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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록을 정쟁의 도구로 삼고 망가뜨린 것에 분노”

opengirok 2013. 6. 27. 10:33

전진한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


“정보공개청구 운동하는 활동가가 국가정보원에 ‘당신들 그렇게 막 공개하면 안된다’고 얘기하는 현실이 웃긴다. 비공개를 좋아하는 국가권력에 기록 관련 전문가들이 ‘제발 공개하지 말고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잘 지켜달라’고 말하는 것도 웃긴다.”


전진한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39·사진)은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에 대해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남겼다. 정보공개청구 운동을 한 지 10여년. 그는 자신이 “정보공개를 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요즘 일련의 사태로 ‘정보공개활동가의 비애’를 느낀다고도 했다. 그동안 국회 등 각종 국가기관에 끊임없이 요구했던 정보공개와 이 사안이 어떻게 다르길래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을까.


전 소장은 26일 경향신문과 만나 “정보공개청구는 부패방지, 알 권리 보장, 밀어붙이기 사업 지양 등 우리 사회를 좋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의 회의록 공개에 대해서는 “한국이 얻은 이익이 무엇인가. 오히려 국가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논란이 기록을 남기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입에서 ‘정보공개 반대’란 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대통령기록물 유출 의혹 사건 때부터 서너번째다. 하지만 전 소장은 이번 사태가 ‘최악’이라고 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이 공개된 데다, 공개한 주체가 국정원이기 때문이다.


전 소장은 “국정원은 모든 게 비공개다. 물품구입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해도 ‘국가안보’라고 공개하지 않던 기관”이라며 “다른 기관이 그런 정보를 공개하려 하면 ‘국익에 방해된다’고 막아야 할 국정원이 100장이 넘는 회의록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이 왜 회의록에 대해 비밀해제를 했을까. 과연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였을까”라며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찬성하는 이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 소장은 회의록이 공개돼서는 안되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이자 ‘비밀기록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가 있는 것은 퇴임 후 15년을 보호할 테니 당신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의 기록을 제대로 남겨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일기장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내밀한 이야기 대신 형식적으로 쓰게 될 것”이라며 “회의록은 9년 후면 공개될 정보였다. 그때 정치적 판단이 아닌 객관적이고 역사적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정밀하게 평가하면 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전 소장은 “비밀기록은 국가안보 사안이거나 외교 당사자들 간의 약속으로, 정상회담은 전형적으로 공개하면 안되는 1급 비밀”이라며 “이를 공개하기 위해서는 상대국가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절차 없이 폭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쓸데없는 비밀을 생산하면 비밀주의가 되지만 반드시 필요한 비밀은 지켜줘야 한다”며 “국가 정보기관이 외교관례를 어기며 비밀기록을 스스로 해제한 것은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으로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가 사문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는 “기록을 남기면 저런 꼴을 당하는구나, 나는 다 없애버려야지, 후대 대통령들이 이러지 않겠느냐”며 “현대판 ‘사화(史禍)’다. 기록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4일 국내 기록관리 전문가들이 국정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에 대해 “국정원이 전날 오후 6시쯤 대화록을 공개해 급히 밤에 모여 한숨도 못 자고 성명서를 준비했다”며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웬만해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이들이 분노했겠는가”라고 말했다. 


전 소장은 “좋은 정보라면 얼마든지 공개하라고 하겠지만 이번 회의록은 공개해서 어떤 위험에 빠질 것인지가 보이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라며 “기록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국회의원과 국정원은 이번 사태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