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박대용 자문위원
(춘천MBC 기자)
숨어 있는 정보를 찾아내야하는 일이 직업인 기자에게 ‘정보공개청구’는 분명 효율적인 취재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정보공개청구 강의를 처음 듣는 기자들은 탄성을 지를 정도로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다. 갑과 을의 관계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통해 바뀔 수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보공개청구라는 취재기법을 알게된 지난해 4월부터 지금까지 천여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지방자치단체 예산 감시와 관련해 여러가지 보도를 해왔다. 기관장 차량 운행 실태, 해외 출장 실태, 홍보비 지출 내역, 동계올림픽 후원금 사용 실태, 고위 공무원 땅 투기 의혹 등 그동안 접근하지 못했던 다양한 정보를 입수하는데 정보공개청구는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필자 뿐만 아니라, 기자들이 정보공개청구를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청구하고 난 뒤, 열흘동안 기다려야하는 불편때문이다. 당일 때거리를 찾아 헤매는 기자에게 열흘 뒤 기사 거리를 준비한다는 것은 팔자 편한 얘기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상 매일 하나씩 정보공개청구를 해보는 습관을 들이다보면, 열흘 뒤부터는 매일 기사거리가 생산되고, 이따금 다른 기자들이 취재할 수 없는 정보를 내가 이미 확보하고 있을 때 미리 준비하는 자의 행복을 맛볼 수 있게 된다.
두번째 이유는 출입처를 가진 동료 기자들로부터의 따가운 눈총이다. 정보공개청구를 하다보면, 동료기자들의 출입처 행정기관에도 자주 하게 되는데,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성가시게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출입처 동료기자들에게 눈치를 주게된다. 쉽게 말해서 ‘출입처에 기자가 있는데, 왜 다른 기자가 자꾸 영역 침범하게 놔두냐’는 식이다. 그런데, 막상 출입처 해당 기자가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그냥 달라고 하지 왜 정보공개청구하냐’고 섭섭한 기색을 보인다. 결국 기자들이 이런 불편한 관계때문에 정보공개청구에 점점 멀어지게 되고, 종국에는 출입처에서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정보만 가지고 기사를 쓰게 되는 일에 안주하고 만다.
세번째 이유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정보가 그다지 실속이 없기 때문이다. 기술적이 문제이기도 한데, 정보공개 초심자들은 정보공개청구하는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포괄적으로 기록하는 경우가 많아서 공무원들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오거나, 실컷 설명해서 받은 정보도 결제과정에서 정제된 상태여서 기사 가치가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가급적 원본 기록물을 청구해야한다. 증빙서류 사본 같은 손대지 않은 원본 자료를 입수하는 것이 유리하다. 물론 나중에 분석해야하는 불편이 뒤따르겠지만, 정보공개를 해야할 공무원도 자료 분석, 발췌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어 서로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네번째 이유는 신문기자와 달리 방송기자는 입수된 자료만으로는 기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방송기자는 현장 화면이 우선 필요한데, 당장 기관장 관용차 가격을 입수했다고 해도 기관장들을 따라 다니며, 촬영하고, 인터뷰까지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번째 이유와 마찬가지로 열흘을 기다린 뒤에도 촬영을 위해 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보공개청구를 쉽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다섯번째 이유는 갈수록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공무원들의 태도가 불성실해지고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작년 4월과 올해 4월과 비교해봐도 그렇고, 한 달 전과 지금을 비교해봐도 그렇다. 고의적으로 정보를 누락한다거나 허위 정보를 노출시킨다. 그렇다고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는 줄 안다. 이의신청하면 곧바로 공개할 정보를 일단 비공개부터 결정하고 본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것 저것 신경쓸 것 많은 기자에게 이런 문제로 실랑이 벌이고, 신경전 벌이는 것은 어쩌면 정보공개청구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위 다섯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은폐된 정보를 캐내야하는 사명을 가진 기자에게 정보공개청구는 취재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단이요 과정이다. 동료가 불편해한다면, 입수한 고급 정보를 한 번 쯤은 그 기자에게 자료를 넘겨주거나 같이 공동 취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자들은 자신들에게 기사 거리를 제공하는 취재원(기자 포함)에게 호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항상 특종하는 기자는 단명할 수밖에 없다는 불문율도 서글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보공개청구하는 요령과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익힐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법 뿐만 아니라, 관련 판례도 알아두면 이의신청할 때 큰 도움이 된다. 필자의 경우, 정보공개법과 판례를 들어 이의신청을 해서 거의 원하는 정보를 받아냈다. 이런 점에서 정보공개센터가 언론재단 같은 기관과 손을 잡고 현직 기자들을 위한 교육과 훈련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아예 이의신청하는 요령만 골라 사례별로 특강을 열어봐도 좋을 것 같다.
투명한 사회는 돈과 힘을 가진 자에게는 불편하겠지만, 힘없는 서민들에게는 편리하고 합리적인 질서를 가진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다. 은폐된 정보를 캐내고 이를 서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기자들의 사명이요, 의무다. 정보공개청구는 이같은 기자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고, 취재 수단이라는 점만 명심하자. 언젠가는 스스로 기자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왜 기자가 되었는지, 그동안 초심에서 얼마나 벗아나 있었는지 깨닫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큰 특종을 낚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딥스로트(Deep Throat)가 내 휴대폰 벨을 울리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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