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 21대 국회의원들의 재산 내역(2022.12.31기준)이 공개되었습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한국의 고위 공직자들은 매년 3월 말 각 기관의 공보를 통해 재산 내역을 공시하고있는데요, 이는 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견제를 위해 필수적인 정보입니다. 이해충돌이나 부정한 재산증식이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공개센터에서는 31일 새벽, 국회공보를 통해 발표된 <국회의원 정기재산 신고 내역> PDF 파일을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변환하여 시민들이 더 쉽게 활용활 수 있도록 공개했습니다. 국회의원 296명의 건물, 토지, 자동차 등 부동산 내역과 예금 및 주식 내역, 정치자금, 지정금액 이상의 미술품, 금은보석, 지식재산권 그리고 채무 등의 자세한 내역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 재산 포트폴리오와 항목별 감시 지점
296명 의원들은 2022년 12월 31일 기준 평균 34억 8천만 원, 합계 1조 314억 원의 재산을 신고했습니다. 재산 신고를 할 때 원칙적으로 직계존비속 재산을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가구당 평균으로 따지면 실제보다 액수가 높게 나오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점을 감안해도 2022년 3월 말 기준 국민 1가구당 평균 재산 4.5억과 비교할 때 8배 이상입니다.
어떤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항목별로 비중을 보면 건물이 40%, 증권과 예금이 각 19%, 토지가 6%이고 채무는 9%입니다. 지난 3년간 통계에서도 건물은 계속해서 40%를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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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들의 비리와 책무를 감시하고자 할 때도 건물과 토지 그리고 증권을 주로 분석합니다. 건물의 경우 기본적으로 주택 보유 수와 수도권 및 재개발 지역에 편중된 경향성 등을 살펴보며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투기가 의심되는지 따져봅니다. 또 상가 건물 등 임대업을 통해 과도한 불로소득을 취하고 있지는 않은지, 상임위원회 등 의정 활동에 사익을 앞세울 요소가 있는지도 분석합니다.
건물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채무 항목 중 '임대채무'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면 전세보증금으로 세입자에게 받은 금액을 확인할 수 있어 임대사업자 여부나 규모를 추려볼 수도 있습니다. 2022년 11월 경실련은 재산공개내역을 통해 임대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국회의원들을 선정하고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른 신고여부를 조사해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지난 11월 기준 임대업자로 영리행위 신고를 한 국회의원은 19명이었습니다.
토지의 경우 2021년 LH 사건에서 드러난 바 있듯이 택지 재개발 정책과 밀접하게 관련될 수 있습니다. 1000㎡ 이상의 농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경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투기를 위해 땅을 매입했는지 따져보고, 공직 활동으로 부당하게 정보를 취득해 사익을 취하지 않았는지 이해충돌 요소도 살펴봅니다. 토지 항목은 땅의 소재지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요, 한국일보의 <농지에 빠진 공복들> 페이지에서 재산공개제도를 활용해 공직자들의 토지소유 현황을 지도에 정리한 바 있어 참조할 만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식 보유의 경우 기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부당한 이해관계나 로비가 더 쉽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백경란 전 질병관리청장은 취임 당시 다량의 바이오제약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 취임 7개월 만에 사퇴한 바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도적으로 재산공개대상자는 3천만 원을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 직무와 관련한 이해충돌 요소가 있는지 심사받고, 연관성이 있다면 해당 주식을 2개월 이내에 팔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맡겨 백지신탁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사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해 시간을 끈다거나, 비상장 주식은 포함되지 않는 등 허점이 많기 때문에 공직자들의 주식을 내역을 살펴보는 것이 아직까지 매우 중요한 상황입니다.
직계존비속 재산 숨기는 의원들
그런데 시민들의 감시를 받고 이해충돌에 대한 검증을 받아야 할 국회의원의 재산 중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지거부' 한 부모나 자녀, 손자의 재산입니다. 고위공직자들은 매년 재산을 공개할 때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의 재산 내역도 함께 공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독립생계를 유지해 피부양자가 아닐 경우에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으로 재산신고사항의 고지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공직자윤리법 제12조④항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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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재산신고에서 사망이나 이혼 등으로 인한 등록 제외 사항을 빼고 부모, 자녀, 손자 등 직계존비속의 재산 고지를 거부한 의원은 127명, 해당하는 가족의 수는 193명입니다. 직계존비속이 있다고 등록한 의원 279명 중 무려 46%가 가족의 재산을 비공개했습니다.
지난 3년간의 추이를 보면 고지 거부 의원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사유는 독립생계유지가 거의 대부분이었고, 부모의 경우 타인이 부양한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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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녀만 추려서 분석해 보면, 자녀의 재산고지를 거부한 의원들의 숫자는 훨씬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1년 3월 취임 초기 46명, 18%밖에 되지 않던 고지거부 의원의 수가 올해 재산신고에서는 28%로 10%p나 올라 71명의 의원들이 자녀의 재산을 비공개한 상황입니다.
고지거부 조항을 이용하면 부당하게 재산을 취득하고도 가족들에게 은닉하기가 매우 쉬워집니다. 실제로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화천대유에서 퇴직금·산업재해위로금 등으로 50억 원을 받았던 곽상도 의원의 아들도 '독립생계'를 이유로 재산내역 고지를 거부한 바 있습니다.
게다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심사하고 승인한 고지거부 사유도 자세히 공개되지 않고 있어 심사가 객관적이고 엄격하게 이루어졌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자녀재산 가장 많이 증가한 의원
자녀 재산이 공개된 의원들 중에서는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의 장남이 가장 크게 증가했습니다. 백 의원의 장남은 지난해 종전가 5억 4600만 원으로 신고했던 부산 양산시 어곡동 소재의 약 3800㎡ 2개 필지를 실거래가 12억 400만 원에 매각했고, 판매 대금을 예금으로 예치해 9억 7600만 원의 예금 증가를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백 의원 장남 소유의 토지는 2020년 백 의원의 출마 당시부터 논란이 되었던 바 있습니다. <뉴스타파>와 KBS의 취재 결과 어곡동 토지는 백 의원의 아들이 15살 때인 2011년 여름에 매입했는데, 백 의원 측은 '증여받은 다른 땅을 팔아 아들이 직접 땅을 샀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땅을 매입한 해부터 해당 부지에 어곡동 도시개발 사업이 고시되면서 산업단지와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었고, 부산과 양산을 잇는 도시철도와 국도도 들어설 계획이어서 당시 시의원이었던 백 의원의 부당이득 및 투기 의혹, 매입자금의 축적 과정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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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재산 공개제도 시행 30년
2003년 첫 시행된 공직자재산공개 제도는 올해로 30년을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부동산 및 주식 관련 정책을 다루는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계속해서 불거져 나오는 등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증식 문제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재산 공개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공직자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기 위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재산 내역만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 형성 과정 및 내용을 상세히 공개해 공직자가 직위와 권한을 사적으로 이용해 부당이득을 얻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공개센터를 포함한 6개 시민단체는 재산공개와 정보공개 제도개선 네트워크(재정넷)를 발족해 전면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직자 재산공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 재산등록 시 공시지가(공시가격)와 실거래가격(시세) 함께 기재 ▲ 재산등록 시 재산형성 과정 상세기재 및 자산취득자료제출 의무화 ▲ 직계존비속에 대한 고지거부 조항 폐지 등의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또 제도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 재산심사 및 조사 강화 ▲ 재산등록대상 및 공개 대상 확대 ▲ 재산 내역의 데이터형식(기계가독형) 공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회의록 공개로 전환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그 정보가 알고싶다> 시리즈에도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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