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이화동 칼럼

용산참사와 KBS 학살의 배후는?

opengirok 2009. 1. 22. 10:44


                                                               김용진 정보공개센터 이사(현 KBS 울산총국 기자)

용산 철거 현장 참사를 보며 얼마 전 현대중공업 관계자들과 만나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지난 89년 현대중 총파업 취재를 시작으로 90년대 초까지 해마다 울산에 와서 파업취재를 지원했다고 말을 꺼내자 나이 지긋한 현대중의 한 임원은 '그때 사람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중무장한 진압경찰과 노동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처절한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울산 거리가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뒤덮이고 수많은 부상자가 생겼지만, 현장 취재기자인 내가 보기에도 '신기할 정도'로 현장에서 인명이 끊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 엄혹한 시절에도 최소한 양측이 '사람의 목숨'이라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의식했기 때문이리라.

▲ ⓒ노컷뉴스


그래서 어제 용산 참사는 '초현실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서로 흥분한 상태에서 격렬하게 충돌할 때도 없던 일이 어떻게 철거민 수십 명의 농성 현장에서 일어난단 말인가?

80년 광주 이후 이른바 '공권력'과 시위대가 충돌해 발생한 최악의 참사는 89년 동의대 사태였다. 동의대는 당시 내 취재 구역 안에 있었다. 당시 경찰 지휘 라인은 학생들이 농성 중이던 중앙도서관 내부 상황과 위험 물질 존재 여부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벽에 무리하게 진압작전을 명령했고, 경찰관 7명이 안타깝게 희생됐다. 농성 학생 70여명은 구속돼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선고받았다. 노태우 정권은 이 사건을 활용해 우리 사회를 공안정국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동의대 사태 때는 명령을 수행했을 뿐인 일선 경찰관의 희생은 있었지만, 경찰 작전 때문에 민간인의 목숨이 '무더기'로 끊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곁에서 군부독재 시절에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생겼다. 왜 그런가?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여기는 MB 식 '삽질문화'가 불과 1년 만에 우리 사회를 지배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삽질에 거치적거리면 특공대를 보내 쓸어버리고, 삽질문화 창달에 걸림돌이 되면 검찰을 동원해 처넣어버리는 인명과 인권 경시 풍조가 어느덧 우리 일상에 똬리를 틀었다.

▲ 이번에 파면과 해임이라는 징계를 당한 세 명의 기자, PD. 양승동 사원행동 공동대표, 김현석 사원행동 대변인, 성재호 기자.(왼쪽부터) 이치열 기자 truth710@

 

나는 KBS 양승동 PD와 김현석 기자, 성재호 기자에 대한 파면·해임도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가벼이 여기는 집권 세력과 그 하수인들의 집단 광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YTN 노조원과 교사들에 대한 무더기 파면·해임도 마찬가지다. 양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들을 자신들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은 살인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양승동 PD와 김현석 기자, 성재호 기자는 MB 정권의 부당한 KBS 접수 공작에 대해 저항했을 뿐이다. 이들마저 없었다면 지금쯤 아마 KBS는 '언론기관'으로 불릴 자격도 없을 것이다. 이들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파면·해임이라는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내린 것은 인두겁만 뒤집어쓴 짐승의 소행이지 사람의 짓이 아니다.

사원행동 대표나 대변인도 아닌 '평기자' 성재호에 대한 해임은 더더욱 억장을 무너지게 한다. 성 기자는 KBS 탐사보도팀 창설 멤버로 지난해 9월17일 보복인사 때 탐사보도팀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3년 넘게 KBS 탐사보도팀의 주축으로 일했다. 많은 특종을 일궈냈을 뿐 아니라 국회의원 외유 관련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국회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해 2심까지 승소 판결을 받았고, 노무현 정권 때는 취재 제한 조처에 맞선 정보공개법 개정 투쟁에 방송기자 대표로 활약하는 등 실천하는 기자의 표상이었다. 장관 등 고위 공직자를 취재할 때는 추호도 주눅 들지 않았고, 일반 시민을 상대할 때는 만에 하나라도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을까 기사 한 줄, 그림 한 컷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는 기자였다.

