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몇 개의 치킨집이 있을까?
한국인의 대표 야식은 누가 뭐래도 치킨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치킨은 한국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음식이다. 양념 치킨과 후라이드 치킨이 전부였던 과거와 다르게 현재는 오븐에 구운 치킨, 마늘 치킨, 파닭 등 치킨의 종류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한국인의 치킨 사랑 덕분에 치킨브랜드 역시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반경 몇 백 미터 안에서 여러 브랜드의 치킨전문점이 서로 경쟁을 벌여야 하는 풍경은 일상화되었다. 그렇다면 서울에는 현재 몇 개의 치킨집이 운영되고 있을까? 서울시 소속 25개 구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는 아래 그래프와 같다.
현재 기준(2013년 10월)으로 서울에서 치킨전문점이 가장 많은 지역은 구로구, 양천구, 동작구로 각각 400개 이상의 업소가 운영되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용산구와 종로구, 광진구는 다른 구에 비해 치킨전문점 업소가 적게 운영되고 있다. 지역으로 나누면 강남 11개 구의 업소수가 3325개, 강북 14개 구의 업소수가 2635개로 강남에 치킨전문점이 더 많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표준산업분류 기준에 따르면 주류와 치킨을 함께 판매하는 업소의 경우 ‘치킨전문점’으로 구분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즉, 위의 그래프가 포함하지 못하고 있는 유사 치킨업소 개수 역시 상당수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치킨의 전성시대다.
월드컵을 기준으로 보는 치킨전문점 개업 및 폐업 실태
서울에서 매년 몇 개의 치킨집이 생기고 사라지고 있을까? 2007년부터 2013년 현재 까지 7년 동안 치킨전문점 개업 및 폐업 신고현황을 25개 구청에 각각 정보공개 요청을 한 결과 아래와 같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치킨전문점 개업 현황은 꾸준히 증가하다가 2011년부터 매년 감소와 증가가 반복되고 있다. 한 편 매년 신규 사업자로 신고하는 치킨전문점 못지않게 폐업 신고를 하는 치킨전문점의 수도 상당했다. 2009, 2010, 2012년을 제외한 나머지 4년은 개업 한 업소수와 폐업 한 업소수가 거의 맞먹을 정도다. 전체적인 수치로 봤을 때 서울시에서 지난 7년 동안 새로 생긴 치킨전문점은 3805개, 문을 닫은 치킨전문점은 2686개로 개업대비 폐업 평균 비율은 41%다. 매년 6개의 치킨집이 새로 생긴다고 치면 4개의 치킨집이 문을 닫는 셈이다.
지난 7년 동안 서울에서 치킨전문점 개업 현황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10년이다. 2010년은 남아공 월드컵이라는 전 세계적인 행사가 열렸던 해였다.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모인 사람들의 상당수는 치킨을 배달시켰다. 실제로 2010년 1인당 닭 소비량은 10.7kg으로 전년대비 1.1kg가 증가(통계청)했다. 2010년 당시 치킨업계 현황 보도 자료를 봐도 월드컵 기간 동안 평소보다 매출이 2~3개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0년 서울시 치킨전문점 개업 수가 다른 년도에 비해 높았다는 사실은 이런 월드컵 특수 분위기 속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개업 대비 폐업 비율도 2010년은 다른 해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인 2011년의 치킨 업소 폐업 현황이 다른 해에 비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즉, 2010년에 월드컵이라는 계기로 크게 증가한 치킨 업소만큼 다음 해인 2011년에 문을 닫은 치킨 업소 역시 증가했다는 것이다.
월드컵을 기준으로 본 개업 및 폐업 현황 분석에서 중요한 부분은 치킨전문점이 그만큼 쉽게 생기고 쉽게 망한다는 점이다. 치킨 소비량이 급증하는 월드컵 시기에 새로 개업한 치킨전문점 점주들 대부분이 치밀한 상권분석과 업계현황 파악 후 개업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신 월드컵 특수라는 분위기에 너도 나도 우르르 치킨 가게를 차린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직장 은퇴 후 그나마 손쉽게 창업 할 수 있는 영역이 치킨 가게처럼 영세한 사업체 이외에 그리 많지 않다는 현실이 있다.
