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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똥냄새! 아파트 주변에서 이게 웬일입니까

opengirok 2021. 11. 16. 11:12

가을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4대강 정비사업은 문제 투성이였지만, 그나마 성과가 있다면 국토 종주 자전거길을 남겼다는 것이리라. 남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강변을 따라 달리면 전국 어디든 갈 수 있다.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다가도, 가끔씩 얼굴을 찌푸리게 되는 순간이 온다. 축사 근처를 지날 때마다 마스크 틈새를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냄새. 바로 축산 악취다. 황급히 페달을 밟아 악취 지역을 벗어나려 해도, 한참 동안 계속 되는 냄새에 구토감을 느끼게 된다. 자전거족은 잠깐 지나치고 말 악취지만, 이 근방에 사는 주민들은 이 냄새를 견디고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산간 벽지도 아니고, 도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 아파트도 적지 않은 곳인데 이렇게 강렬한 악취라니. 역시나 얼마 가지 않아 빨간 글씨의 현수막들을 만났다. "냄새 때문에 살기 힘들다, 신규 축사 반대한다!" 악취로 인한 갈등이 만만치 않은 듯 싶었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이런 현수막을 만난 경험이 적지 않았던 터라, 분명 악취로 인한 민원이 적지 않을 거라 느꼈다. 돌아오자마자 환경부에 전국 지자체에 접수된 '축산 악취' 민원 현황을 연도별로 공개해달라고 정보공개 청구했다. 2020년은 아직 데이터가 모두 취합되지 않아,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 간의 자료를 받았다. (공개 자료 링크)

 

축산 악취 민원 현황 살펴보니

 

 

자료를 살펴보니 6년 간 전국에서 접수된 축산 악취 민원은 모두 3만 9007건에 달했다. 연도별로 살펴보자. 2014년에는 2838건에 불과했던 축산 악취 민원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 2019년에는 1만 2631건으로 네 배 넘게 늘어났다. 특히 2018년 6705건이었던 민원 건수가 2019년에 두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보아, 2019년에 축산 악취와 관련해 무언가 큰 문제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6년 간의 전체 민원 3만 9007건을 지역별로 나누어 보니, 경남·충남·경기 순으로 민원이 많았다. 축산 농가와는 거리가 있는 광역시 지역에서는 해당 민원이 적었다. 서울·대전은 축산 악취 민원이 전혀 없었고, 부산과 광주 등도 거의 민원이 없는 편에 속했다. 

좀 더 세밀하게 시군구 별로 민원 현황을 살펴보면 왜 이렇게 악취 민원이 급증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아래 슬라이드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축산 악취 민원이 시군구별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나타낸 지도다. 2014년만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민원 건수가 많지 않다가, 해가 갈수록 충남, 제주, 경기 남부, 경기 동북부로 악취 민원 건수가 확연히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이 되면 악취 민원이 급격하게 늘어난 지역들이 확연히 드러난다.

 

 

 

 

전국 230개 시·군·구 중에서 연간 축산 악취 민원이 100건 이상인 시·군·구를 따로 정리해보았다. 2014년에는 제주 제주시 및 서귀포시, 경기 안성시, 경북 경산시 네 곳에 불과했지만, 해가 갈수록 지역들이 많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2019년이 되면 무려 스물 네 개 시·군·구에서 100건 이상의 민원이 나타났고, 한 지역에서 수천 건에 달하는 민원이 나타나기도 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해가 갈수록 아산시, 김해시, 제주시, 서귀포시, 김포시, 남원시 등에서 '민원 폭탄' 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악취 민원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특히 김해시의 경우 2019년 4500건이 넘는 악취 민원이 접수되었다. 2018년과 2019년 사이에 전국의 악취 민원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바 있는데, 그 중 대다수가 김해시의 사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정도면 단순히 개개인의 민원이 누적된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민원 행동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도대체 김해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런 민원 폭탄이 쏟아진 걸까 궁금해졌다.

 

17년 걸린 신도시, 악취 지옥으로

김해시 주촌선천 지구는 올 해 4월, 사업신청 17년 만에 준공이 완료된 신도시다. 2008년까지만 해도 4천 여명에 불과했던 주촌면의 인구는 본격적으로 입주가 시작된 2018년 이래 급격히 불어나 2021년 10월 현재 1만 8천명까지 늘었다.

새로운 터전에 자리 잡은 주민들은 곧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바로 참기 힘들 정도로 고약한 악취였다. 악취의 원인은 아파트 단지로부터 2~3km 이내에 위치한 돼지 축사 시설이었다.

 

김해시 주촌선전지구 아파트 인근에 돼지 농가가 몰려 있다는 2019년 5월 29일 KNN 경남방송 보도

 

주촌선천 지구가 위치한 주촌면, 그리고 바로 위인 한림면은 70개가 넘는 돼지 축사 시설에서 12만 마리가 넘는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전국 돼지 사육 규모가 1200만 마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전국 돼지의 1%가 주촌선전 지구 인근에 몰려 있는 셈이다. 돼지 축사가 밀집한 지역 인근에 신도시가 들어섰으니, 주민들이 악취 문제로 골머리를 썩게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축산 농가 인근 지역에 대규모 주거단지를 짓는데, 축산 악취 문제가 있을 것을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해시에 대한 입주자들의 항의가 줄을 이었고, 거센 민원 폭탄을 넘어 집회까지 이어지며 지역의 대표적인 갈등 사안으로 확대되었다.

 

2019년 5월, 주촌 선천신도시 입주민들이 김해시청 앞에서 악취 문제를 해결하라는 집회를 열었다.

