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후임정권 참고용으로 국정원본 보존?

opengirok 2013. 10. 14. 10:30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

 

  NLL남북정상회담록 실종과 관련 해, 검찰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봉하마을 이지원에서 남북정상회담록 초안을 삭제한 흔적을 찾았으며 검찰은 이를 복원했다는 내용이다. 또한 봉하마을 이지원에서 별도의 남북정상회담록도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검찰 발표내용을 보면 매우 모호하고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지원에서 삭제흔적을 찾았다면 로그데이터를 분석해 정확한 삭제경위도 확인 수 있었을텐데, 이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게 의문이다. 


 게다가 이미 검찰은 2008년 대통령기록 유출 사건 때 봉하마을에서 가져간 것과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된 이지원이 동일하다는 결론을 발표한 적이 있다. 봉하 이지원에서 기록이 발견되었다는 이번 발표는 이미 두 개의 이지원의 기록이 동일하다고 확인한 바 있는 지난 수사결과를 스스로 뒤집는 셈이 된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수사결과를 보면서 이번 사건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록을 대통령기록이 아닌, 보안업무규정에 따른 비밀기록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상회담이 정권말기에 이루어져 후임정권의 협조가 절실했고 남북정상회담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보존할 경우 최대 15년 동안 후임정권에서 참고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청와대 이지원에 있는 기록을 삭제한 것을 대통령기록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법) 위반이라고 할 수 있는지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법에는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한자는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우선 ‘파기’라는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깨뜨리거나, 찢어서 내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기록을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파기해 복원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에서 민간인 사찰 기록을 하드디스크 파기 장비인 디가우저로 갈아엎은 것이 단적인 예이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록을 청와대가 아닌 국정원에 보존하도록 해 후임정권에서 참고하라는 뜻이었다면 대통령기록물을 위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해당기록을 대통령기록물로 분류해 비밀기록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국정원 비밀기록으로 분류한 것이 최선은 아니었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비밀기록을 단 한 건도 생산하지 않고, 모두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묶어 후임정권이 참조할 수 없도록 한 행위보다는 훨씬 더 합리적이다. 


 다음으로 남북정상회담록 완성 본은 존재하지만 초안을 삭제한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또한 녹음파일이 국정원에 존재한다는 면에서 기록 파기로 보기가 어렵다. 아울러 많은 공공기관의 녹음 기록의 경우 수정과정을 거쳐 최종 회의록으로 등록하고 있으며, 초안본은 기록으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 사초도 실록을 제작 한 후에는 그것을 물에 빨아 내용을 지운 뒤 그 종이를 재활용했다는 점에서 사초 폐기를 얘기하는 것도 논리적인 얘기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의원 등 참여정부 시절 참모들은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인지하지 못해 혼란을 부추긴 측면도 있어 보인다. 또한 대통령기록을 삭제한 당사자가 왜 이런 부분을 정확히 밝히지 않았는지 검찰 조사과정에서 추가적으로 밝혀야 할 대목이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