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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사유] 대선 후보들 연달아 약속한 ‘이 공약’, 지켜질까?

opengirok 2022. 3. 16. 11:38

[공개사유] 대선 후보들 연달아 약속한 ‘이 공약’, 지켜질까?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모두 내건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주목 받는 ‘게이머의 알권리‘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유독 두드러진 현상이 있다면 신문과 TV 등 레거시 미디어 못지않게 유튜브의 역할이 크게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대선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유튜브 채널에 얼굴을 내밀어 자신의 공약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했다. 각 후보들과 심도 깊은 토론을 이끌어 내 ‘나라를 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경제 전문 유튜브 삼프로TV의 대선 특집 영상의 조회수 총합은 1300만에 달했다. 그 외에도 대선 후보들은 시사, 의학, 반려동물, 심지어 어린이 채널까지 다양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고, 채널의 성격에 맞춰 자신의 공약을 소개하여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 중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이 지난 12월, 게임 전문 유튜브 채널 ‘김성회의 G식백과’에 이재명 후보(조회수 102만), 안철수 후보(조회수 59만)가 각각 출연했던 영상이었다. ‘게이머도 유권자다’라는 부제를 달고 진행된 이 방송은 그동안 선거에서 주목 받지 못했던 게임 정책에 대해 유력 대선 후보들의 입장을 듣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게이머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특히 지난 십수년 간 게임 산업의 규모가 날로 커지고, 게임 회사들이 유수의 대기업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소비자로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소외당했던 것에 큰 불만을 품었던 게이머들이 정치권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시점에 이뤄진 방송이었기에 더욱 크 의미가 컸다.

‘게이머 유권자’ 표심을 붙잡고자 한 대선 후보들의 노력은 공식적인 선거 공약으로까지 이어졌다. 민주당, 국민의힘, 국민의당의 20대 대선 정책공약자료집에 모두 그동안 게이머들이 강력하게 요구해 온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공약이 포함된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뭐길래?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대체 확률형 아이템이 뭐길래 유력 대선 후보들이 모두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를 대선 공약에 내걸게 된 것인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문제가 있어 봤자 결국 게임 아이템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세계시장 점유율 4위, 전체 매출 규모 20조원에 가까운 거대 산업인 한국 게임 산업의 핵심적인 비지니스 모델이며, 따라서 그동안 ‘소비자이면서 소비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한’ 게이머들의 누적된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찬찬히 살펴보자.

2000년대 중반까지 바람의나라, 리니지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온라인 RPG 게임이 돈을 버는 방식은 ‘정액제 모델’이었다. 월 2~3만원의 요금을 내면, 게임의 각종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유저들이 떠나고, 그만큼 매출이 감소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는 법, 많은 게임 회사들은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부분 유료화 모델’을 도입하게 된다. 기본적인 게임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도록 열어두어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고, 대신 각종 아이템을 유료로 구매해 캐릭터를 꾸미거나, 능력치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하여 아이템 판매를 통해 매출을 올리는 전략이었다. 온라인 게임은 기본적으로 캐릭터와 캐릭터 간의 경쟁인 만큼, 다른 사람이 아이템을 구입해 강해진다면 나도 아이템을 구입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부분 유료화 모델’은 오히려 정액제를 뛰어 넘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너도 나도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가 되자, 새롭게 도입된 것이 바로 ‘확률형 아이템’이다. 쉽게 말해서 돈을 내고 랜덤박스를 구입하고, 해당 랜덤박스를 열면 확률에 따라 서로 다른 아이템이 등장하는 도박성이 강한 방식이다. 좋은 아이템일수록 나올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아이템을 얻어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구조가 된다. 게임 회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출시할 때마다 매출을 확 늘릴 수 있는 마법의 비지니스 모델이 만들어진 것이다.

게임 환경이 PC 기반의 온라인 RPG에서, 모바일 기반의 수집형 RPG로 이동하면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의 범위 역시 무한하게 확대되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아이템(장비)이나 캐릭터를 보조하는 펫 정도에 그쳤던 범위가, 이제는 캐릭터마저도 확률형 아이템에 범주에 들어가, 더 좋은 캐릭터, 더 매력적인 캐릭터를 뽑기 위해서 낮은 확률을 감수하고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임에 따라서 필수적인 스테이지나 이벤트를 클리어 하기 위해서 특정한 캐릭터나 아이템이 필요한 상황을 도입해, 매출을 극대화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모바일 게임 이용자의 확률형 아이템 지출 금액 설문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2021 게임 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1 게임백서’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 이용자 중에서 확률형 아이템 획득을 위해 돈을 쓴 사람도, 그 금액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국내 게임 시장의 규모가 10년 사이 두 배 이상 성장한 것은 이러한 비지니스 모델의 확립과 무관하지 않다.