 

쏟아지는 민원에 발등에 불이 튄 김해시 역시 악취 저감 노력에 나섰다. '축산 악취 저감 5개년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5년 간 834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분뇨 정화처리시설 설치, 악취 저감제 살포, 축사 시설 현대화 자금 지원 등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특히 갈등이 심각한 주촌 신도시 인근의 돼지 축사는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악취 저감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또 축사 이전이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축산 악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행정이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은 다행이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이 김해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축산 1번지 충남, 악취 민원도 많아

2019년 김해시에서 쏟아진 '민원 폭탄'을 제외한다면, 가장 많은 축산 악취 민원이 몰린 지역이 바로 충남 아산시다. 아산시의 경우 양돈 농가가 많은 경기 남부와 충남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고, 아산신도시 개발 이후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악취 민원 건수가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축산 악취 민원이 많은 것은 아산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접한 공주시, 천안시, 평택시, 안성시 그리고 홍성군까지 이어지는 '축산 벨트'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가장 악취 문제가 심각한 돼지 축사에 한정해 보았을 때 이 '축산 벨트' 6개 지역에서 사육하는 돼지가 160만 두에 달한다. 

 

농림부 농업경영체 등록 서비스에서 조회한 양돈 농가 현황. (행정구역 상 문제로 천안시 등 일부 지역의 정보가 제외되어 있다)

 

특히 시·군의 접경 지역에서 축산 악취를 둘러싼 갈등이 거세지기도 하는데, 기초자치단체 마다 축사 신설을 둘러싼 기준이 다른 점을 이용해 A시에서 허가가 나지 않을 축사를 A시의 주거지와 바로 접해 있는 B시에 짓는 등의 문제로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아산 둔포 주민들, 320m 인접 평택시 축사 허가에 '뿔났다')

충청남도의 경우 이런 식으로 시·군 경계를 넘어서는 축산 악취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도내 15개 시·군의 축사 입지 환경피해 예방 협약을 맺어, 표준 조례에 따라 가축 사육 제한 기준을 통일하기로 했다. 축산 농가가 밀집한 충남 지역에서 시작한 갈등 예방을 위한 제도가 다른 시·도에도 모범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청정 제주'에도 악취가?

제주도 역시 연일 축산 악취 민원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하긴 제주, 하면 바로 흑돼지가 생각나는 만큼, 돼지 축사가 많으니 축산 악취도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 사이 제주도를 찾는 내외국인 관광객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인구 역시 70만 명을 바라볼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면서 축산 악취는 제주도의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2020년 1월 열린 악취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제주 한림읍 주민들의 집회 포스터
 


특히 2017년 7월, 도내에서도 돼지 축사가 밀집한 한림읍에서 벌어진 가축분뇨 유출 사건은 제주도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관련 기사 : 지하수로 흘러간 돼지똥물, 부메랑 된 '공장식 축산') 이 사건 이후 제주도는 한림읍 일대의 양돈 농가에 대해 전주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악취 배출 허용 기준을 초과한 곳이 전체 농가의 95%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제주도는 축산 악취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여, 무허가 축사를 폐쇄하는 한편, 전체 돼지 축사의 절반 가량을 악취관리 지역으로 지정하여 악취 저감 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축산업의 중장기적 전환 고민해야

전국 방방곡곡에 악취로 인한 '민원 전쟁'이 벌어지면서, 지자체 역시 중앙정부와 협력하여 악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축 분뇨의 정화 처리 시설을 확대하고, 악취 배출을 막는 무창 돈사로 축사를 개조하도록 보조금을 지급하고, 냄새를 잡기 위해 화학 처리하는 소취제를 살포하는 등 악취 저감 정책에 대한 지원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축사에서 배출하는 악취 자체를 줄이기 위한 기술적 노력에 더해, '민원 전쟁'이 벌어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악취 민원이 늘어난 것은 원래 축산 농가가 위치했던 농촌 지역이 신도시 개발 등으로 인해 도농복합 지역으로 점차 변화하고, 인구 역시 크게 늘어나면서 악취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지역의 현안으로 대두했기 때문이다. 
 

1인 당 육류 소비량 변화 추이 ⓒ 통계청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다시 한번 뒤집어서 문제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 한국의 연간 1인 당 육류 소비량은 2018년 기준으로 54kg에 달하고, 점차 늘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육류 소비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앞서 광역 대도시에는 축산 악취 민원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도시 사람들이 고기를 즐길 때, 축산 과정에서의 피해는 도시 바깥에 집중되는 것이다.

왜 도시는 고통 받지 않느냐! 서울에도 돼지 농장을 만들자!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계속 1200만 마리가 넘는, 이렇게 많은 돼지를 사육하는 구조가 지속 가능 하느냐는 말이다.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축산 부문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축 분뇨 에너지화, 저메탄·저단백 사료 보급 확대 등과 더불어, 식물성 단백질·대체 단백질로의 식생활 전환을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결국 축산 악취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축 분뇨의 재처리와 사료 개선을 통한 암모니아 가스 감축이라는 기술적인 해법에 더해, 식생활에서 육식의 비중을 줄이고 가축 사육 역시 점진적으로 감축시켜 나가는 것이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앞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인 셈이다.

결국 축산 악취를 둘러싼 문제는 축사에 대한 규제와 악취 저감 지원을 넘어서, 기존의 축산 농가들을 어떻게 다른 산업으로 전환시킬 것인지 장기적인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고민으로 연결된다. 그 방법이 무엇일지,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긴 어려울 듯하다. 다만, 그동안 축산업의 과실만 누렸던 우리 도시 사람들도 이제는 이 문제를 함께 생각하고, 중요한 문제로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그 정보가 알고싶다>시리즈 연재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