김현석, 성재호, 양승동 같은 양심적이고, 강직하고, 거기다 유능하기까지 한 기자, PD들을 KBS에서 쫓아내면 그 다음은 뭔가? 이들의 수급을 내주고, 권력의 총애를 받겠다는 건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언론기관'이었던 동아일보는 지금 이른바 '조중동'이란 칭호에서도 세 번째로 취급받고 있다. 지난 74년 언론 자유를 외치던 기자들을 무더기로 축출한 이후 예정된 운명이었다. 그 뒤에도 김중배 선생 같은 기자들이 자의반 타의반 하나둘씩 동아를 떠났고, 동아일보는 이제 더 이상 박정희 시절 권력에 맞서던 그 동아일보가 아니다. 지금 이 신문의 논조에서 과거 독재에 항거하던 기개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김현석, 성재호, 양승동 같은 언론인들이 KBS에서 쫓겨난다면 KBS도 필연적으로 3류 방송의 길을 걸을 게 명약관화하다. 영향력 1위, 신뢰도 1위, 모든 언론지망생들의 로망은 불과 몇 달 새 이미 옛 추억의 향기가 되고 있다. "방송을 가운데 갖다 놔라"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수준의 대통령 아래, 공영방송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도 탑재하지 못한 그 하수인들이 KBS를 노략질하면서 KBS가 예전의 땡전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는 안팎의 한탄이 넘쳐나고 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날 나는 KBS 1TV 밤 11시 뉴스인 뉴스라인을 보다가 용산 참사의 초현실적 광경 못지않게 KBS의 '초현실적 편집' 스타일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최악의 참사가 발생한 날 오바마 취임식 예정 소식을 톱으로 올리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미셸 스타일 따라잡기'라는 여성지 잡기사 수준의 리포트를 버젓이 톱 뒤에 받치는 행태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다. KBS의 추락은 KBS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에 큰 재앙이 된다는 점에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법질서와는 가장 거리가 멀게 살아온 부류의 인간이 권부 깊숙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법질서 준수' 운운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 나라의 가장 큰 비극이다. 그리고 이 비극을 초래한 책임에서 언론도 비켜갈 수 없다. 공직자의 자질과 도덕성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부적격자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서 선거과정을 통해 걸러내도록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선출 이후에는 권력의 오남용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데 그것도 게을리 했다. 주류 매체들은 극소수 상류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권력집단과 이미 일심동체가 돼 있거나 그렇진 않더라도 이 비극의 본질을 용기 있게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매체들도 일부는 여전히 정파주의에 매몰돼있거나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 김용진 KBS 전 탐사보도팀장(현 KBS 울산총국 기자)

이래서는 희망이 없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용산 참사 같은 또는 미네르바 구속 같은, 후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들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양심을 지키려는 언론인, 교사 등등도 하나둘씩 잘려나갈 수밖에 없다. KBS의 동료들이 양승동 PD와 김현석, 성재호 기자에 대한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 투쟁에 들어간다. 물론 1차적 목표는 부당징계 철회를 받아내는 것이지만, 이번 투쟁은 부당징계 철회 이상의 함의를 지니고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급격하게 일부 외부 세력에 의한 사영화(私營化), 정권에 의한 관영화(官營化) 조짐을 보이고 있는 KBS를 공영방송의 자리로 되돌리는 힘찬 출발점이 돼야 한다.

수신료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용산 철거 현장에서 경찰 수뇌부의 어이없는 진압명령으로 희생된 철거민, 경찰 특공대원도 다 2,500원의 수신료를 낸 시청자였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KBS가 서야할 지점이 어딘가는 너무나 자명하다. 관영의 굴레를 저항 없이 쓸 것인가, 아니면 과감하게 떨쳐낼 것인가. 양자택일은 이제 KBS 구성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