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록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현직 대통령의 측근인사인 김선진(45) 청와대 메시지기획관리관실 행정관이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고작 인사발령이 났을 뿐, 현 정권에서 대통령기록을 훼손한 것도 아닌데 '위기'라며 호들갑떤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따로 이 법을 만들어 보호해야했던 만큼 우리나라의 대통령기록이 관리되지 못했던 상황과, 현 정권이 지금껏 보여준 기록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몰이해 정도를 보면 '위기'라는 말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대통령기록은 상징성뿐만 아니라 그 내용의 민감성에서도 다른 기록에 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이 관리하고 있는 대통령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대통령기록을 개인기록으로 혼동했던 탓도 있지만, 기록을 제대로 남겼다가는 그것이 퇴임 후 자신을 공격하는 칼로 되돌아올 것을 우려해 은폐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기록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르는 (1948~2008) 60년 동안의 대통령기록물은 850여만 건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를 본격화하고,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제정하여 체계적으로 기록을 관리하기 시작한 노무현 정부의 기록이 전체의 96%인 820여만 건에 이른다.
이렇게 대통령이 기록을 남기지 않는 폐해를 막기 위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는 기록생산을 보장할 수 있도록 철저한 보호조치를 마련해 놓았다.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이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군사·외교·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 ▲ 대내외 경제정책 ▲ 정무직공무원 등의 인사에 관한 기록 ▲ 사생활에 관한 기록물 ▲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 기록 등으로 공개할 경우 국가적 혼란 및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이 지정기록물은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을 경우, 고등법원장의 영장이 있을 경우, 대통령기록관장의 승인이 있을 경우 외에는 15년간 어느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정기록물은 지난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유출의혹사건과 쌀 직불금 문제가 벌어지면서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이미 열려진 바 있다.
이밖에도 전직 대통령의 기록을 담당하는 대통령기록관이 현직 대통령에 의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게 하기 위해 대통령기록관장의 임명을 전직 대통령 측근 중에 선임하고 그 임기를 후임 정권이 끝날 때까지로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청와대 메시지기확관리실 행정관 출신 인사가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이로써 대통령지정 기록물은 봉인 열쇠 중 하나가 풀린 셈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 : 하승수 변호사)에서는 지난 2008년~2010년 3월 17일까지 대통령기록관장의 승인을 통해 대통령지정기록물 열람이 승인된 현황을 정보공개청구했다.
대통령기록관의 공개내용에 따르면 그동안 15회 지정기록물의 열람이 승인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기록관장 승인에 따른 대통령지정기록 열람 현황
자세한 내용을 보면, 대통령기록 이관과 관련해 8회, 지정기록물의 열람 및 자료제출 건으로 6회, 전직 대통령의 열람편의 제공건으로 1회 열람되었다. 이 중에는 정권교체시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이 이관되던 당시와, 쌀직불금 문제가 벌어졌던 당시 기록물 열람이 승인된 것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업무절차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지정기록물이 열리는 것이야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쌀직불금 문제 때와 같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데 지정 기록물의 봉인이 해제되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지정기록물의 열람이 쉬워진다면, 그것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며, 기록을 남기지 않는 대통령 역사 공백기로 회귀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기록관장의 임무는 막중하다. 또한 그 임무에 맞게 가지고 있는 권한 또한 크다. 대통령기록관장에게 이렇게 큰 임무와 권한이 주어져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역사적·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대통령기록을 제대로 관리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현 정부 측근인사가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미 본격적인 업무도 시작했을 것이다. 앞으로 MB정부에서 노무현의 기록을 어떻게 관리할지 두고 볼 일이다. 부디 이 인사를 보고 "위기"라고 한 필자의 말이 호들갑이길 바란다.
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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