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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청장은 왜 신촌 대학생들 반발에 부딪혔나

opengirok 2022. 9. 5. 10:55

오마이뉴스에 발행한 글입니다.


 
 
▲  신촌 연세로 "차 없는 거리"에서 공연을 즐기는 시민들
 
 

2014년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된 후 '차 없는 거리'로 각광받았던 서울 신촌 연세로. 신촌물총축제, 맥주축제, 버스킹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최근 서대문구가 연세로에 차량 통행을 재개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차 없는 거리'의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문제의 발단은 불과 두 달 전 지방선거로 서대문구청장이 바뀌면서 시작되었다. 새로 당선된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은 취임 직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첫 행정업무로 '차 없는 거리'의 차량 통행을 원상회복시켜 상권을 활성화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조에 맞추어 서대문구청장직 인수위원회 역시 올 연말부터 신촌 연세로의 차량 통행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교통혁신 방안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후 서대문구가 대중교통전용지구 및 차 없는 거리 지정 해제를 통해 차량 통행을 전면 허용하겠다는 '연세로 차량통행 환원 추진 계획'을 내놓았고, 이에 대해 신촌 지역 대학 학생회와 환경단체 등이 보행자 안전 위협과 문화 공간 축소, 기후위기 대응 역행 등을 이유로 반발하면서 '차 없는 거리'가 지역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이다.
   

 

연세로 '차 없는 거리'는?

흔히 '차 없는 거리'로 불리는 대중교통전용지구는 말 그대로 일반 차량의 통행을 차단하고, 대중교통과 보행자의 통행만 허용된 지구를 말한다. 대중교통전용지구는 승용차의 이용수요를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증진하며, 보행자 중심의 공간 재편을 통해 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다.

국내에서는 2009년 12월 대구시 중앙로가 최초로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되었고, 서울시 연세로는 2014년부터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운영되었다. 2015년 4월 이후 부산 동천로 역시 출퇴근 시간대에 한정해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수원, 성남, 전주, 인천 등에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계획하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신촌 연세로의 경우 원래 시간당 약 1200대의 차량이 몰리는 상습 정체로 악명 높은 도로였다. 게다가 유동 인구가 많은 대학가 상권이라는 점이 겹쳐져, 보행 여건이 나쁘고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지역이었다. 여기에 2000년대 이후 거리가 멀지 않은 홍대 상권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신촌 상권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  서울연구원 보고서에 실린 신촌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설명
 


2012년 7월, 신촌 연세로가 서울시 대중교통전용지구 시범사업에 선정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서울시와 서대문구, 지역 상인과 환경단체 등 다양한 관련 주체들이 협의 테이블을 구성하여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을 준비했다. 공사 과정에서 노점상 단체와 충돌을 빚거나, 운영 이후에도 일부 상인 단체의 반대에 부딪히는 일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서울 유일의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과 더불어 공간 개선 사업이 더해지면서 신촌 연세로는 조금씩 활력을 더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신촌물총축제, 맥주 축제, 거리음악 축제 등 다양한 축제와 이벤트들이 등장하면서 연세로를 찾는 방문객은 점점 늘어났다. 유동인구가 많기로 손에 꼽히는 강남역 일대보다 오히려 신촌 일대의 거리활력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등장하기도 했다. 
 

 
▲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전년 대비 2020년 매출액 증감 행정동 순위
 


하지만 2020년 확산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울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신촌동 점포들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2195억 원 가량 감소하여 27.6%의 감소율을 보였다. 주거 지역이 아니라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상권이었기 때문에, 비대면 수업 등으로 인한 유동인구 감소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직격타를 맞은 것이다.

많은 가게들이 폐업하고, 상권의 메인스트리트인 연세로의 1층 점포마저 공실이 생기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신촌은 초유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충격이 미처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차 없는 거리' 정책을 추진한 전임 구청장과 노선을 달리하는 새 구청장이 차량 통행을 재개해 상권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안을 들고나온 것이다.

차량 통행이 재개된다고 상권이 회복될까?

하지만 연세로에 차량 통행을 재개하면 인근 상권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이성헌 구청장의 주장은 마땅한 근거가 부족하다. 오히려 과거 쇠퇴하던 신촌 상권이 대중교통전용지구 운영을 기점으로 방문객이 증가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는 분석이 대다수다.

