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
연평도 포격 이후 한반도에 전쟁의 공포가 퍼져가고 있다. 서해에는 미 항공모함이 떠 있고, 북한도 이에 대응해 연일 포격훈련을 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쟁터질 것을 두려워하면서 한숨을 쉬고 있다. 이것이 2010년 12월 한국의 현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런 위기상황을 국민들의 현명한 지혜와 의지로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한반도가 이렇듯 전쟁위기의 혼란을 겪는 와중에 전세계는 다른 것으로 충격에 빠져있다. 바로 위키리크스가 공개하고 있는 외교 비밀문건들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사찰하고 있는 것들이 폭로 되고 있고, 각국의 외교 뒷담화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도 북한 및 중국과 관련되어 수많은 외교 기록들이 공개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북의 고위관료들이 우리나라로 망명했다는 기록, 지난 해 남북회담을 추진했었다는 기록, 북한이 2015년 내에 붕괴할 것이라는 기록, 대한민국 외교 2차관이 중국 우다웨이를 가장 무능한 관료로 비하했다는 기록 등은 그 하나하나가 국제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낳을 내용들이다.
미국은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어샌지를 간첩죄로 다스리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고, 인터폴은 각국에 적색경보를 내리고 체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또한 그의 성추행 경력을 거론하면서 도덕성에 상처를 주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는 이미 각국에 치명타가 될수도 있는 25만건에 달하는 외교기록을 확보하고 있으며, 줄리언 어샌지를 보호해주고 있는 수많은 국가와 단체가 있어 이런 혼란은 당분간 계속 지속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번 사건을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 해보자. 위키리크스는 어떤 단체이고, 그들이 공개하고 있는 외교비밀기록은 어떤 성격을 지니는 것이며 우리의 고민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짚어 보도록 하겠다.
우선 위키리크스는 필자가 일하고 있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www.opengirok.or.kr) 및 미국의 민간 NGO인 NSA(National Security Archive) 등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정부로부터 기록을 입수하여 자료의 원본 및 진본 등을 언론과 자신의 사이트에 공개 및 공유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정보공개센터와 NSA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정보공개청구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확보한 정보를 대상으로 하고, 위키리크스는 내부제보, 해킹으로 추정되는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공개하고 있는 점이다.
물론 가끔 공공기관의 담당자들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공개 결정을 받아 블로그에 공유하고 있는 것에도 항의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 국가기록원은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기록을 블로그에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엽기적인 주장까지 한 적이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기록을 생산하고 국민을 상대로 저작권을 운운하는 것에 매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가 공개하고 있는 기록들의 대부분은 외교비밀기록 및 비공개기록들이다. 바로 이점에서 수많은 국가들이 흥분하고 있는 것이고, 줄리언 어샌지를 어떻게든 체포하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위키리크스의 서버는 스웨덴 및 아이슬란드 등에 걸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미국 등 일부 국가가 강제적으로 처리할 방법도 없다.
그러면 외교 비밀 및 비공개기록은 무엇인지를 분석해봐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을 잃어가면서 까지 위키리크스가 공개하고자 했던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비밀기록의 정의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나라 비밀기록을 규정하고 있는 보안업무규정을 보면 “비밀이라 함은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유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국가 기밀로서 이 영에 의하여 비밀로 분류된 것을 말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말 그대로 ‘국가안전보장’에 유해한 결과를 초래될 경우 비밀로 취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및 각국의 비밀 조항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띄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비밀’이라는 위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국가안전보장이 아닌 정권안전보장을 위해 쓰이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민간인 사찰과 관련 기록을 디가우저로 파기하는 사건들이 벌어졌지만 이런 기록들을 대부분 비밀기록 및 대외비 기록이라는 명목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기록들을 합법적인 수단으로 공개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에 이번 사건을 단순한 관점으로 평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위키리스크사 공개한 기록을 보면 사실상 미국이 전세계를 사찰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 한 것이다. 특히 각국의 미국 대사관들이 전달한 각국의 정상들을 평가한 내용을 보면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공개된 외교 전문은 세계 전역에 주재하는 미국 대사관에 의한 유례없는 뒷거래와 각국 지도자들의 거칠지만 솔직한 입장, 핵과 테러범의 위협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바로 이런 지점을 위키리크스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번 공개 등으로 외교기록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일반시민들이 알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우리나라 외교부의 비밀행태를 지적하고 싶다. 외교부는 현재 매년 비밀기록을 해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비밀기록을 해제하면 일반시민들이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거의 대부분 내용을 공개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외교부의 경우 비밀기록해제목록을 정보공개청구 하면 목록조차 민감할 수 있다며, 대부분의 내용을 까만 펜으로 먹칠 한 채 공개해주고 있다. 이런식이면 비밀기록 해제는 왜 하는 것이며 해제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말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비공개하고 있는 것인지, 외교부 자체의 이익 때문에 비공개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나마 일부 공개되는 목록을 보면 도저히 비밀기록으로 관리 할 수 없는 것들을 비밀기록이라고 관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비밀주의 행태가 국민들에게 불신을 야기하는 것이며 그 불신의 표현이 위키리크스와 같이 비합법적인 방식의 공개에 대한 시민들의 환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비밀기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형태적인 면에서 비밀기록으로 규정해 놓아도 그 내용이 국가안전보장과 상관없는 것이라면 공개해도 괜찮다는 판결도 수없이 나와 있다. 위키리크스는 이 지점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방법상의 불법성이 내용적인 측면의 진실성을 가릴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전세계 시민사회는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향후 위키리크스의 행보는 이런 질문들을 전세계에 끊임없이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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