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이화동 칼럼

'시민운동'도 보수적이었다

opengirok 2009. 1. 20. 17:09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답답해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린다.
작년 하반기 이후 서울에 있는 시민단체(서울의 구 단위에서 활동하는 풀뿌리 단체들은 제외하고 하는 이야기이다)들은 방향을 잘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촛불’이 가라앉은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찾지 못하고 있다.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기에도 힘겨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회계부정을 포함한 내부문제들이 드러난 환경운동연합은 아직도 시민들이 수긍할만한 혁신적인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임기응변식의 대처로 읽힐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가 시민단체답게 운영되지 못했고, 환경단체가 환경단체답게 활동하지 못했던 근본 원인들에 대해 성찰하고, 조직을 완전히 혁신할 수 있는 방안을 내 놓아야 한다. 책임질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하고, 조직체계와 활동방식을 완전히 혁신해야 한다.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지
회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지 못한다면, 환경운동연합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조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환경운동연합 회원의 한사람으로서, 그리고 환경운동을 위해 헌신해 온 주위의 활동가들의 상처와 고뇌를 보면서 하는 이야기이다.

다른 시민단체들을 보면서도 요즘 ‘보수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변화를 해야 하는 시점에 변화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달리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 온 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분명한데, 변하지 않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시민단체들이 뭔가를 제안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발로 뛰어다니는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 연대조직을 구성하고, 이벤트를 열고 보도자료를 내지만, 구태의연한 방식이다.

지금 시민단체들이 행동하고 있는 패턴은 1990년대 초중반에 확립된 패턴들이다. 사무실에 앉아서 보도자료 쓰고, 활동가들이 주로 참여하는 집회나 이벤트를 열어 언론의 관심을 끌려고 하고, 사안이 있으면 단체들끼리 모여서 연대조직 만들고, 기자회견열고…. 이런 방식들은 1990년대에는 통했던 방식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그런 방식에 쉽게 젖어들었다.

재정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회비로 재정을 충당하지 못하는 단체들이 많다 보니 후원행사를 열고, 기업의 협찬을 받고, 정부 프로젝트에 지원해 왔다. 그러다보니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사실은 진작에 변했어야 한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위기의 징후들은 보였다. 시민운동이 시민들의 관심에서 밀려나고,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의 활동이 매너리즘에 빠진다고 느낄 때부터 변화를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또한 시민단체들은 스스로 함정을 파 왔다. 특히 ‘정치적 중립성’의 신화에 안주해 온 것이 뼈아프다. 도대체 정치적으로 중립이라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시민단체들이 하는 활동들은 정책에 관련된 것들이고, 정치적인 행위들이다. 근본적으로 보면 ‘정치적 중립’이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는 것은 기득권 정치를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도덕성이나 실정법위반 여부를 기준으로 정치권을 비판하고, 잘못된 정치 관련 실정법(시민들의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선거와 정치제도)을 기준으로 공명선거운동이나 낙천낙선운동을 벌여온 것도 결국 기득권 정치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민단체들의 이런 활동들은 정치에서 희망을 만들기보다는 정치에 대한 회의와 냉소를 증폭시켰다. 지금 나타나는 낮은 투표율과 관련해서 시민단체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운동이 운동다우려면 비전이 있고,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하겠다는 풀뿌리정신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시민운동에는 그런 비전도, 정신도 부족해 보인다. 2009년 한국사회의 현실은 매우 냉혹하다. 이런 현실에서 시민운동이 한국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래도 그 가능성을 믿는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운동 스스로 변해야 한다.

운동이 운동다워져야 한다. 한편으로는 큰 그림을 그려 나가며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출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시민운동을 살리고, 우리 사회를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