명이 100곳 넘는 어린이집을 담당하는 셈이다. 1년에 1회 정기 점검을 실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점검 나가서 기준에 따라 음식이 잘 나가는지만 확인하는 정도다. 원산지 표기를 해야 할 품목에 (어린이집이) 표기가 돼 있는지만 확인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보다 유치원이 더 관리 부실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도 문제다. 한 구청의 관계자는 “어린이집에 가면 원산지를 식단표에 다 붙여놓는다. 냉장고를 열어 라벨 표시 등을 확인하면서 위생 점검을 한다. 그런데 고기만 하더라도 우리가 전문가는 아니다. 어린이집 관계자가 국산이라고 써놓으면 그런 줄 아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정보공개 청구를 한 강언주 정보공개센터 간사는 “어린이집보다 유치원이 관리의 사각지대에 더 많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무슨 말일까.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관리 주체가 다르다. 어린이집은 구청이 맡지만 유치원은 교육청 소관이다. 유치원 급식의 원산지 관리 역시 일차적으로는 교육청이 담당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도 구청과 동일하게 정보공개 청구를 해봤다. 교육청의 답변은 ‘정보 부존재’였다. 이유는 학교급식법 대상에서 유치원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의 질을 높이고 학생의 건전한 심신의 발달과 국민 식생활 개선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학교급식법의 적용 범위는 초·중·고등 교육기관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같은 경우 학교급식법에 명시된 내용과 위임된 내용들은 학교 급식 기본 지침이라고 해서 매년 초 만들어 구체적 사안들을 안내하고 점검하고 있는데 유치원은 빠져 있다”고 말했다. 법적인 기반만 미흡한 게 아니다. “유치원에 점검을 나가고는 있는데 전체적으로 나가긴 좀 힘들다. 서울 시내 11개 지역 교육청에서 학교만 들여다보기도 벅차다. 사실 학교도 다는 못 나간다.” 교육청 관계자의 얘기다.


식품 방사성 물질의 위험이 확산되면서 학교 급식에 사용되는 식재료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조례 제정 운동이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진행됐고, 실제로 관련 조례가 통과되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린이집 등 영·유아는 해당되지 않는다. 조례 범위를 확대하자고 주장하는 곳은 녹색당이다. 조례 범위 확대 외에 녹색당이 제시하는 해법은 이렇다. “현재 학교(유치원 포함) 급식과 어린이집 급식의 안전관리가 교육청과 기초자치단체로 분리돼 있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책임 주체와 협력 주체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먹거리로 생기는 방사능 피폭 문제, 아이들이 성인에 비해 방사능에 더 민감하다는 것은 괴담이 아니다. 후쿠시마 아이들의 방사능 내부 피폭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로 증명됐다. ‘방사능에 대한 반응이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이들과 관련된 문제인데도 둔감하게 구는 어른들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 이 기사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정보공개 청구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김회권 기자·이혜리 인턴기자 | khg@sisa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