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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동 칼럼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소탐대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


‘정치꾼은 자신의 입신을 위해 일하고, 정치가는 나라를 위해 일을 하고, 역사가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일한다.’ 필자의 지인인 기록관리 전문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2007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와 관련된 논란을 보면서 수없이 되새겼던 말이기도 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에 의해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여야 합의로 국가기록원에 있는 대통령지정기록물 회의록 원본을 열람하기로 하면서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사로운 정파적 이익보다 너무 큰 것을 잃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현재까지 전직 대통령들의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존재한다는 상상을 해보면,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15년 전 생산되었던 대통령기록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IMF 기록일 것이다.


학자라면 IMF 사태가 터지게 된 원인과 외환자금을 지원받는 과정을 밝히기 위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온갖 지시 및 회의문건을 분석해 볼 것이다. 또한 6공화국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지시로 42차례나 남북비밀회담을 한 회의록을 분석해, 당시 남북관계 속에서 어떤 협상이 오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연구과제가 될 게 뻔하다.


이런 기록들이 존재한다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건 학자들만이 아니다. 언론인들은 탐사보도 자료로 활용할 수 있고, 방송사 피디들은 드라마 소재로 재가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당시의 대통령기록물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외국에서 관리하는 기록, 관련자들 구술이나 언론 보도로만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 사회가 대통령기록물의 불모지였던 탓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은 더더욱 소중한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직 당시 기록에 엄청난 애착이 있었다. 참모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남긴 기록이 공개되면 논란이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하면서도 집요할 정도로 기록을 남겼다. 사사로운 불이익보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겠다는 집념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통령기록물을 가지지 못한 우리 사회에 엄청난 선물을 준 것이다. 이번 사태가 터지지 않고 15년 동안 대통령지정기록물을 보호해주는 전통이 생겼다면 조선시대의 기록문화 전통을 되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국익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전직 대통령의 기록을 함부로 열어보지 않는 미국이 얼마나 기록을 철저히 관리하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생산한 지 불과 6년 만에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역사적 평가가 아니라 부관참시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면 어떤 대통령이 정확한 기록을 남기겠는가.


이번 사태로 어렵게 만들어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선시대 ‘사관’이 이 상황을 봤다면 대성통곡할 일이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2005년에 현재 대통령기록물법의 모태가 된 예문춘추관법을 대표발의했다. 그는 법을 발의하면서 ‘제안 이유’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당대의 이러한 노력은 수천년 이어온 찬란한 국정기록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며, 바른 기록과 역사 편찬을 위한 법과 제도를 세워 민족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고, 역사적 경계로 삼도록 하여 후세에 길이 남을 자랑스러운 귀감이 될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문헌 의원을 비롯해 여야 의원들에게 현재 이 사태가 국정기록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행위인지 묻고 싶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렸습니다. 원문은 여기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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