‘확률형 아이템’의 진짜 문제



좋은 아이템을 뽑기 위해 행운을 기원하며 낮은 확률에 돈을 쓰는 ‘확률형 아이템’은 그 자체로 도박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만약 게이머들이 아이템을 뽑을 수 있는 확률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기댓값에 따라 비용을 지출하는 ‘합리적 소비’가 가능하다면 확률형 아이템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과 다름없다는 문제 제기에 맞서서, 지금도 게임회사들은 확률형 아이템의 뽑기 확률을 공개하고 있긴 하다. 문제는, 이것이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니라 게임회사들이 모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에 의한 자율규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확률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처벌하기도 어렵고, 또 각 게임마다 서로 다른 공개 범위와 공개 방식을 가지고 있다 보니 게이머들이 해당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렵다.

특히 악명 높은 몇몇 게임회사의 경우, 게이머들이 아이템 확률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도록 홈페이지 구석에 숨겨놓고, 그나마도 수백 개가 넘는 아이템 각자의 확률을 이미지 파일로 올려놓아 게이머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억지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정보공개를 하지만, 이용자들이 제대로 기댓값을 계산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리니지 W의 아이템 확률 공개 스크린샷


만약 어떤 아이템을 뽑을 확률이 10%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 많은 사람들이 열 번 뽑으면 한번 나오겠네? 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열 번 뽑아서 해당 아이템이 한 번 나올 확률은 65%에 불과하다. 만약 99% 이상의 확률로 해당 아이템을 한번 이상 획득하기 위해서는 22회 이상 뽑기를 돌려야 한다. 한번 뽑을 때 1000원이 든다면, 최대 2만2천원이 지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게임 회사들이 새롭게 내놓는 캐릭터나 아이템의 경우, 그 확률이 많아야 0.6%, 적은 경우 소수점 세자리까지 확률이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이머들이 자신들이 지출해야 할 비용을 착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확률을 공개하더라도, 해당 확률이 실제 게임에서 적용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일례로 넷마블에서 서비스하는 ‘몬스터 길들이기’의 경우, 출현 확률이 0.005%에 불과한 아이템의 확률을 ‘1% 미만’으로 표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을 부과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많은 게이머들이 게임사가 공개하는 확률이 실제와 다를 수 있다며 확률조작을 의심하고 있지만, 이를 검증할 수 있는 게임 로그 등을 공개하지 않아 불만을 사고 있는 현실이다.

현금으로 게임 캐시를 결제하고, 게임 캐시를 다시 게임 내 재화로 환전하여, 이 재화로 확률형 아이템을 뽑는 방식의 복잡다단한 결제 방식도 ‘확률형 아이템’의 기댓값을 계산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돈을 내고 아이템을 사는 방식이 아니라, 게임 내에서 획득한 재화와 현금 결제로 구입할 수 있는 재화를 이중 삼중으로 결합하여 확률형 아이템을 뽑을 수 있는 방식이 일반화 되다 보니, 게이머들이 뽑기 한 번에 얼마를 사용하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계산하기 어렵고, 여기에 또 소수점 아래로 떨어지는 뽑기 확률이 더해져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한 기댓값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마치 물건을 사는데, 가격표가 3차, 4차 방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게이머의 알권리 확대하는 계기 되길



2021년은 그동안 서서히 들끓었던 게이머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해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게임사 3N(넷마블, 넥슨, NC) 모두 그동안의 게임 운영에 대한 문제점들이 터져나와, 게이머들이 트럭 시위를 벌이거나 대규모 탈퇴 운동을 벌이는 등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의 트럭 시위


게임마다 이용자들이 불만을 가지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인 불만은 게이머들이 소비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지점이었다. 게임 산업의 규모는 날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체계적인 고객 상담이나 권리 구제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불만이 결국 소비의 핵심을 차지하는 확률형 아이템의 문제로 향했고, 더 이상 게임사들의 ‘자율규제’를 믿지 못하겠으니,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를 법제화 하라는 요구로 이어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 2021년 4월,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의 대표발의로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법제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게임 회사들은 자율규제로 충분하다며 반박하고 있지만, 주요 대선 후보들까지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게이머들의 요구가 게임회사들의 주장을 압도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동안 게임과 관련한 정치권의 공약은 주로 경제적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 지원과 셧다운제로 대표되는 이용 규제 사이를 오갔다. 이번 대선은 지원과 규제의 이분법을 넘어서, 게이머의 권리를 중심에 둔 정책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게이머들에게 그 의미가 큰 선거로 남게 되었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가 단순히 선거용 깜짝 공약에 그치지 않고, 게이머의 알권리를 확대하고, 소비자로서 보호 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미 상임위에 계류된 법안이 있는 이상,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게이머들 뿐 아니라 더욱 다양한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에서 불만을 조직하고, 정치를 통해 대안을 요구하여, 실제로 제도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는 경험들이 늘어나야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