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한<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몇 년 전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프로축구 경기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정작 축구보다 경기가 끝난 이후 훌리건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양팀 응원단이 갈려 투석전을 벌이는 등 온갖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면서 거리 곳곳에서 공공시설물이 훼손됐고, 경찰 수천명이 동원돼 진압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프랑스 신문에는 이 과정에서 한 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실리기도 했다. 유럽, 그 중에서도 영국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같은 나라들에서는 훌리건의 난동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이 때문에 엄청난 공권력이 투입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집회 및 응원 문화는 전 세계에서도 평화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경기가 끝나면 승패와 관계없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또한 각종 집회가 개최되어도 촛불을 든 채 평화롭게 진행되고 집회 이후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법시위 건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집회 및 시위 관련 장비 예산을 늘려 신청하고 있다. 지난 2011년 7월 부산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경찰이 최루액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사실 이런 모습은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경찰청이 작성한 통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최근 5년간 연평균 1만537건의 집회 중 경찰청이 불법집회로 규정한 집회는 52건으로 0.05%밖에 되지 않는다. 집회 건수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09년에 1만4384건이었던 것이 2012년에는 8323건으로 줄었고, 2013년 8월까지는 5991건에 불과했다.
경찰청은 이런 사회적 추세를 반영해 집회·시위 관련 장비 구입을 줄이고 치안 및 안전 예산을 높이는 게 상식적인데 현실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공개한 2014년 경찰청 집회 및 시위 관련 장비 도입 안을 보면 대표적인 시위진압 장비인 이격용 분사기는 2012년, 2013년과 동일하게 2014년에도 1610대를 구입할 예정이다. 집회 진압용 중형 소화기도 808대, 소형 소화기도 6223대를 구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너무 많다며 중형소화기는 708대, 소형 소화기는 5696대로 줄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최루액으로 알려진 캡사이신 희석액 구입계획이다. 이 물질은 시위 참가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인권침해 물질이다. 경찰청은 2011년과 2013년 캡사이신 희석액을 1만1969ℓ 구입하였으나 실제 사용은 2011년 1295ℓ, 2012년 726ℓ, 2013년 1241ℓ로 구매량의 27.3%에 불과했다.
캡사이신 희석액은 사용연한이 2년이라 해당 기간이 지나면 폐기해야 한다. 2013년까지의 구매량과 사용량을 감안하면 예산낭비 요소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경찰청은 사정이 이런데도 2014년 캡사이신 희석액을 5819ℓ 구입하는 것으로 예산을 제출했다. 세금이 아닌 자기 돈으로 구매해도 저랬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반면 전·의경의 하루 급식비는 6432원으로 한 끼당 2143원에 불과하다. 2010년 5650원, 2011년 5820원, 2012년 6155원, 2013년 6432원으로 이 기간 전년 동기 대비 인상률은 3.0%, 5.7%, 4.5%다. 이는 초등학교 한 끼당 급식비 2580원보다 낮은 것이다. 경찰청은 국회 예산정책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집회 및 시위 관련 장비 예산은 줄이고, 안전·복지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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