우울한 치킨게임
KB경영연구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이후 개업한 전국 치킨전문점 중 1년 안에 휴업 및 폐업 등으로 업계에서 퇴출된 업소 비율은 전체의 18%다. 3년 미만의 기간에 퇴출된 비율은 49.2%, 10년 동안의 총 폐업률은 79.5%다. 다른 업종별 휴, 폐업 평균 비율이 75.4%라는 수치를 생각했을 때 치킨전문점의 상황은 심각한 편이다. 얼마 전 ‘월 스트리트 저널’은 “한국, 자영업 늘고 가계부채 급증 ‘치킨집’ 버블 터질라”라는 제목의 기사로 한국의 치킨전문점 버블 현황을 다뤘다. 특히 은퇴한 한국의 50대 이상 인구들이 은행 담보 대출을 통해 치킨 업소를 차린 뒤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한 채 폐업하는 상황이 늘어남으로써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지적대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치킨업종으로 대거 몰리며, 말 그대로 우울한 치킨게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치킨 가맹본부의 꼼수
치킨 전문점간의 경쟁이 치킨게임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배경에는 치킨 가맹본부의 꼼수도 작용하고 있었다.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14개의 치킨 가맹본부에 시정조치를 내렸다. 14개 업체의 주요 위반 내용은 ‘치킨 가맹점의 (예상)매출액, 수익 등을 부풀려 광고’, ‘치킨 가맹점의 성공사례를 거짓으로 광고’, ‘사실과 달리 누구나 가맹비를 면제받을 수 있는 것처럼 광고’, ‘사실과 달리 치킨 가맹점 수가 많은 것처럼 광고’등을 한 사실이다.
많은 치킨 가맹본부들이 매출액이나 수익 등을 실제보다 높은 것처럼 속여 창업 희망자를 치킨업계로 끌어들인 것이다. 특히 ‘처갓집양념치킨’과 ‘또래오래’는 2011년 기준으로도 가맹점 수가 각각 845개, 840개가 있는 규모가 큰 치킨 브랜드다. 이런 업체마저 사실을 속이면서까지 가맹점을 늘리려 했다. 가맹본부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가맹점만 늘리면 되기 때문에, 실제로 동일 지역 내에 같은 브랜드의 치킨전문점이 중복출점 된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따른 영업 피해 손실은 고스란히 영세한 가맹점주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1년 만에 바뀐 가이드라인
지난 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치킨전문점 및 피자업종과 같은 경쟁이 과열된 배달업계의 심각성을 타개하고자 ‘치킨·피자 업종의 모범거래 기준안’을 마련했었다. 이 기준안은 치킨업소는 반경 800m(피자 업종은 1500m) 내에 같은 브랜드의 출점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치킨 가맹본부가 동일 지역 내에 무차별적으로 가맹점을 출점시켜 같은 브랜드 가맹점간의 피해가 크다는 현황 분석에서 나온 기준안이다. 특히 2010년 말 기준으로 치킨 사업체의 프랜차이즈 가입률 74.8%(통계청)라는 비율을 봤을 때 어느 음식업종보다 치킨전문점의 프랜차이즈화 비율은 높은 편이다. 공정위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서울 기준으로 브랜드별 800m 이내에 중복 출점한 가맹점 비율은 비비큐 52.6%, 교촌 26.9%, 페리카나 36.9%, 목우촌 13.2%였다. 치킨 가맹점들은 동일 지역 내에서 다른 치킨 브랜드와의 경쟁은 물론 같은 브랜드 가맹점들과도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공정위가 마련한 800m 내 중복출점 금지는 최소한의 보호 가이드라인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20일 공정위는 사실상 거리제한 규정 폐지를 밝혔다. 지난 8월 개정된 ‘가맹사업법’이 공포됨에 따라 기존의 모범거래 기준안이었던 거리제한 규정이 효력을 상실하게 됐다는 점이다. 대신 가맹사업법에 따라 거리제한 대신 영업지역 설정을 통해 가맹본부와 가맹점이 개별적인 계약을 맺게 됐다. 공정위의 이런 발표에 치킨 프랜차이즈 본부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기존 거리제한 규정 때문에 사업 확대에 차질을 빚어 왔다는 것이 가맹본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모범거래 기준안과 같은 정책적인 가이드라인 안에서 보호받던 개별 가맹점들은 새로 개정된 법에 따라 다시 거대한 본부와 직접적인 협상과 계약을 맺어야 한다.
지난 7월 국내 최대의 치킨 브랜드인 비비큐가 본사가 발행한 상품권에 대한 수수료 10%를 개별 가맹점 사업자들에게 부담하도록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었다. 가맹본부와 가맹점 사이의 갑을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맹본부와 가맹점이 영업지역 협상 등을 두고 개별적으로 계약해야하는 과정이 늘 공정하게 이뤄지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1년 만에 치킨 가맹점 거리제한 가이드라인은 폐지됐고, 대신 가맹본부의 입김이 세게 작용할 가능성이 큰 법으로 바뀐 셈이다. 이외에도 치킨 가맹점들은 본사로부터 매장 리뉴얼 압박, 광고·판촉 비용 부담 압박 등 여러 가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정작 경제민주화를 약속하며 출범한 이번 정권이 약속과 정반대의 행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본 분석과 정보공개자료는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조성준님이 정보공개센터에 공유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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