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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 유출로 느낀 심정

opengirok 2009. 6. 1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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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059 by kiyong2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서가 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작년 대통령 기록유출로 느낀 심정을 정리한 글이 최근에 공개 되었습니다. 당시 비공개로 글을 쓰신것인데요. 심정이 잘 나타나 있네요. 가슴 절절 합니다. 한번 씩 읽어보시길



법으로 따질 여건이 아닌 것 같습니다.
2008-07-18 16:15| 노공이산


참여정부가 대통령 기록물에 관한 법률을 만들지 않았다면 일이 어처럼 어렵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법은 2006년 여름 쯤 정부가 국회에 발의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 국회에서는 이 법을 반대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여소야대의 국회였지요.

1년이나 지나서 한나라당의 어느 의원이 제출한 법과 절충이 되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나중에 통과되어 온 법을 보니 기록에 대한 대통령의 지위가 너무 옹색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람권에 대한 보장도 너무 허술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입법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다른 일이 바빠서 일일이 챙겨보지 못했습니다. 당시가 여소야대의 국회이고, 여당이라고 하는 당도 차별화 전략으로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라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실무자들은 처음으로 대통령 기록물 관리 제도를 만든다는 의욕이 앞서서 법의 내용에 대통령의 권리가 불분명한 상태를 그대로 둔 채 법이 통과되는 데 온 힘을 쏟았던 모양입니다.

법 이 통과 된 다음에야 보고를 받고 대통령의 권리에 대한 규정이 불명확하여 해석을 하기 따라서는 대통령의 열람권이 있으나 마나가 되지 않겠느냐고 걱정을 했더니 법제처의 의견은 열람권 안에는 사본을 청구할 권리가 포함된다는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어떻든 이때는 이미 버스는 지나가고 난 뒤였습니다.

열람의 권리에 사본의 권리가 포함된다 하더라도 기록관에 열람을 신청하여 받을 일이지 임의로 사본을 할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재임 중에 기록관에 사본을 요청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법률행위의 해석에 ‘유효해석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지요. 그것은 의사표시가 불명확하여 유효하게 해석할 수도 있고 무효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경우에는 유효가 되도록 해석하라는 법률해석의 원칙이지요.

참여 정부 초기에는, 공무원이 민원을 처리할 때, 해 줄 수도 있고 안 해줄 수도 있는 것일 때에는 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라는 지침을 내린 일도 있고, 이런 원칙으로 감사를 실시한 일도 있었습니다. 모두 합리적인 해석과 집행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사본을 못해 줄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러나 법 전체의 분위기는 되도록이면 대통령을 불편하게 하자는 국회의 입법의도가 뻔히 보이고, 정권은 넘어 갈 것이 명백한 상황인데, 내가 임명한 기록관장과 공무원들에게 이런 지시를 하여 무거운 부담을 지우기가 너무 염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정을 했습니다.

법적으로 유출은 원본 유출을 말하는 것이므로 사본은 금지 규정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열람권자가 사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유출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이런 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검찰도 이런 해석을 받아볼 여유를 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록 복사를 하기 얼마 전 쯤, 대통령 기록관에서 이지원 시스템과 그 안에서 가동되는 기록을 복사해 달라고 요청하여 이 문제를 두고 기록 관리비서관실과 업무 혁신 비서관실이 된다, 안 된다, 옥신각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대통령 기록관은 이 지원 시스템과 기록을 박물로서 가동하고 열람 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얼른 해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가 굳이 기록을 복사하여 가지고 있고 싶어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이지원 시스템으로 기록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대통령 기록관에서 이지원 시스템을 살려 놓고 이를 열람에 제공하게 되면 저는 따로 이지원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에 환영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복사본을 당분간만 가지고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집에서 열람이 가능한 서비스는 당연히 제공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저에게는 그것이 상식이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한 것입니다. 청와대가 나설 줄은 생각을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명박 대통령도 장차 저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므로, 이 법의 해석에 있어서는 저와 같은 입장을 가질 것이고, 그래서 설사 문제가 되더라도 정치적으로 양해가 될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가 문제를 삼고 나서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설명하면 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고 참모들에게 큰소리 까지 쳤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화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 온 것은 참모들을 고발하겠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법적 판단을 받아 보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 동안 청와대의 공격에는 기록문화에 관한 진지한 고민도, 법적 판단을 통하여 입법의 미비를 보완해 보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조그만 여유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어떤 배려도, 자리할 곳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타도해야 할 정적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물로 바칠 희생양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정략이 있고, 비린내 나는 적개심이 뚝뚝 흐를 뿐이었습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기록문화에 욕심을 부린 것이 잘못입니다.
적대적 환경 속에서 기록물에 관한 입법을 추진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과 사람들을 잘못 본 불찰이 있습니다.

이제는 법의 해석을 따질 시기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남은 일이 있다면 법을 고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저들의 의석을 보면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