대중교통전용지구를 운영한 지 반년이 지난 2014년 7월, 서울시는 신용카드 데이터 분석 결과 신촌에 위치한 점포를 찾는 시민이 이전 해와 비교해 28.9% 늘어났고, 매출건수는 10.6%, 매출액은 4.2% 증가했다고 밝혔다. 2014년부터 연세대 신입생들이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상당한 매출 감소가 이루어졌음을 고려했을 때,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인한 보행량 증가가 상권의 매출 확대에 기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한국교통연구원 보고서에서 분석한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 전후 신촌 상권 매출 변화
 


"사람들은 왜 신촌을 떠났을까"라는 제목으로 신촌 토박이, 지역 상인, 문화예술인 등을 인터뷰하여 발표한 서울연구원 작은연구 보고서 역시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으로 인해 연세로의 공간적 성격이 바뀌면서, 신촌이 활력을 찾았음을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 기업형 프랜차이즈의 등장과 임대료 상승으로 개성 있는 작은 가게들이 홍대나 성수, 이태원 등으로 떠나버렸고, 소비자들 역시 이를 따라 신촌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 없는 거리' 이후 연세로가 소규모 문화공연과 거리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고, 사람들이 신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다시 방문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연세로에 다시 차량 통행이 전면 허용되면, 필연적으로 보행 공간이 축소되고, 거리예술 공연이나 축제를 진행할 광장 역시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동안 시민들에게 신촌의 이미지를 환기시키던 연세로가 더 이상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신촌 상권을 찾을 방문객들 역시 가까운 홍대거리나 개성이 강한 이태원, 성수동으로 다시 발길을 돌릴지도 모른다.

 
 


'차 없는 거리'는 세계적인 흐름

사실 신촌 연세로의 사례는 도입 과정에서 효과에 이르기까지 성공적인 도시재생 정책의 하나로 꼽힌다. 도입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조율 과정에 힘을 쏟았고, 개통 이후에도 대중교통전용지구 사업과 관련한 갈등 조정을 계속해서 수행한 것이 높게 평가받았다. 2018년, 서울시는 도시재생 사업의 성과를 인정받아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이 수여하는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수상했다. 이때에도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는 중요한 보행자 중심 도시재생 사례로 언급된 바 있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해외 도시들은 오히려 '차 없는 거리' 정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모임이 줄어들고, 지역 상권이 위축되자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의 주도로 거리의 차량 출입을 막고, 보행자에게 개방된 도로에서 야외 행사와 문화 프로그램을 여는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뉴욕시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오픈스트리트 현황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뉴욕시는 여러 도로들을 오픈 스트리트로 지정하고, 식당의 야외 영업을 허용하여 상권의 활성화를 꾀했다. 오픈 스트리트로 지정된 맨해튼 한인타운은 한국식 포장마차 거리로 변신, 국내 언론들에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 4월, 뉴욕시 정부는 팬데믹 기간 동안 인기를 얻은 '오픈 스트리트' 프로그램을 156개 도로로 확대하여 실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영국 런던 역시 '스쿨 스트리트'라는 이름의 차 없는 거리 정책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스쿨 스트리트는 학교가 위치한 인근 도로에서 출퇴근 시간대 자동차 진입을 금지하는 제도다. 보행자 안전을 확대하고,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2017년 최초로 도입된 스쿨 스트리트는 2022년 현재 런던 전역의 511개 학교로 확대되었고, 2024년까지 1000개 학교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자동차도로를 축소하고,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를 크게 늘린 프랑스 파리시도 2024년에 세느강을 중심으로 한 도심 지역에 외부 승용차의 진입을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차 없는 거리'가 세계 주요 도시들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구청장의 독단이 아니라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  연세로 관련 교통 민원에 대한 서대문구의 회신 내용
 
 


서대문구는 지난 8년 동안 '차 없는 거리'를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하고, 연세로를 축제 거리로 만들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중요한 구정 방향으로 삼아왔다. 앞서 살펴보았듯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 과정에서는 1년이 넘는 준비 기간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논의하는 테이블을 만들고, 두 차례 공청회를 통해 주민들의 입장을 수렴하기도 했다. 이러한 숙의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2013년 서울시 갈등관리 수범 사례에 꼽히기도 했다.

그러던 서대문구가 구청장이 바뀌자마자 전문가 토론회나 주민 공청회와 같은 최소한의 절차도 없이 차량 통행 전면 허용을 추진하는 것은, 구청장의 독단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연세대학교 학생회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중교통전용지구 폐지 설문조사 결과
 
 


'차 없는 거리'의 존폐는 도입 과정에서 그러했듯, 사회적 토론과 합의의 절차를 거쳐 결정되어야 한다. 연세로가 단지 서대문구의 중심도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울 유일의 대중교통전용지구이며, 보행자 중심의 공공공간 개편,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자동차 감축,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의 상징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미 신촌 지역을 생활 터전으로 삼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반발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서대문구가 독단적인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연세로의 가치를 면밀히 파악하고 정책의 효과를 분석하여 '차 없는 거리'를 둘러싼 논의에 나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