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웬 뜬금없는 소리냐 할 수도 있지만 ‘세월호 사고’ 얘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고로 인해 모든 분야에서 정부의 민낯이 드러나 버렸기 때문이다. 정부3.0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투명한 정부, 유능한 정부, 서비스 정부’를 내세웠다. 그 일환으로 정부3.0 정책들도 추진되었다. ‘정보공개청구가 들어오기 전에 원문을 공개하겠다. 부처간 칸막이 없이 통합적으로 업무해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땠는가.
세월호 사고 발생 이후 각 부처마다 구조 결과 같은 중요한 내용조차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 다른 브리핑을 내놨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언론보도만 무성했다. 공문서들 역시 세월호 관련한 것들은 대부분 비공개로 하거나, 검색조차 되지 않게 조치해 버렸다. 정부가 제 능력을 발휘해야 할 위기 상황 앞에서 ‘소통’이나 ‘칸막이 없는 부처’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부3.0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질문을 간혹 듣는다. 위엣 내용만 보고도 짐작했겠지만 내가 본 정부의 정부3.0 정책은 0점 수준이다. (단지 세월호 사건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거나 공공기관이 내가 요청한 정보공개청구들에 제대로 답변을 안해줬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굳이 밝힌다)
물론 잘한 것도 있다. 원문정보공개를 시행해서 이전에는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수수료를 내가며 받아봐야 했던 정보들을 정보공개포털에서 바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공개정보가 PDF로 자동변환되지 않아 EXEL도, HWP도 공개한 형태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정부가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보공유에 관심이 많은 한사람의 시민이 체감하는 정부3.0의 혜택은 이것 말고는 없다. 이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환영했던 공개정보를 원파일 형태 그대로 받기 위해서 나는 어림잡아도 100통이 넘는 전화를 정보공개시스템에 걸어야 했다.
애초 2014년 3월 3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원문공개 서비스는 개인정보 누출과 시스템 자체 문제 때문에 서비스가 한 달 여 뒤로 미뤄졌다. 범위도 전면 즉시 공개에서 국장급 이상 결재문서로 좁혀졌다. 정부가 양적 확대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정보제공 방법과 절차를 간과한 결과였다.
청와대는 비공개문서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원문공개 대상 기관에서 제외되었다. 원문공개율 역시 저조하다. 안전행정부는 애초 공개율을 30% 수준으로 예상했지만 원문서비스 시행 한달 뒤 조사에 의하면 국장급 이상 결재문서 중 95%가 비공개 처리해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고, 일부 기관은 원문이 공개된 결재문서가 한건도 없거나, 목록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공공정보 전면개방을 외쳤지만 일부 기관에만 적용되는 반쪽짜리 정책이었다.
그럼 정부가 정부3.0을 추진하면서 잘못 한 것, 혹은 아직 안한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3.0 비전 선포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가 모든 정보를 폐쇄적,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투명하지 않게 결정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민 행복을 만들어 가기도 힘들 것입니다.
국민을 중심에 두고 개방과 공유의 정부 운영을 펼쳐나갈 때, 깨끗하고 효율적인 그런 국정 운영이 가능하고,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국정과제 추진에 대한 동력도 더 커질 것입니다“
- 2013년 6월 19일 정부 3.0 비전 선포식, 박근혜 대통령 축사 중-
정부가 모든 정보를 폐쇄적, 독점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것. 투명하지 않게 결정하는 기존의 방식. 이것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정부는 국가안보라는 이유만으로 일부 권력기관을 제외한 채 정부3.0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결재문서라는 결과만 공개될 뿐, 업무의 과정은 여전히 불투명할 뿐이다. 중요한 의제,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국민의 진입장벽은 높기만 하다.
국민을 중심에 둔 개방과 공유의 국정운영이라고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 역시 여전히 요원하다. 알권리는 정보공개를 통해 보장된다. 정보에의 접근이 보장되어야만 알권리도, 자유로운 의사 형성도, 민주주의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정보에의 접근과 수집과 처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것의 컨트롤을 정부가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판단이 내려진 후의 정보에만 접근이 가능하다. 때문에 우리가 접하게 되는 정보 이면에는 통제되고 은폐되는 정보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알권리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 알권리를 이야기해야 하는 수준인 것이다. 개방과 공유의 국정운영이 국민 중심이 아니라 권력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보니 권력이 문제다. 권력이 국민에게 있지 않고, 정부에 있게 되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 공개할 것이 아닌 공개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염두에 두다보니 정부3.0이 틀어진다. 공개정보의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려다 보니 정책이 삐걱거린다. 어떻게 해야 개선될까를 생각해보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변화가 눈에 바로 보이지 않더라도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행정적인 측면에서의 교육 말고 정보인권 접근으로의 교육을 늘려야 한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3.0 경진대회 열어 성과를 나열하려 하지 말고, 정부3.0 설계부터 차근차근 해야 한다. 정부3.0의 기반인 정보공개부터 제대로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공기관에서 정보공개와 기록관리를 담당하는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한다고 한숨 쉬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보권력이 정부에서 국민으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일선 현장에서의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라는 생각에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나같은 상습적 정보공개청구인과 상대하랴, 정부3.0을 실현해 나가랴 고군분투하고 계신 현장의 분들의 건투를 빌며(진심으로!!!) 글을 마친다.
* 이 글은 한국기록전문가협회 기관지 <KARM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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