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국가기밀이 악취 풍기며 나타날 때, 파시즘"

opengirok 2013. 5. 21. 16:53


영화 <JFK>의 한 장면


"제프루더 필름(Zapruder Film)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왜? 검시결과와 엑스레이도 못 봤습니다. 왜? 이 사건의 많은 자료를 왜 공개 안 하고 있으며, 누군가가 원하면 왜 '국가기밀'이라면서 거부합니까? 누구를 위한 비밀이죠? 대체 무슨 비밀이 또 누구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막는 겁니까? 바로 그런 국가기밀이 악취를 풍기며 나타날 때 그걸 바로 '파시즘'(fascism)이라 부릅니다"



위의 말은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대통령 암살사건을, 짐 개리슨(Jim Garrison) 검사의 수사를 토대로 재구성한 영화 <J.F.K>(Oliver Stone, 1991)에서 나오는 개리슨 검사의 마지막 변론 장면 중 한 대목이다. 이 대목의 방점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대한 공식 보고서인 워렌 위원회(Warren Commission)의 보고서가 날조되고, 증거가 사라지고 정보는 차단된 채, 주요 목격자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죽음에 대한 공포로 증언을 거부하는 상황, 즉 모든 진실이 사라진 자리에서 배심원들에게 국민의 '알 권리'를 호소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 장면에서 개리슨 검사는 정부의 기밀이 횡행할 때 '파시즘'이 도래한다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개리슨 검사는 알 권리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등장하는 것이 하필 왜 파시즘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파시즘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 특히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비합리성과 시민들의 자치를 파괴하는 엘리트 정치가 알 권리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효과로서 나타날 위험이 있다.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정보공개


위의 말을 좀 풀어보자. 우선 알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상황이라면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왜 그런가 하면, 알 권리는 어떤 사실관계를 인지 가능해야 충족되기 때문이다. 이 알 권리라는 것은 정보에 대한 최대한의 자유로운 접근을 추구한다. 정보가 닫히고 알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에서는 자유로운 표현과 의사소통에 왜곡이 발생한다. 사실관계를 인지할 수 있어야만 판단하고, 토론하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기능하며 생산된 온갖 정보들이 공개되지 않아 공론장에 정보가 부재한 상태, 즉 정보가 내부의 특정에 독점되거나 통제되는 상태에서는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표현을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하는 집단에 의해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 즉 정보의 강력한 통제와 비공개는 일종의 은폐된 우민화와 맥이 닿아있다. 이런 경향은 자연스럽게 소수 엘리트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또는 특정한 목적에 때라 의사결정이 가능한 엘리트정치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즉 알 권리가 침해되고 사라지는 지점에는 언제든지 파시즘의 씨앗이 잉태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알 권리가 침해되고 정보들이 공개되지 않을 때 반드시 전면적인 파시즘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역사 속에서 사회가 진보해왔기 때문이다. 정부도 시민들의 알 권리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많은 국가들이 법률상으로도 명시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에는 알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일시적으로' 파시즘적 국면이 조성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한미FTA 부서들이 작성하고 보유한 공문서의 92%가 비공개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사례를 예로 들고자 한다. 최근 몇 년간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던 사건들이 존재한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와 천안함 침몰사건이 그렇다. 한국 정부, 특히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대부분의 정보를 비공개했다. 일례로 한미 간 협상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2006년 외교통상부에서 한미 FTA관련 업무를 맡았던 FTA 부서들이 작성하고 보유한 공문서의 92%는 비공개로 설정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다. 정부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타당성을 타진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연구용역을 발주하는데,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외교통상부가 발주한 한미, 한EU FTA와 관련된 연구 용역은 총 31건이었다. 이 31건의 연구용역의 책임자들은 대체로 FTA 찬성론자들로만 구성되어있고 31건 모두 비공개되었다.




2006년 당시 외교통상부 FTA국의 정보비공개설정 비율은 약 92%에 달했다.




2005년 부터 2010년까지 외교통상부가 발주한 한미, 한EU FTA 관련 연구용역은 총 31건인데, 모두 비공개 되어있다.



