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센터가 민중의소리에 연재 중인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공개사유] 노동자의 살권리, 알권리는 관심 없는 삼성의 국회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소장
2022년 1월 11일 국회는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하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반도체 등 국가첨단산업을 보호하고 국가첨단산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이다. 이 법이 국가의 주요한 경쟁력이 될 기술을 유출하는 자들에게는 총구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총구의 범위가 넓어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마저 위협 있다. 노동자와 시민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회는 기업을 지키기 위해 국민들을 위험에 빠트릴지 모르는 총구를 묵인하는 것도 모자라 앞장서 만들어버렸다. 더구나 이 법은 2년 전 삼성보호법이라 비판받았던 산업기술보호법의 독소조항을 승계하고 강화하는 법이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백혈병 등 희귀암으로 고통받다 죽어간 것은 이제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발병과 죽음이 ‘산업재해’라는 것을 인정받는 것조차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근로복지공단과 삼성만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정부와 자본이 일심동체가 되어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인 회유와 항소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노동자들의 발병과 죽음의 원인이 작업 중의 유해화학물질 노출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의 공개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2014년 유족들과 반올림은 삼성반도체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정보공개청구했고 노동부는 이를 비공개해 긴 법정투쟁이 시작됐다. 2017년 1심은 노동부의 손을 들어줬지만 2018년 항고심은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오랜 노력으로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공개될 찰나 삼성은 다시 영업비밀을 이유로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와 법원에 정보공개 결정 집행정지 신청과 및 가처분 신청을 했고 결국 노동자들이 어떤 화학물질에 노출되었는지 공개되는 것은 또 미루어졌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을 대변하고 보호해야 할 국회는 별안간 국가핵심기술 보호라는 명목으로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정보들 역시 공개되거나 활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산업기술보호법을 만들어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국가핵심기술’과 관련이 있다고만 하면 그것이 어떤 정보이든, 하다못해 작업장을 청소한 내용마저도 은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안전하게 일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동자와 지역주민에게 꼭 필요한 정보라 할지라도 말이다. 삼성반도체도 당연히 이 법에 올라탔다. 소송을 통해 보고서 공개를 목전에 두었던 노동자들은 결국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 받지 못했고, ‘영업비밀보다 노동자의 생명권과 안전권의 보장, 지역주민과 노동자의 알권리가 중요’하다고 했던 판결은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산재 원인 규명이 지원되는 사이
국가핵심기술 보호 명목으로 작업 관련 정보를
모두 은폐할 수 있게 해준 산업기술보호법 이어
독소조항을 승계하고 강화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 국회 통과
노동안전보건과 시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노동자, 시민, 단체들은 이 법의 독소조항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이례적으로 당시 법에 찬성했던 20대국회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중당 국회의원 일부로부터 사과와 함께, 알권리를 침해하는 법의 독소조항을 개정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마침내 대법원에서 삼성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내었던 정보공개결정취소재결 취소소송에서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물질이 어떤 공정과 어떤 작업장소에서 나왔는지 공개하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온전히 공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발 나아간 판결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이 있자마자 이번에 국회는 보란 듯이 산업기술보호법보다 더 독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을 만들었다. 이 법 제10조제4항에는 아예 전략기술 관련 품목, 그리고 수급안정화가 필요한 품목에 대해서는 경제안보와 영업비밀을 근거로 아예 ‘정보공개법’을 명시하며 정보공개법의 규정들을 무시하고 공공연히 정보를 공개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별조치인 만큼 법위의 법인 셈이다. 이 정도면 산업기술보호법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 모두 그간 노동자들과 노동자들의 알권리를 요구해온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한 채 삼성의 요구만을 받아 법을 만든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선이 있는 새해 벽두부터 무거운 마음으로 묻게 된다. 21대 국회는 삼성의 국회인가 국민의 국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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