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일본 시민사회, 세월호 참사를 주목하다

opengirok 2014. 8. 7. 10:05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


일본 비밀보호법 제정, 후쿠시마 사태, 강정마을, 세월호 참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일 시민사회가 각 나라의 문제라고 생각지 않고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비밀보호법의 원조는 2007~2009년까지 제정 시도를 했던 한국 정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용과 형식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당시 반대운동을 벌였던 필자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 시민사회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한국의 고리 핵발전소를 주목하고 있다. 수많은 고장과 비리 중심에 있는 고리 핵발전소는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문제이기도 했다. 사고가 나는 순간 당사자인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은 오키나와 미군기지와 닮았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한국의 움직임은 일본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3일 오사카 젠코(ZENKO) 대회에 정보공개센터뿐만 아니라 청년유니온,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들을 초대했다. 젠코 대회는 일본 MDS(Movement of Democratic Socialism)에서 1970년부터 꾸준히 열고 있는 행사로 ‘평화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전국 교류회’가 정식 명칭이며, 올해로 44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이번 젠코 대회는 아베 정권 집단적 자위권 행사, 핵 발전 반대 등을 외치면서 한국과 이라크, 미국의 활동상황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활동가들을 초대했다.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1년6개월 동안 복역했던 ‘전쟁 없는 세상’ 길수씨는 가는 곳마다 화제가 되었다. 행사참가자 중 한 명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해 남북이 나누어져 병영국가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나왔다며 한국사회에 사과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탈핵 행사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후쿠시마 근처에서 목장을 하다가, 자식 같은 소들을 두고 탈출해야 하는 후쿠시마 농민의 심정을 듣는 자리에서는 대회장이 다같이 슬퍼했다. 알권리 운동을 하고 있는 정보공개센터가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핵발전 알권리 운동으로 전환했다는 발표를 하는 자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지지를 표현했다. 정보공개센터는 방사능의 부작용을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한 그림표를 나눠 주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필자가 ‘세월호 참사와 알권리’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참가자들은 이 문제가 단순히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공감했다. 전 사회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하토리는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 세월호특별법의 쟁점을 상세히 질문했고 일본 비밀보호법 제정 이후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일어나면 투명한 정보공개를 방해할 것이라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재일동포 한 분은 일본 정부는 한국의 후진적 상황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게 했다며 일본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에서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핵 발전 관계자들의 말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대회 첫째 날은 젠코 대회에 참가했던 전 세계 활동가들이 오사카 시내에서 아베 정권 반대를 외치면서 거리행진을 했다. 이 자리를 준비하던 중 일본 극우파와 마주쳐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당하기도 했다. 헤이트 스피치란 국적, 인종, 종교, 성 정체성, 정치적 견해 등에 대해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발언이다. 심지어 일본 극우파들은 재일교포 3·4세들이 다니는 중·고등학교에 와서도 헤이트 스피치를 하고 있어, 수많은 학생들이 심리적 충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 시민사회는 더욱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 다같이 손잡고 춤추면서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연대의 길을 가자는 결의를 했다. 그동안 참석한 어떤 행사보다 뜨거웠고,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