외교통상부의 이런 밀실행정, 밀실협상 경향은 정보은폐이자 알 권리 파괴에 가깝다. 이런 일방적인 상황에서 정부는 한미 FTA에 대해 비판적인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들의 분석들을 괴담으로 낙인찍고 반미주의자의 선동으로 몰아세웠다. 이런 조건 속에서 시민-시민 간, 시민-정부 간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을 리가 만무하다. 정부는 2006년부터 무려 7년 동안 한미 FTA가 한국의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것처럼 미디어를 통해 홍보했고 2012년 11월 과반 여당인 새누리당은 한미 FTA를 날치기로 단독 비준했다.



천안함 침몰사건 자료도 비공개


국가 전체에 큰 충격과 의혹을 남긴 천안함 침몰사건도 핵심 정보들도 모두 비공개투성이다. 천안함의 침몰 전 항해부터 침몰하는 전 과정이 포함된 열영상장비(Thermal Observation Device) 영상, 조타사 일지, 항적도, 해군 전술 데이터 시스템 자료, 대통령 보고서, 국방장관 보고서, 합참의장 보고서, 해군참모총장 보고서, 해군 교신기록, 해경 교신기록, 사고 전 천안함 수리기록, 천안함 파손 부분 사진 등 정부가 꾸린 합동조사단 외에 외부 전문가나 일반 시민이 판별할 수 있는 모든 일체의 정보는 비공개 되었다. 이런 채로 한국은 이 사건에 대해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그대로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침몰로 결론지었다. 합동조사단 보고서 전문 역시 공개되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공개된 것은 대국민용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정도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주요 증거들은 군과 합동조사단만 접근할 수 있었다.


천안함 침몰사건은 사고수습과 수사 과정 그리고 결과발표까지 일관된 정보의 폐쇄성으로 각계에서 많은 의혹이 제기 되었는데, 이런 의혹을 주장한 반대론자들에게는 고소·고발이라는 대가가 따랐다. 또한 온라인상에서 천안함의 의혹을 제기했던 네티즌에 대해 국가정보원이 내사를 진행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남북관계는 3년이 지난 후인 현재까지 악화 일로를 걷다 최근 위기국면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정보 비공개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합리성 파괴


이 두 사건에 대해 파시즘적 국면이라고 주장한다면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이 두 사건의 정보가 보다 투명하게 공개되어 시민들의 알 권리가 온전하게 지켜졌다면 어땠을까? 아마 우리는 아직까지도 한미 FTA가 한국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토론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들과 시민의 감시를 통해 협상이 졸속으로 체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효율성은 포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민주주의적 합리성은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사건도 마찬가지다. 국방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없는 한 천안함 침몰에 대한 가능한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면, 그리고 합동조사단의 수사과정과 보고서 전문을 일괄 공개했다면 어땠을까?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천안함 침몰사건의 의혹들 상당 부분이 해소되었을 것이다. 반대론자들이 정부의 발표에 설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더 밝혀내야 할 진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고소·고발을 당하고, 일반 시민이 국가정보원에 불려 가 수사를 받는 비민주적·반인권적 상황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최악으로 치닫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 권리가 더 폭넓게 보장되고 정보공개가 이뤄지면 일시적인 파시즘적 국면이 작동할 여지가 더욱 좁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어쩌면 정보공개는 반(反)파시즘적 조건이자 도구이자, 행위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정보공개를 통해 보장되는 알 권리는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실천하기 위해 전제되는 인권 안의 인권이다. 하지만 역사상 알 권리라는 말이 생겨난 후로 지금까지 정보에 대한 판단과 통제는 정부에게 일방적으로 맡겨져 있다. 이런 통제의 벽을 허무는 일은 정보공개에 대한 사람들의 보다 많은 관심과 정보은폐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 끝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해 보도록 하자. 우리는 정부가 하는 일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알고 싶은가?, 그리고 얼마나 알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의 대답이 결국 우리가 파시즘과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 말해줄 것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간사



*이 글은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과 "[열려라 참깨] 천안함 사건과 한미FTA 정보는 누구를 위해서 비공개 됐나"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 게재 되었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www.freeuse.or.kr을 찾아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