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박영선 의원, 국회의 달인인가?

opengirok 2008. 12. 24. 10:40

화이트헤드는 인간 존재를 이렇게 설명했다. (ⅰ) 산다 (ⅱ) 잘 산다 (ⅲ) 더 잘 산다. 실상 삶의 기술이란, 첫째 생존하는 것이며, 둘째,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생존하는 것이며, 셋째, 만족의 증가를 획득하는 것이다.
김용옥은 이 세 마디 보다 더 간결하게 삶 전체를 요약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다.

이 말을 국회의원 활동으로 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ⅰ) 국회 활동을 한다 (ⅱ) 국회 활동을 잘 한다 (ⅲ) 국회 활동을 더 잘한다. 박영선 의원은 (ⅲ) 국회 활동을 더 잘 한다에 속한 의원이다. 그 바탕에는 기자시절부터 익힌 끈기와 철학이 있다.

올해 국정감사를 거치며 박영선 의원에게 ‘필사의 달인’이란 별칭이 붙었다. 올해 10월 감사원이 2008년 초 대통령직인수위 업무보고서를 열람하도록 하자 ‘대통령 수시보고’등 문구를 찾아 필사해뒀다 국회에서 공개했다. KBS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적절했는지 따질 때도 감사위원들의 KBS 감사회의록을 옮겨 적어 감사 문제를 밝혀냈다.

국회의원이 구하고자 하는 자료를 ‘필사’라는 방법으로 끝까지 찾는 기질은 아무래도 22년간의 문화방송 기자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 그는 ‘박영선의 인터뷰, 사람향기’란 책에서 ‘인터뷰를 하러 가서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고민을 해결해주었던 방법 하나가 내가 그 사람이 되어 보자는 것이었고 만나주지 않겠다면 끈질기게 기다려 보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골목을 지키며 기다리면 행운은 찾아왔고 그 행운은 언제나 인연을 만들었다’고 쓰고 있다.

박 의원에게는 철학이 있다. 그는 17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삼성 그룹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며 심상정의원과 같이 투톱으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천정배 원내대표한테서 “지금까지 국회에서 재벌의 이름을 직접 거론해 비판하면서 국정감사를 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말도 들었다. 박 의원에게 삼성의 특혜 문제는 한국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과 브랜드로 성장하는데 넘어가야 할 성장통이었다. 당장은 쓰지만 길게 보면 한국 경제에 좋은 약이 된다는 철학이다.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박영선 의원

 

박 의원의 내공 진면목은 올해 7월부터 8월까지 열린 ‘공기업관련대책특별위원회’ 위원 활동을 하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에서 유감없이 보여줬다. 내공은 축적된 공부 힘에서 나온다. 그는 공기업 사장 사표와 공기업 매각 건에 대해 장관들의 판에 박힌 답변에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 국회 회의록에는 사장 사표 건 청문회를 요구하고 인천국제공항공사 매각에 반대하는 그의 생생한 추격 모습이 담겨 있다.

박영선 의원 : 지금 적당한 사람이 없어 공기업 사장 임명도 못 한다는 답변을 하면서 왜 사표를 받습니까? 더군다나 경영실적 1, 2위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질의하면 대답을 못 하시지 않습니까, 지금?
기획재정부장관 강만수 : 타 소관 부처가 아닌 데 대해서 정확히 모른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박영선 의원: 공기업 사장은 기획재정부에서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누가 파악을 합니까?
기획재정부장관 강만수 : 전체적인 파악은 하고 있습니다만 개별적으로 왜 사표를 받고 어떻게 사표를 받았는지는 모른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박영선 의원 : 그러면 개별적으로 사표 받는 건 누가 지시했습니까? 청와대가 지시했습니까?
기획재정부장관 강만수 : 특별한 지시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재신임이 필요하다, 처음에 .....
박영선 의원 : 정치적인 재신임이 필요하다는 게 어느 법률 근거 조항에 있습니까?』

박영선 의원의 끈기와 철학, 내공보다 더 높게 쳐야 할 대목이 있다. 그건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성찰이다. 그는 17대 국회가 열린지 얼마 되지 않은 2004년 7월 동료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국회 안에 있는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폐지하고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의원전용 승강기는 1975년 여의도 국회가 문을 연 이후 30년 간 관련 법 규정 없이 ‘의원 전용’이란 팻말을 붙이고 관행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스스로 개혁 진보적이라 생각하는 국회의원도 국회가 벌이는 예산낭비와 잘못된 관행에 대해 눈을 감기 쉽다. 국회가 진정 국민의 국회가 되려면 의원은 국민들이 ‘특권’과 ‘권위’의 상징으로 여기는 국회 내부 문제를 고쳐야 한다. 의원이 대정부 투쟁을 잘 한다고 국민의 신뢰가 돌아오지 않는다. 국회 자체가 국민들 눈높이로 보면 ‘특권층’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렇게 국회 내부 문제를 생각하는 의원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감히 박영선 의원을 ‘국회의 달인’으로 부를 수 있다면 뛰어난 국회 활동과 함께 이런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의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