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한강 다리 ‘죽음의 유혹’ 막아라

opengirok 2013. 10. 2. 13:07

전진한<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전 세계 주요 수도 중 서울 한강처럼 넓고 깊은 강이 지나가는 곳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한강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유량이 풍부해 많은 서울시민들이 한강을 즐긴다. 한강 주변에 위치한 아파트나 주택의 값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싼 것만 보더라도 한강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한강의 이면에는 다른 음침한 모습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괴물이 있다. 얼마 전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투신으로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졌듯이, 한강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는 곳이라는 악명도 갖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10만명당 자살률이 31.2명(2011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1위다. OECD 가입국 평균은 11.3명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가입국 평균에 비해 3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8월 경찰과 구조대원들이 한강 투신 자살자를 수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망 원인으로도 각종 암,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한강에서 시도되는 자살은 매우 심각한데,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서울시에 정보공개청구한 결과 한강 교량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한 사람이 2011년 이후 현재까지(2013년 8월 기준) 465명이었다. 이 중 다행히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등 관계부처의 신속한 대응으로 168명이 목숨을 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리별로는 편차가 뚜렷했다. 같은 기간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한 사람이 마포대교 70명, 한강대교 33명, 서강대교 22명, 원효대교 21명, 잠실대교 20명 순이다. 가장 심각한 곳이 마포대교인데 2011년 11명, 2012년 15명이었던 것이 올해는 8월까지만 무려 44명이 투신했다. 유명인이 자살하거나 자살 방법이 알려질 경우, 그 사람이나 방법과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인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최근 들어 자살 방법 등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 방송 및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한강대교에서 자살 시도가 급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서울시나 정부 차원에서 근본적이고도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물론 현재도 마포대교에 생명의 전화가 마련되어 있고, 자살 예방을 위해 보행자의 걸음걸이에 맞춰 다리 난간에 불이 켜지는 등 ‘생명의 다리’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올해 7월에도 자살예방 조형물과 CCTV 및 자살 예방 문구 등을 기업의 지원으로 보강해 자살 시도 방지조치를 강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책은 부실해 보인다. 수도 서울을 상징하는 한강 한가운데에서 2년 6개월 동안 465명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와 정부는 취약계층 및 1인 가구에 대한 지속적인 상담과 지원책을 마련하는 한편, 한강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할 수 없도록 파격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예방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가 지하철 투신자를 엄청 줄여주었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강이 더 이상 죽음의 강이 되지 않도록 정부는 물론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