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사무국장
7월 23일 오늘, 경북 청도 삼평리에서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고 있는 ‘할매’들의 이야기를 담은 <삼평리에 평화를 – 송전탑과 맞짱뜨는 할매들 이야기 (한티재)> 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대구경북지역 언론사인 뉴스민과 청도 대책위 활동가들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11명의 할매들이 전해준 이야기를 풀어 기록하고. 삼평리 싸움에 대한 투쟁일지를 정리했다. 기록을 통해 이 싸움이 기억되고,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바라서였다.
“그러므로 이 싸움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또 시간이 흐르더라도 기억되어야 할 보편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삼평1리의 투쟁과 주민들의 삶. 특히 할매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 <삼평리에 평화를> 서문 중에서. 천용길 -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을 10여 년간 해왔던 밀양에서도 삼평리에 앞서 책을 냈다. <밀양을 살다 –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 (오월의 봄)>. <삼평리에 평화를>과 마찬가지로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17명에 대한 15편의 구술기록이다.
이 책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주민들의 목소리, 밀양과 맺은 삶의 역사가 더 풍성하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투쟁에 대한 기록 뿐 아니라 투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개인의 역사를 정리함으로써 송전탑 투쟁을 넘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더 많은 것들을 전하고 있다. 또한 구술기록을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를 아카이브로 남기자는 취지로 영상 작업도 함께 진행되었다. 그 결과는 <밀양, 반가운 손님> 이라는 옴니버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밀양 구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기억해야 할 이유가 분명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12월 쯤 기록노동자, 작가, 인권활동가, 여성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공사를 막아내는 싸움이 조금 힘겨워지고, 밀양희망버스가 수천 명의 희망을 싣고 밀양에 다녀온 즈음, 밀양에서 전해오는 소식 너머에 우리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더 있다, 그걸 전해야겠다는 마음들이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밀양을 사는 그/녀들의 울음과 웃음이 궁금했다. 그/녀들이 투사로만 등장할 때의 거리감이 그/녀들에게는 고립감이 되기도 한다는 조심스러운 마음과, 그/녀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질 때 연대의 힘도 그만큼 살아 움직이게 될 거라는 절박한 기대를 품었을 뿐이다.”
- <밀양을 산다> 서문 중에서. 미류-
6월 11일 송전탑 공사 행정대집행 이후로도 밀양은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팀과 함께 밀양 송전탑 투쟁 자료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투쟁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송전탑 투쟁뿐만 아니라 7월 24일로 사고 발생 100일째를 맞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기록 작업도 진행 중이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네트워크(http://sewolho-archives.org)>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수집하고 보관하고 정리하는 시민기록단’이다.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기록관리 전문가들이 모여 활동하는 이 모임은 ‘우리 사회가 세월호 사고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도록 세월호 사고의 기억과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하며 공유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건의 공통점은, 변방(지리적 의미만이 아닌)에서 일어난 일이고, 권력과 자본이 없는 사람들이 당사자이고, 공권력을 통해 파괴되고 잊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두 사건과 당사자의 기억들이 크고 작게 기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기록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록은 싸움 혹은 사건의 전달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체 사회와 공유하고, 이후로도 미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집단적 기억은 그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기록을 통해 그 상황이 드러나게 되고, 그로 인해 당시의 상황과 현재가 소통이 가능해진다. 또한 금세 희미해지고 마는 이들 기억이 활자화되고 보존됨으로써 기억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언제나 ‘잊지 말자, 기억하자, 함께하자’ 하지만 너무 많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큰 싸움 뒤에는 더 큰 싸움이 터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무언가를 끝까지 기억하고 그것을 시간을 관통해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단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풀어서 정리한다고 해서, 추모리본 몇 개와 사진 몇 장을 모아놓는다고 해서 끝나는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현재의 국가가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과 작업들을 거쳐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이,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되었다.
삼평리에서, 밀양에서, 그리고 세월호의 기억이 기록이 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사자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반드시 기억하고 함께 해야 할 일들이다. 이 기록이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기억이 되고, 그들의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억과 기록의 공유가 필요하다. 기록을 넘어서 역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들이 이제 그 기억을 공유하게 된 우리에게 남겨졌다.
사실.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땐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자.
출판된 책 두 권<삼평리에 평화를>과 <밀양을 살다>를 구입하는 것과. 내가 가지고 있는 세월호 관련 사진들을 기증하는 작업부터.
* 이 글은 인권오름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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