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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비밀보호법 적용 ‘가상 시나리오’

opengirok 2008. 11. 21. 10:10

ㆍ한·중 FTA 문건 입수한 기자
ㆍ기사 작성중 국정원서 전화와
ㆍ“현행법 위반” 문건 반환 요청
ㆍ감청 항의하자 “제보자도 처벌”

ㄱ 신문 ㄱ 기자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취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정부가 협상 과정 전체를 비밀로 지정해 공식발표 외에는 취재통로가 사실상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ㄱ 기자는 이날도 심층취재가 부족하다는 데스크의 지적을 받고 머리를 싸매고 있던 차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잘 알고 지내던 시민단체 소속 ㄴ씨의 전화였다. 서울 교외의 조용한 카페에서 ㄴ씨는 문건을 한 뭉치 건넸다. ‘3급비밀’ 도장이 찍힌 문건은 한·중 FTA로 인해 농수산업 종사자들이 입을 피해를 수치화해놓은 정부 기록이었다.

ㄴ씨는 “한·중 FTA에 대한 반대의견을 가지고 있던 소신 있는 공무원으로부터 건네받은 자료”라며 “꼭 보도해달라”고 말했다.

ㄱ 기자는 신문사로 돌아가 곧바로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때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국가정보원이었다.

국정원 관계자는 “ㄱ 기자님. 지금 현행법을 위반하고 계십니다. 문건을 돌려주시죠.” 국정원이 ㄱ 기자의 휴대전화를 감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9년 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은 국정원과 수사기관이 필요할 경우 휴대전화 감청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ㄱ 기자는 “국정원이 기자를 감시할 수 있는 것이냐”고 항의했지만 “개정된 국정원법에 따라 국익을 해할 수 있는 경우 감시·조사까지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국정원 관계자는 “‘누구든지 국가안전보장 또는 국가이익을 해하거나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비밀을 탐지하거나 수집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비밀보호법 28조 1항에 의해 처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ㄱ 기자는 “국가안보 또는 국가이익을 해할 목적이 아니라 보도를 위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이 관계자는 “문건을 보도하면 한·중 FTA 협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국가이익을 해할 수 있다”고 대응했다.

ㄱ 기자는 순간 비밀보호법 33조에 ‘위법성 조각’ 규정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 ‘공적인 관심사에 대하여 중대한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부득이하게 이뤄진 명백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ㄱ 기자님 행위가 그 조항에 해당되는지는 법원에서 따져봐야 합니다. 또 문건을 건넨 제보자는 크게 처벌받을 겁니다. 잘 생각해보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민단체 ㄴ씨는 비밀보호법 28조 1·2항에 의해 처벌받을 가능성이 컸다. 비밀을 ‘탐지·수집’하고 ‘타인에게 누설’했기 때문이다. ㄴ씨에게 문건을 준 공무원도 29조, ‘업무상 비밀을 취급하는 자 또는 취급하였던 자가 그 업무로 인하여 알게 되거나 점유한 비밀을 타인에게 누설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적용받을 수 있었다.

국정원은 2009년에 제정된 ‘국정원법’에 의해 ㄱ 기자나 ㄴ씨를 합법적으로 감시해왔으며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역시 합법적으로 감청하고 있었다. 이제 비밀보호법에 근거해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다슬기자>

(도움 | 전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